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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로 1년, 그는 왜 라싸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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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로 1년, 그는 왜 라싸로 가는가


쓰촨에서 오체투지로 4개월, 앞으로 8개월 정도 더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갈 예정이라는 런저 스님.

해발 4618m의 감마라산을 앞에 두고 쓰촨에서 왔다는 런저 스님(39)을 만났다. 그는 한낮의 뙤약볕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오체투지로 뜨거운 아스팔트를 따라가고 있었다. 본래 오체투지(五體投地)란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을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부처에게 예를 올리는 것인데, 실제로는 배와 가슴, 허벅지까지 땅에 닿게 하여 전체투지 모양을 띤다.


뒤에서 식량을 싣고 따라오는 보급인력도 없이 스님은 혼자서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고 있다.

‘오체투지’를 티베트 스님들은 ‘차체’라고 부른다. 보통 티베트의 스님들은 차체를 할 때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사실은 더 많은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앞에는 야크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를 걸치고, 손과 발, 팔꿈치에는 나무와 가죽으로 된 보호대를 착용한다. 런저 스님도 그런 모습으로 차체를 하며 아스팔트를 따라가고 있었다.


스님은 말한다. 오체투지로 라싸에 가는 것은 "일생의 불경을 다 읽는 것과 같다"고.

- 어디서 왔는가?
- 타궁에서 왔다.
- 어디로 가는가?
- 라싸로 간다.
- 라싸는 왜 가는가?
- 라마로서 한번은 가야만 하는 길이다.
- 그렇게 오체투지로 말인가?
- 그렇다. 다들 이렇게 간다.
- 이렇게 가면 라싸에 언제 도착하는가?
- 1년쯤 걸릴 것이다. 더 걸려도 상관없다.


티베트에서 오체투지는 몸으로 경전을 읽는 방식이다.

- 타궁에서 여기까지는 얼마나 걸렸나?
- 4개월 걸렸다.
- 혼자 가는가?
- 혼자 간다.
- 다른 스님들은 뒤에서 식량을 들고 따라오는 보급 도우미를 두지 않는가?
-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다.
- 밥은, 또 잠은, 어떻게 해결하는가?
- 저기 뒤로 보이는 마을에 짐수레가 있다. 거기에 내가 먹을 식량과 필요한 것들이 실려 있다. 마을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냥 길에서 잔다.
- 그럼 다시 저 마을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1km를 다시?
- 그렇다. 내가 가고자 한 만큼 오체투지로 가서 올 때는 걸어서 수레까지 온다. 수레를 끌고 다시 여기까지 와야 하니까.
-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가?
- 그걸 묻는 이유는 뭔가. 오체투지로 라싸에 가는 것은 일생의 불경을 다 읽는 것과 같다.
- 옴 마니 밧메 훔
- 옴 마니 밧메 훔


야크 가죽 앞치마에 나무로 된 손받침, 타이어 조각을 덧댄 신발. 이것들은 길 위에서 닳아 수없이 교체하고 수선해야 한다.

스님에게 나는 10위안짜리 지폐를 가죽치마에 찔러주고는 고개를 숙여 합장했다. 보통 오체투지를 하며 라싸까지 가는 스님들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공양하는 돈과 식량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간다. 다행히 티베트에서는 이렇게 오체투지하는 스님들에게 기꺼이 공양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가난하고 쪼들리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오체투지를 ‘그’가 대신해 주고 있으므로 그에게 하는 공양은 곧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


오체투지를 하고 가는 런저 스님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이마에 혹처럼 보이는 것은 수없이 많은 오체투지를 하면서 생겨난 훈장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서 2~3일이면 나는 흔들리는 차에 실려 라싸에 가 있을 것이지만, 그는 여전히 몸으로 경전을 외우며 저 팍팍하고 뜨거운 길 위에 육체의 모든 끝을 비비며 갈 것이다. 사실 그가 라싸에 가려는 이유와 내가 라싸에 가려는 이유는 확연히 달랐다. 그가 생각하는 라싸까지의 물리적 거리와 내가 생각하는 물리적 거리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차를 타고 가는 나의 라싸보다 되레 오체투지로 가는 그의 라싸가 훨씬 가까워보였다. 그가 라싸를 멀게 느꼈다면 애당초 이런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흔아홉 굽이 감마라 고갯길. 스님은 이제 이 엄청난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그에게는 이것이 모험도 여행도 아닌 수행이며 참선이고 독경인 것이다. 아마도 나는 평생을 가도 그가 만나려는 라싸를 만나지 못하리라. 라싸에 도착해서까지 나는 라싸에 가기 위해 내내 차를 타고 있어야 하리라. 그렇다면 라싸는 내게 얼마나 멀고 끝없는 곳인가. 런저 스님은 환하게 웃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어쩐지 오체투지하는 그보다 차에 올라앉은 내가 더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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