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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차마고도 1: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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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차마고도 1: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팍쇼 인근 칭커밭에서 만난 산중의 푸른 가족.

 

수천년 전부터 두 개의 문명길이 동양과 서양을 이어왔다.

하나는 중국의 서북쪽에서 유럽으로 가는 실크로드이며,

또 하나는 중국의 윈난에서 티베트 동남부를 지나

네팔과 유럽까지 이어지는 차마고도(茶馬古道, Tea-Road)이다.


옌징의 소금계곡에서 소금짐을 싣고 10여 마리의 말을 이끈 마방의 행렬이 가파른 벼랑길을 올라 루띵마을로 가고 있다. 



차마고도의 역사는 실크로드와 비슷한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떤 이들은 차마고도의 역사가 기원전 2세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고대의 무역로라고 주장한다.

확실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인

기원전 1700년대(商周시대)부터 윈난 지역에서 차를 재배해 마셨다는 것이고,

차마고도의 역사 또한 차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차마고도의 핵심지역인 옌징에 남아 있는 소금계곡 풍경. 다랑논처럼 생긴 것이 모두 염전이다.


하지만 차마고도는 단순한 차 운송로에 그치지 않았다.

차를 운반하고 물물을 교환하면서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는

조금씩 옮겨지고 뒤섞이고 어우러지게 되었으니,

그것은 무역로이면서 문명통로였고,

가혹한 말(馬)의 길이자 힘겨운 삶(生)의 길이었다.



옌징을 지나 길에서 만난 마방의 행렬이 휴식을 위해 말에서 소금짐을 내리고 있다. 


옛 차마고도의 길은 보이차의 중심지인 윈난을 기점으로

거미줄처럼 퍼져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차마동남도’는 베트남과 태국으로 이어졌고,

‘차마남도’와 ‘차마서도’는 미얀마로 이어졌으며,

‘관마대도’는 동북쪽으로 길을 잡아 청두와 베이징으로 올라갔다.

또한 ‘차마북도’(강차대도)는 쓰촨을 기점으로 칭하이를 지나 라싸로 이어졌다.

그러나 역시 차마고도의 뼈대는 윈난에서 티베트로 이어지는 ‘차마대도’였다.


타시룬포 사원에서 만난 소녀. 오체투지를 하기 위해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지금의 진장공로 노선(푸얼-중띠엔-옌징-라싸)을 따라가는 차마대도는

티베트를 지나면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과 아라비아까지 이어졌다.

이 여러 갈래의 차마고도 노선을 다 합치면

익히 알려진 실크로드 이상의 길고 복잡한 문명통로가 되는 셈이다.

한마디로 차마고도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교역로이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문명통로였다.


해발 5008미터 둥다라 산 가는 길에 바라본 초원 언덕의 양떼(위). 여행자와 사진가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아흔아홉 굽이 감마라 고갯길(아래).


그리고 여전히 그것은 비밀스러운 문명길로 남아 있다.

사실 내가 밟은 중띠엔에서 간체까지 이어진 약 2200km의 길은

유럽까지 이어진 옛 차마고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길이다.

다만 차마고도의 노선 중 티베트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밟아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벅차고 고된 여행이었다.



옛 차마고도 위에 건설된 318번 도로에서 만난 런저 스님. 오체투지로 라싸까지 가는 중이다.


이따금 설산이 펼쳐진 황토빛 풍경과

빙하호수와 거대한 협곡과

“외롭고 높고 쓸쓸한” 끝간데없이 이어진 하늘길.

그 실오라기 같은 길을 걸어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바람 속의 아이들.

아! 으악! 도대체, 저럴 수가!

계속해서 숨이 막히는 풍경 속에서 나는 자꾸만 여행의 고도를 높여야 했다.



드락숨쵸 가는 길의 눈부신 유채밭 풍경.


사실 여행이라기보다는 탐험이거나 고행에 가까운 길이 차마고도이지만,

거기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오래된 가치와 정서와 천연함이 있었고,

우리에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과 숨겨진 이야기가 무궁했다.

어떤 곳은 100km를 가도록 마을이 보이지 않고,

어떤 곳은 반나절 이상 산자락만 오르내렸다.



라싸 시내의 하늘궁전 포탈라궁(위)과 티베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조캉사원(아래).


누군가는 그렇게 험하고 가파른 여행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

편하게 칭장철로를 타고 가거나

비행기를 타고 곧바로 라싸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차마고도를 밟아보지 않고는

차마고도의 숨겨진 매력과 가치와 아름다움을 만날 수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차마고도를 발로 밟아보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라싸 외곽의 드레풍 사원 대법당(위). 네팔로 이어진 차마고도 노선 중 마지막 요충지인 시가체에 있는 타시룬포 사원 전경(아래).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높고 험난한 길을 밟아보기 위해

유럽과 일본, 중국에서는 수많은 여행자들이 티베트로 달려오고 있다.

라싸의 호텔이나 여행사에서도 <차마고도>는 이미

티베트 최고의 인기 여행상품으로 자리잡았으며,

중국에서는 현재 자전거와 도보로 차마고도를 여행하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실정이다.



인도로 내려가는 차마고도의 마지막 요충지였던 간체에서 볼 수 있는 간체쿰붐.


국내에서는 늦은 감이 있지만,

2년 전 처음 ‘차마고도’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고,

지난 해 초 두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차마고도’를 소재로 한 다큐물을 내보낸 적이 있다.

‘도대체 차마고도가 무엇이길래’, 일반 시청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일이지만,

중국이나 일본, 유럽에서는 이미 차마고도에 대한 관심이 실크로드를 능가하고 있다.



라싸 바코르 시장 골목의 차 도매상 풍경. 대발쌈에 싸인 덩어리차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그동안 차마고도는 베일에 가려져 ‘비밀의 길’이나 다름없었고,

오랫동안 외국인의 여행 불가지역으로 묶여 있었다.

차마고도에 대한 외국인의 허가증 발급이 유연해진 것은 근래의 일이며,

차마고도를 여행한 소수의 여행자들과 매체로부터

차마고도의 자연과 마을과 사람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속속 전해지면서

차마고도는 이제 모든 여행자의 로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차마북도에서 가까운 남쵸호수 가는 길에 바라본 라겐라 언덕 주변의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


거기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거나 가장 험하고

가장 눈물겨운 것들을 만났다.

거기서 나는 오염되고 변질된 개발국의 모습이 아닌

미개발된 천연하고 순진한 지구의 모습을 보았다.

느리게 느리게 환생을 유목하는 숨찬 평화를 보았다.

이제서야 차마고도에 대한 책을 내놓고 나는

또다른 여행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그 때의 감동과 느꺼움이 ‘씨앗불’처럼 남아서

이렇게 또 몇자 끄적이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 본 티베트 동남부, 차마고도 구간의 장쾌한 협곡과 산자락과 강줄기.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상세보기
이용한 지음 | 넥서스BOOKS 펴냄
차마고도 의 은밀함과 순수함에 빠지다! 바람과 구름의 자취를 따라가는 길 위의 시인 이용한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10여 년 전부터 출근하지 않는 인생을 선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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