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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5 지금 라싸에선 무슨 일이 14

지금 라싸에선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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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라싸에선 무슨 일이: 티베트 독립운동사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고 포탈라궁 앞에 세워놓은 '티베트 해방 기념비'. 그러나 정작 티베트인들은 중국으로부터의 완전 독립을 원하고 있다.

 

지금 티베트가 심상치 않다. 지난 3월 10일부터 라싸에서는 중국 통치에 맞서 싸웠던 라싸 봉기 49주기를 맞아 대대적인 티베트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3월 10일은 바로 달라이 라마가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한 날이기도 하다. 들려오는 외신에 따르면 이번 봉기는 20년 만에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하고 강제로 티베트를 중국의 자치주로 만든 이후 티베트인들은 끊임없이 독립투쟁을 벌여왔다.

 


제2의 티베트 침략, 현대판 트로이의 목마로 불리는 칭장철로.

 

오랜 동안 중국과 티베트는 대립과 공존을 반복해 왔다. 중국과 티베트가 공존했던 시대에는 ‘차마고도’라는 무역로의 역할이 컸다. 두 나라는 차마고도의 교역과 교류를 통해 공존해 왔다. 그러나 무역로이며 문명로였던 차마고도는 현대에 이르러 중국의 티베트 침공로가 되고 말았다. 1950년 10월 중국은 4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티베트를 침공하였고, 1951년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를 장악함으로써 중국의 실질적인 티베트 지배가 시작되었다. 당시 티베트의 군대란 민병대 수준이어서 중국의 점령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점령 이후 중국은 곧바로 티베트의 동북부에 걸쳐 있던 상당 부분의 캄 지역을 중국 땅에 편입시킴으로써 중국의 영토를 두 배로 확장시켰다. 또한 중국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승려와 저항세력 탄압에 나섰는데, 수없이 많은 티베트인이 당시 체포되고 사살되었다.

중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독립운동은 점점 거세져 1959년 3월 대규모 시민이 참여한 라싸항쟁이 일어났다.

 


라싸 봉기 때 주도적 역할을 했던 드레풍 사원. 젊은 스님들이 교리문답을 하고 있다.

 

이는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벌여온 달라이 라마를 체포하려는 중국군으로부터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를 보호하려는 자발적인 투쟁이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의 라싸 시민이 사살되었으며, 위험에 처한 달라이 라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라싸항쟁은 중앙 티베트 곳곳에 독립투쟁의 불길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지만, 이로 인해 당시에 사살된 티베트인은 모두 10만여 명에 이르렀다. 라싸의 노블링카궁과 간덴사원, 라모체사원이 이 때 처참하게 파괴되었으며, 포탈라궁도 피해를 입었다.

 


모든 티베트인과 순례자들의 성지인 조캉사원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순례자들.

 

중국에 의한 사원 파괴는 문화혁명기(1966~1976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당시 티베트 전역에 남아 있던 6259개의 사원 가운데 파괴되지 않은 사원은 고작 너댓 개에 불과했다. 사원마다 경전이 불태워졌고, 불상과 탕카, 진귀한 보석들은 모두 중국으로 유출돼 밀거래되었다. 당시 중국은 수십만 명의 승려를 강제 환속시켰으며, 모든 종교활동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종교가 곧 생활이었던 티베트인들은 20여 년간의 종교박해 속에서도 신성을 버리지 않고 그들의 종교를 지켜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중국이 다시 종교활동을 허용한 1980년대 저마다 복원된 사원에는 순례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적 탄압은 계속되었다. 1984년 산발적인 독립투쟁이 일어났고, 1987년에 이르러서는 1959년 라싸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독립투쟁이 라싸의 세라사원과 드레풍사원, 시가체에서 연이어 일어났다. 1989년에도 라싸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에 중국 정부는 라싸에 계엄령까지 발표하였다. 계속된 시위와 투쟁으로 무수한 티베트인이 체포, 구금, 사살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라싸의 티베트 전통구역을 무너뜨리고, 중국은 새롭게 중국식 건물을 지어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사실 중국이 이토록 무력으로써 티베트의 지배를 강화하고 있는 까닭은 티베트가 중국의 전략적 요충지이고, 지하자원의 보고라는 점 이외에도 티베트의 광활한 땅(중국 점령 이전의 티베트 땅은 중국 전체 면적의 4분의 1이었으나, 지금은 8분의 1로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티베트는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보다 6배가 크다)을 점진적인 한족의 이주지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은 티베트와 편입시킨 티베트의 옛 땅에 이미 티베트인보다 더 많은 700만 명이 넘는 한족을 이주시켰다. 반대로 티베트인에 대해서는 ‘가족계획’이라는 이름 아래 과거 대규모 불임과 낙태수술을 강제로 실시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제껏 티베트 탄압에 대한 모든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해 왔다. 더욱이 티베트의 탄압에 대해 국제사회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중국은 내정문제에 간섭하는 것으로 취급해 왔다.

 


티베트의 아이, 이 아이가 티베트의 미래다.

 

사실 최근의 티베트는 표면적으로는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강압에 눌린 평화의 허상일 뿐이다. 근대화나 물질적 풍요는 사실상 티베트인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애당초 그들은 돈과 개발에 따른 ‘잘 사는 것’보다 ‘제대로 사는 것’, 즉 다음 환생을 위해 죄 짓지 않고 이번 생을 건너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았다. 그들의 삶은 우리와 비교해보면 거의 난민 수준으로 사는 사람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우리보다 불행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이 불행하게 여기는 건 삶이 아니라 중국에서 벗어날 수 없는 티베트의 현실이고, 달라이 라마가 돌아올 수 없는 조국의 현실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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