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3.06 한라산 노루를 찾아다닌 3일간의 기록 16

한라산 노루를 찾아다닌 3일간의 기록

|


한라산, 세계적인 노루의 천국이 되다



“해발 600미터 이상 한라산에 1600여 마리, 그 이하 저지대에 1700여 마리, 합쳐서 제주 전역에 걸쳐 3300여 마리의 야생 노루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몇몇 신문에서 밝힌 한라산 노루 분포에 대한 기사다. 이 기사를 접하며 나는 한라산에만 가면 손쉽게 노루를 볼 수 있으리라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그러나 한라산에 도착한 첫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단 한 마리의 노루도 볼 수가 없었다.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노루의 집단 서식지 한라산에서 노루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노루가 있긴 있는 겁니까?” 이튿날 한라산연구소에서 만난 신용만 연구원은 허허, 웃어넘겼다. “국립공원에만 약 천여 마리의 노루가 삽니다. 환경부, 산림청에서 말하는 노루의 개체수가 다 틀립니다만, 우리가 작년에 50미터씩 12군데를 선정해 발자국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립공원에만 1200여 마리 정도의 노루가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루는 이동을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파악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또한 나무가 꽉 찬 숲에서는 살지 못하므로, 그런 지역을 제외하면 노루의 개체수는 약 천여 마리 이하로 봐야 할 것입니다. 노루는 초원지대인 한라산 1400고지부터 정상까지 가장 많이 서식하고, 700~800고지 중산간 목장지대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노루는 좋아하는 먹이인 송악(잎이 연한 사철나무)이나 꽝꽝나무, 털진달래, 제주조릿대, 시로미, 구상나무, 엉겅퀴와 난초과 식물이 많은 곳, 연한 풀이 풍부한 초원지대와 목장, 골프장 근처에 많다고 한다. 또한 노루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초저녁부터 아침 해 뜨기 전까지 활동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미처 이 사실을 몰랐던 나로서는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시간에 노루를 찾아 헤맨 꼴이었다. “여기 어리목 공터에서도 노루를 볼 수 있습니다. 노루가 좋아하는 송악을 매일 뿌려놓거든요. 초저녁쯤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송악을 먹으러 나온 노루를 더러 볼 수 있을 겁니다.” 과연 해질 무렵이 되자 송악을 뿌려놓은 어리목 공터(신용만 씨 조사에 따르면, 어리목에 나타나는 노루의 수는 34~37마리쯤 된다고 한다)에 두 마리의 노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초롱초롱 맑은 눈망울에 귀는 쫑긋하고, 온몸이 회갈색 털에 뒤덮여 엉덩이만 하얗게(노루는 꼬리가 없다) 빛났다. 한 녀석은 암놈으로 보였고, 다른 녀석은 수놈인 듯하여 머리에는 봉긋하게 뿔이 올라와 있었다. 더 가까이 녀석들을 보기 위해 다가가자 녀석들은 순식간에 숲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노루는 일부일처제일까, 일부다처제일까


알려져 있듯 노루는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고, 나이가 어릴수록 경계심도 더한 편이다. 대체로 한라산 노루는 몸길이 1~1.3미터, 키 70센티미터 안팎, 몸무게 15~30킬로그램에 이르며, 앞 윗니와 송곳니가 없다. 따라서 질긴 섬유질 식물은 잘 먹지 못한다. 간혹 야생동물 먹이주기 행사를 통해 사람들이 콩이나 보리, 배추 등을 줄 때가 있는데, 이는 노루에게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곡물류를 먹고 노루가 물을 마실 경우 위가 팽창해 위험에 빠질 수 있고, 배추나 양배추는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루는 점프력이 뛰어나 보통 한번에 6~7미터까지 갈 수 있지만, 앞발이 뒷발보다 길이가 짧아 내리막 비탈에서는 잘 뛰지 못한다. 노루의 나이는 이빨의 닳음 상태나 뿔을 보고 판별하는데, 수명은 보통 12년 정도이다.


