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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2 눈길에 먹이원정 나온 길고양이 29

눈길에 먹이원정 나온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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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먹이원정 가는 길고양이

 

묘생은 짧고 허기는 길다.

어제 블로그에 소개한 ‘빈집을 지키는 늙은 고양이’의 영역에는
세대차가 좀 나는 턱시도 중고양이도 한 마리 살고 있다.
녀석을 마주친 건 빈집 앞 하수구였다.
녀석은 하수구 입구에 어정쩡하게 서서 폭설 내린 바깥을 한참이나 내다보았다.
“이런 눈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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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이도 왔다. 이 눈이 언제 다 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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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없을 만큼 눈이 내렸다는듯
도무지 길을 나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듯
녀석은 하늘이라도 원망하듯
그렇게 한참을 설경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앉아서 굶어죽으나, 나가서 얼어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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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자면 또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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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은신처인 하수구를 조심스럽게 걸어나와
차박차박 빈집 뒤란을 향해 걸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은 설어서 겉은 살짝 얼어붙은 얼음과 같고 속은 푸석해서 푹푹 빠졌다.
뒤란에서 녀석이 발견한 것은 기껏해야
한 주먹 내다버린 귤껍질과 눈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배추 시래기.
아쉬우나마 녀석은 딱딱하게 언 귤껍질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삼켜본다.
역시 먹을만한 게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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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 어디 가서 밥을 구한담!"

이번에는 발걸음을 빈집 봉당으로 옮겨본다.
어디선가 사료 냄새가 폴폴 풍겨온다.
봉당에서 늙은 고양이가 먹다 남긴 사료 몇 알이다.
봉당 흙 속에 박힌 사료 몇 알을 꺼내 겨우 입안에 넣어보지만,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도리어 배고픔만 자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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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껍질은 맛없어! 시래기도 별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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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다시 빈집을 걸어나와 큰길로 나선다.
녀석에겐 오늘따라 이 길이 한없이 넓어보이고,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이따금 코끝까지 시린 칼바람이 분다.
사람들아! 이것이 보편적인 고양이들의 삶이다.
어쩌다 누군가 버린 음식 쓰레기가 있으면, 그것으로 한 끼를 떼우고,
없으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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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사료 냄새가 폴폴 나는데... 뭐야 이건...빈집 늙은냥이가 다 먹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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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다 열에 일곱은 길에서 객사하는 것.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죽는 것.
그것이 대다수 길고양이의 운명이다.
묘생무상.
그러니 너무 그들을 미워하지 마시라.
미워는 할지라도 돌은 던지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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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저 아래 개울집까지 한번 나가볼까?"

하필이면 차에 항상 가지고 다니던 비상사료까지 바닥이 나
이번에는 나도 녀석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다음엔 꼭 네 몫까지 챙겨오마.’
사실 폭설이 내린 뒤,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더 만났다.
우리 동네 교회를 영역으로 살아가는 노랑이 3남매와 가건물 노랑이 형제,
그리고 언덕 너머 마을의 빈집 고양이와 턱시도 고양이.
당연히 퍼다나르는 사료의 양도 훨씬 늘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자꾸 식구를 늘려가면 어떡하냐고 타박이다.
있는 고양이나 잘 챙기라고 지청구를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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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친절하게 눈을 치워놓았군! 이제 먹이만 찾으면 돼!"

이사를 오면서 집으로 오는 한 마리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 것이
1년 정도 지나자 30여 마리로 늘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 녀석들을 내 혼자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료 후원을 하는 10여 명 이상의 블로그 독자들과 그들을 염려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먹여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저 그들이 보내온 사료와 정성을 배달하고,
가끔 녀석들의 사연과 사진을 찍어 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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