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잡지 표지모델 데뷔한 한국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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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잡지 표지모델이 된 동화사 고양이

 

 

겨울에 오동나무가 꽃을 피웠다고 동화사. 팔공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동화사는 신라 소지왕(493년) 때 극달화상이 세운 유서 깊은 절집이다. 경내에는 많은 국보급 문화재도 있지만, 최근 뒤뜰에 금괴가 묻혀 있다는 한 탈북자의 주장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금괴도 보물도 아닌 절집의 고양이들이다. 이슬람권이나 불교 국가를 여행하다 보면 사원마다 흔하게 고양이를 볼 수 있는데, 대체로 우리나라도 그런 편이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무릇 뭇 생명들에게 자비와 공양을 베푸는 것이 사찰의 인심인 것이다.

 

 

 

“고양이에게 먹이 주지 마세요”

가을이 한창일 무렵 동화사를 찾았다. 남쪽이어서 아직 단풍은 일렀지만,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는 제법 가을물이 들어 있었고, 경내의 코스모스는 만개해서 청명한 가을하늘과 잘 어울렸다. 통일대불이 있는 곳에서 계단을 올라 공양간으로 올라가는데, 장독대 항아리 사이에 고양이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고등어무늬 중고양이였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계단을 가로질러 시누대 숲으로 몸을 숨겼다. 봉서루 지나 화엄당, 동별당, 대웅전까지 찬찬히 구경하고 내려와 종무소 뒷길로 올라가는데, 이번에는 노랑이 두 마리가 문 앞을 기웃거리고 있다. 내가 문 앞으로 다가서자 두 녀석은 출입금지 구역으로 줄행랑을 놓는다.

 

 

가는 고양이 꼬리도 잡지 말라 했거니, 쿨하게 돌아서 칠성각 쪽으로 좀 더 걸음을 옮기자 서별당 봉당 한편에 삼색이 한 마리가 곤하게 낮잠을 자고 있다. 10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뒤편에는 흰둥이가 가을볕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찰칵찰칵. 연이은 셔터소리에 단잠을 깬 삼색이와 흰둥이가 몽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공연히 단잠을 깨운 것이 미안해 사료 한 봉지를 꺼내 삼색이 앞에 공양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삼색이보다 먼저 뒤에 앉아 있던 흰둥이가 달려와 사료맛을 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고양이 녀석도 대열에 합류했다. 오래전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갔을 때, 사원의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한 그릇씩 퍼주던 스님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절집에 찾아온 배고픈 고양이에게 사료 공양 정도는 부처님도 이해하실 거다. 하지만 그곳의 스님은 달랐다. 요사채를 나오던 한 젊은 스님이 사료 먹는 고양이를 보더니 나한테 ‘고양이에게 먹을 것 주지 마세요’ 그런다. 스님 앞에서 ‘예’ 하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불가의 측은지심이 이렇게 야박하지는 않을 텐데, 라는 생각. 한참이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료를 다 먹은 고양이들은 내게로 다가와 불쌍한 중생에게 공양을 더 하라며 냥냥거렸다. 스님의 말을 따르자니 고양이가 울고, 고양이의 의사를 따르자니 스님이 지청구를 놓을 게 뻔했다.

 

 

요사채 앞 쓰레기장 입구에는 이런 경고 문구까지 붙어 있었다. “야생동물(고양이)에게 먹이 주지 마세요” 배설물로 절이 오염되고, 생태계 교란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였다. 나는 묻고 싶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고양이보다 이곳을 찾는 일부 몰지각한 관광객들이 절을 더 오염시키고 있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않게 되면, 굶주린 고양이는 배를 채우기 위해 오히려 새나 다른 동물을 사냥할 수밖에 없다. 생태계 교란은 밥을 주지 않았을 때가 훨씬 심각한 셈이다. 그리고 그것을 떠나 생명과 자비를 중시하는 절집에서 야생동물 밥 주지 말라고 말한다는 게 너무 야박하고 가혹한 처사 아닌가.

 

 

내가 잠시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세 마리 고양이는 이제 서별당 뒷문간 앞에 앉아 냥냥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 녀석들의 행동은 당당했다. 그 때였다. 뒷문이 한뼘 정도 열리더니 방안에서 누군가 음식을 한 그릇 고양이에게 내주었다. 스님인지 보살인지 보지는 못했지만, 경내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도 분명 고양이를 긍휼히 여기는 존자(尊者, 학문과 덕행이 높아 존경받는 불제자)는 있었던 것이다. 뒷문으로 음식을 내놓는 것을 어디선가 지켜보던 고양이가 또 있었는지 갑자기 노랑이 두 마리도 이곳으로 달려왔다. 다섯 마리 고양이가 번갈아가며 뒷문간의 음식을 나눠먹는다.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독차지하지도 않고. 이 사이비 눈에도 그것은 보기에 좋았다.