 


수놈 노루의 경우 뿔길이는 20센티미터 정도. 9~10월 짝짓기가 끝난 뒤 12월쯤 뿔이 떨어져 1월쯤 다시 자란다. 노루 뿔은 세 가지(앞가지뿔, 뒷가지뿔, 중간가지뿔)로 자라며, 3월쯤 털이 벗겨지면서 딱딱해진다. 6월쯤 새끼가 태어나면 수놈은 새끼와 암컷을 지키기 위해 서로 뿔을 맞대고 영역싸움을 벌이는데, 싸움에서 이긴 수놈은 눈밑에서 분비된 액체와 앞발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주변 나무에 비벼 자신의 영역을 곳곳에 표시한다. 그 동안 노루는 일부일처제(과거에는 노루의 개체수가 적었기 때문)로 알려져 있었지만, 연구소 관찰에 따르면 한라산 노루는 일부다처제 생활을 한다. 서열(뿔이 클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서열이 높다)이 높은 수놈이 다수의 암놈을 거느려 짝짓기를 한다는 것이다.



새끼는 한번에 1~2마리 정도를 낳는데, 모성애가 강한 암놈은 다음 새끼를 낳을 때까지 새끼를 보호하며 언제나 함께 다닌다. 이 때 수놈은 약간 떨어져 자신의 가족을 보호해주는 노릇을 한다. 소가족 생활을 하는 노루는 평균 3~4마리가 한 가족으로 다니며, 많게는 7~8마리가 한 가족을 이뤄 무리이동을 한다. 새끼는 냄새를 통해 어미와 가족을 확인하고, 어미는 자기 새끼를 부를 때 ‘찟찌지찌찌짓’ 소리를 내어 부른다. 하여 신용만 씨에 따르면 몇 시간 동안 산행을 하여 풀냄새가 옷에 배이고, 영역 표시를 해놓은 노루의 분비물이 옷에 묻은 상태에서 ‘쯧찌찌’ 하고 소리를 내면 숨어있던 새끼가 어미인줄 알고 뛰어나올 때도 있다고 한다.


또한 신용만 씨는 노루도 사람을 알아본다는 주장을 폈다. “처음에는 경계를 합니다. 저도 처음 노루 사진을 찍으러 다닐 때는 노루가 거리를 주지 않아 고생했는데, 계속 따라다녀본 결과 자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3미터까지도 접근이 가능했고, 가까이에서 노루의 증명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가 됐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리목 광장은 눈이 오는 겨울철이면 노루 목장이나 다름없었다. 매일 녀석들이 좋아하는 송악을 뿌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리목이 한라산 눈꽃축제 본부 노릇을 하며 사람들이 몰리게 되자 녀석들의 행동도 예전과는 사뭇 달라지고 말았다.



노루의 죽음, 들개피해>교통사고>밀렵순


한라산에 도착한 셋째날. 나는 한라산 서쪽 중산간 골프장 근처에서 4마리의 노루를 만났다. 녀석들은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는데,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리자 곧바로 숲속으로 몸을 피해 달아났다. 몇 시간 후 한라산 북쪽 관음사 인근에서도 7~8마리의 노루떼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녀석들은 정말 순식간에 초원을 가로질러 눈앞에서 사라졌다. 게중에 몇몇 녀석은 마치 목에 무언가가 걸린 개처럼 ‘꺼엉껑’거리며 경계음을 주위에 알렸다. 보다 손쉽게 노루를 만나는 방법이 있긴 하다. 절물자연휴양림 인근에 있는 ‘노루생태공원’을 찾아가면 된다. 그곳에서는 서너 마리의 노루를 항시 볼 수가 있고, 최근에는 20여 마리의 노루를 더 풀어놓을 계획에 있다. 이 녀석들은 지난 폭설 때 먹이를 찾아 내려온 녀석들이라고 한다.



