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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15 그 여자의 여행가방을 엿보다 (7)

그 여자의 여행가방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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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여행가방을 엿보다
- 이하람 <그 여자의 여행가방>(랜덤하우스)



그녀를 알게 된 건 2년 전 어느 겨울이었다. 몽골 알타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나는 비공개적으로 동행자를 구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녀가 함께 가고 싶다는 쪽지를 남겼다. 그러나 과연 그녀가 함께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녀도 책에서 밝혔듯이 “몽골은 쉽게 짐을 싸게 만드는 호락호락한 여행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몽골에서도 알타이는 한국에서 이제껏 누구도 제대로 여행한 사람이 없는 척박한 오지이자 미지의 땅이었다. 그녀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알타이 여행은 고생길이 뻔한 여행이니 포기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알타이 초원을 달리는 푸르공에라도 올라탄듯 마음의 시동을 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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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추위와 물부족,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견디며 우리는 보름간의 알타이 여행을 함께 했다. 길동무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그녀는 한때 방송작가였고, 리포터와 MC, 아나운서로도 활동한 ‘꽤 잘 나가는’ 여자였다. 게다가 보름간의 그 험한 여행을 묵묵히 잘도 견뎠으며, 종종 나보다도 더 험난한 여정을 즐기곤 했다. 사실 그녀의 알타이 여행은 어쩌면 진작부터 예정돼 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럽과 일본을 거쳐 터키와 이집트를 다녀온 그녀 입장에서는 모험같은 알타이 여행이야말로 궁극의 로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0대 후반에 떠난 8개국 26개 도시의 기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별이 쏟아질듯 반짝였다. 그토록 크고 반짝이는 별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참 동안 새벽하늘을 올려다봤다. 땅위에 인간이 만들어낸 빛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지구의 정직한 어둠과 우주의 숭고한 별빛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몽골에서 밤하늘의 별을 가득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반짝이는 별과 같은 이야기를 담은 책을 한권 펴냈다. <그 여자의 여행가방>이란 제목이다. 조심스럽게 나는 그 여자의 여행가방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그녀가 지난 2년간 수도 없이 싸야 했던 여행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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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그녀가 2년에 걸쳐 여행한 8개국 26개 도시에 대한 여행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것은 20대 후반의 그녀가 겪어야 했던 제2의 성장통에 다름아니었다. 그녀도 남들처럼 직장을 그만두면 앞으로의 살길이 막막하기만 할것 같았고, 이별을 하면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행을 통해 다르게 사는 법을 배웠고, 마음을 얻고 비우는 법을 배웠다. 흔한 말로 여행을 통해 인생을 배운 셈이다. 그녀는 여행을 하며 나약한 자신에게 싸움을 걸었고, 매번 그 싸움을 보기좋게 이겨냈다.

여행(旅行)과 여행(女行) 사이

그녀에게 있어 여행의 순간은 치열하게 살았던 청춘의 기록이었고, 끊임없이 질문하던 인생에 대한 해답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매순간 깨어 있게 한 진정한 삶의 순간이었으며, 기억을 추억으로 남기게 해준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는 결코 여행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내용이 아니다. 여자 혼자의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터득한 여행(女行)이고, 여행지에 던져진 나의 본색을 찾아가는 또다른 여행(旅行)인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여행은 From이 아닌 To,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고 싶은 것이라고. 다시는 오지 못할 곳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오고 싶은 곳을 찾는 과정이라고. 그러니까 이 책은 여행의 목적을 찾느라 우리가 놓치고 있던 ‘여행의 본색’을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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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녀는 비행공포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여행하며 비행한 시간이 80시간이 넘는다. 책을 통해 그녀가 말하는 유럽은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이 아니라 조용하고 몽롱한 파리의 뒷골목이며 할머니들의 조곤조곤한 샹송이 귓가를 간질이는 한적한 공원이다. 터키에서도 이집트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녀는 무슨무슨 유명한 유적지나 관광지보다 먼저 타인과 친해지는 법을 배웠고, 여행의 이면을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여행한 몽골에서는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와 마음을 비우고 그 안에 초원의 별을 채워오는 법을 배웠다. 이제 그녀의 20대 후반의 여행은 끝났다. 하지만 그녀는 또다시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다. 그녀는 또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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