 

 

고양이 공양

서별당 뒤쪽 에움길로 올라가면 칠성각이 나오고 조사전과 산신각으로 이어진다. 칠성각에 이르러 가방을 내려놓고 잠시 늙은 산벚나무 그늘에 앉아 쉬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바로 내 머리 위, 벚나무 위에서 냐앙거리던 노랑이 한 마리가 풀쩍 내 앞으로 뛰어내리는 거였다. 느닷없이 칠성각 늙은 산벚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고양이. 놀란 가슴을 진정할 틈도 없이 녀석은 다짜고짜 내게 먹을 것을 요구했다. 있는 것 다 알아. 어서 내놔. 누가 봐도 그건 ‘삥 뜯는’ 불량 고양이의 태도였고,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하다고, 나는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마침 칠성각에서 산길로 이어지는 길목에 공양단이 보였다. 이미 누군가 뭇 생명을 위해 과일이며 떡을 올려놓았다. 여기다 공양하는 것은 스님도 어쩌지 못하겠지. 그래봐야 나에겐 샘플사료 두 봉지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보채는 고양이를 데리고 공양단으로 가는데, 녀석의 냥냥거리는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여기저기서 고양이들이 몰려왔다. 주로 뒤늦게 나타난 고양이는 산에서 내려왔다. 노랑이가 세 마리, 회색 고양이가 두 마리, 카오스 한 마리. 회색 고양이 한 마리와 노랑이 한 마리는 멀찍이서 관망을 했고, 나머지 고양이는 공양단에 올라 사이좋게 그것을 나눠먹었다.

 

 

사료맛을 본 고양이들은 이제 자석처럼 나를 졸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법당 쪽으로 가면 우르르 법당으로, 내가 벚나무 쪽으로 가면 우르르 벚나무 아래로. 내가 이미지 사진 좀 찍어보자고 기와 담장을 찍고 있으면, 어느 샌가 녀석들은 담장 위로 올라와 카메라 앞을 얼쩡거렸다. 그 중에서도 벚나무에서 뛰어내린 노랑이와 뒤늦게 합류한 카오스 녀석은 조사전을 거쳐 칠성각까지 나를 따라왔다. 게다가 카오스 녀석은 스님이 불공을 드리고 있는 조사전 법당 안으로 천연덕스럽게 들어가더니 잠시 문턱에 앉아 있기도 했다. 법당 문턱에 앉아 있는 고양이 보살을 보고 누군가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다면 녀석은 좀 더 오래 거기서 보살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으리라.

 

 

가만 보니 이 녀석들 사람 따라다니는 것에 상습적인 데가 있었다. 일본에서 온 듯한 관광객 두 명이 조사전 앞에 나타나자 녀석들은 일제히 나를 버리고 우르르 그 여자들 앞으로 달려갔다. 한 여성 관광객이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의 바스락 소리가 녀석들을 유혹했던 것이다. 녀석들은 한참이나 관광객을 따라다니며 냥냥거리더니 아무 소득 없이 나에게로 복귀했다. 그 때 산신각에 나타난 한 여성. 익숙하게 가방을 열더니 고양이 간식을 꺼내들었다. 나는 또 한 번 고양이들에게 버림받았다. 산신각 뒤쪽에서 등장한 새로운 삼색 고양이도 그녀 앞에 순한 양처럼 엎드렸다.

 

동화사 조사전 앞의 고양이. 이 사진은 최근 일본 잡지의 표지사진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녀는 가져온 간식을 세 마리 고양이에게 차별 없이 나눠주고, 산신각 뒤로 걸음을 옮겼다. 산신각 뒤편에 고양이 밥그릇과 물그릇이 있었다. 누군가 이곳에 몰래 고양이 밥을 주고 있었다. 그녀는 물그릇에 반쯤 남은 생수를 부어주고 나왔다. 야생동물과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 문구는 이곳에도 붙어 있었다. 수많은 절집을 다녀봤어도 대놓고 동물에게 먹이 주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붙인 곳은 여기밖에 없다. 최근에 나는 고양이 여행을 위해 터키, 모로코, 대만, 일본, 라오스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의 사원이나 모스크에서 당연하게 고양이에게 사료와 음식을 내놓는 모습을 만나곤 했다. 특히 불교국가인 라오스에서는 사원마다 새벽 딱밧(탁발)이 끝나면 절집에 찾아온 거지들과 경내의 개와 고양이에게 두루 아침 공양을 하는 모습을 숱하게 봤다. 진정한 불제자의 모습이 어떤 건지는 우리 같은 중생도 알 수 있다.

 

 

간식까지 얻어먹은 고양이들은 이제 조사전 앞뜰에 여기 저기 널브러져 그루밍을 한다. 코발트블루에 가까운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게 단청 너머로 펼쳐져 있는데, 고양이는 그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그루밍을 하고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그루밍을 끝낸 노랑이는 조사전과 푸른 하늘을 뒤로 하고 아예 편하게 엎드려 낮잠을 청한다. 이 멋진 풍경을 액자에 담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가을날이다. 달그랑 달그랑, 어디선가 풍경소리 그윽하게 바람에 실려 온다. 사실 동화사 고양이 이야기는 고양이책 <흐리고 가끔 고양이>에도 실려 있는 내용인데, 조사전을 배경으로 한 고양이 사진은 최근 일본 잡지의 표지사진으로도 사용되었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잡지에 <한국의 고양이>란 특집기사를 게재할 때, 잡지사에서 이 사진을 표지사진으로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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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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