한라산에 눈이 내리면 노루들은 먹이를 찾아 중산간 초원으로 내려온다. 사실 눈은 노루들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기도 한다. 초원이 펼쳐진 중산간에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가 기다리고 있고, 밀렵꾼들이 노루 길목에 설치해 놓은 올무나 덫이 기다리고 있다. 또한 눈이 내리면 중산간 목장지대의 굶주린 개들이 들개로 돌변해 노루를 사냥하기도 한다. 한라산연구소에 따르면 해마다 수십여 마리의 노루가 들개의 피해를 당하고 있고, 또 그만큼의 노루가 교통사고로 죽어나가며, 그보다 많은 수의 노루가 밀렵의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물론 눈이 내리면 절벽에서 미끄러지거나 바위 사이에 발이 끼어 죽는 자연사 피해도 늘어난다. 그나마 오늘날 한라산이 노루의 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노루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민간단체와 한라산연구소)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다.


백록담을 중심으로 약 360여 개의 오름을 거느린 한라산은 다 알다시피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1950미터)이다. 정상 부분은 초원지대와 원시림이 함께 발달해 있고, 중산간은 오름과 초원이 이어져 해안까지 뻗어 있다. 또한 한라산은 높이에 따라 서로 다른 기후를 띠면서 다양한 식물군을 키워낼 뿐만 아니라 초원지대 곳곳에 형성된 습지 역시 다양한 식생을 거느리고 있다. 이런 한라산의 환경은 노루에게도 천혜의 서식환경을 제공해 산 전체를 오늘날 ‘노루의 천국’으로 만들어놓았다. 노루의 천국은 한라산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한라산은 노루가 있기에 오늘날 생태적으로 주목받는 명산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인터뷰-노루 지킴이 30여년 신용만 연구원>

그의 노루 사랑은 1977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라산에는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노루 한 마리 볼 수 없을 정도로 노루의 개체수가 적었다. 무분별한 밀렵으로 노루가 거의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기 때문이다. 그는 77년부터 10여 년 동안 한라산을 오르내리며 올무와 덫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 때는 눈 발자국을 따라 올라가면 60~70개씩의 올가미가 발견되기도 했어요.” 이후 87년부터 90년까지는 군관민 합동으로 올무 철거 작업을 벌였다. 그러자 90년대 초반부터 노루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노루를 사진에 담기 시작한 것은 89년부터. 노루의 소중함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 오늘날 그를 노루 전문가로 만들었다. 그는 어리목 광장에 노루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서 몇 년에 걸쳐 노루관찰일기를 쓰기도 했으며, 노루의 출산과 모성애, 영역싸움에 대한 다양한 사진을 찍어 사람들에게 알렸다. 뿐만 아니라 한라산 식물에도 관심을 두어 <제주도 자생식물도감>과 <한라산의 꽃>을 비롯한 여러 생태적인 작업도 병행해 왔다. 그의 27년에 걸친 노루 사랑은 책상 앞이 아니라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더욱 값진 것이고, 눈으로 직접 관찰하며 경험한 것이므로 더욱 소중한 것이다.




<노루를 보려면>

한라산 노루를 만나려면 한라산에 가야 한다. 겨울철에는 한라산에서도 국립공원관리사무소가 있는 어리목이 노루를 관찰하기에는 가장 좋은 곳이다. 그 밖에도 초원이 많은 중산간 산록도로변에서도 드물게 노루를 관찰할 수 있으며, 겨울에는 제주CC, 나인브릿지 골프장 근처에도 자주 노루가 출현한다. 봄에는 정상 부근 진달래밭 인근에서 자주 노루를 만날 수 있다. 보다 손쉽게 노루를 만나려면 절물자연휴양림 인근의 ‘노루생태공원’을 찾는다면, 언제든 노루를 만날 수 있다. 문의: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064-713-9950~2, 한라산연구소 744-9953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 스크랩은 여기서:: http://blog.daum.net/binkond

And
prev | 1 | 2 | 3 | 4 |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