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집에 새끼 낳은 고래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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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집에 새끼 낳은 고래고양이

 

길에서 묘생을 사는 길고양이는 주로 봄에 출산을 한다. 적게는 1~2마리, 많게는 5~6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데, 사산율이 꽤 높은 편이다. 전원주택의 경우 작년에는 세 마리 임신묘 가운데 한 마리가 사산했고, 올해는 다섯 마리 임신묘 가운데 벌써 두 마리가 사산을 했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고양이의 사산율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높은 것만은 사실이다. 이는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영역동물인 고양이에게 나타나는 환경적인 요인이 많이 작용하는 듯하다. 잘 먹어야 하는 임신묘 시절의 영양부족이나 해로운 음식 섭취, 안전하지 못한 출산 장소,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인 생존 스트레스 등이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

 

 임신전의 날렵한 고래무늬(위)와 임신후 살찐 고래의 등무늬(아래).

 

전원주택에서 유일하게 내가 두어 번 만져본 고양이 고래도 올 봄부터 배가 불룩해졌다. 이미 이곳에서 첫 출산을 했던 금순이는 여섯 마리를 사산했고, 다롱이는 두 마리를 낳았으며, 산둥이(순둥이)와 팬더(꼬맹이)도 집 바깥의 어딘가에서 출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롱이의 엄마인 금순이를 제외한 다른 임신묘들이 모두 다롱이에게 쫓겨났다. 출산 이후 팬더만이 다시 전원주택으로 돌아왔고, 다른 고양이들은 여전히 바깥에서 눈치를 보며 몰래몰래 찾아와 밥을 먹고 가곤 한다. 가장 먼저 다롱이에게 쫓겨난 고등어 3남매는 아예 이 동네를 떠난 듯하고, 성묘 고등어 한 마리는 고래와 함께 전원주택 아래 소나무밭에서 피난살이를 하고 있다.

 

 아래쪽 소나무밭 피난처에서 뒤뚱뒤뚱 전원주택으로 올라오는 고래고양이.

 

“다롱이 저것이 얼마나 여우같은지. 새끼를 배서 배가 불룩한 고래하고 순둥이(산둥이)를 쫓아내서 못오게 해요. 내가 두 녀석들 먹으라고 집 뒤에다 몰래 사료를 챙겨주는데, 그것까지도 지가 지키는지, 어제는 그대로 있더라고. 다롱이 이게 얼마나 까칠한지, 지 새끼 좀 내가 만졌다고 그날로 두 마리 새끼를 물어다 저 뒤에 컨테이너 밑으로 옮겼나 봐요. 꼬맹이만 다시 받아들이고, 다른 애들은 다 쫓아냈어. 지네 식구들끼리만 살려고 하는 건지, 참.” 할머니는 요즘 다롱이가 못마땅해서 여러 번 혼을 내기도 한 모양인데, 다롱이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다롱이가 없는 틈을 타 마당에서 눈치를 보며 밥을 먹고 있는 고래.

 

그래도 배가 불룩한 임신묘가 굶고 지낼 수는 없으니까, 고래는 정말로 배가 고파서 못참을 정도가 되면 전원주택을 찾아와 눈치를 보며 다롱이가 없는 틈을 타 먹이를 먹고 가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일부러 고래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보초를 서는데, 아랑곳없이 다롱이는 그런 고래마저 쫓아내기 일쑤였다. 나도 전원주택에 갈 때마다 고래를 불러서 따로 사료를 먹이곤 했는데, 희한하게 내가 번을 설 때면 다롱이도 함부로 근접을 하지 못했다.

 

 마당을 돌아다니며 출산 장소를 찾고 있는 고래.

 

한번은 내가 전원주택으로 걸어서 올라가는데, 고래가 소나무밭에서 냐앙냐앙 울었다. 내가 녀석을 부르자 고래는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뒤뚱뒤뚱 걸어왔다. 뒤에는 쫓겨난 고등어 녀석도 줄레줄레 따라왔다. 나는 두 녀석의 피난처인 소나무밭에 사료를 푸짐하게 부어주었다. 그 후에도 몇 번 나는 소나무밭에 고래를 위한 식탁을 따로 차려주곤 했다. 며칠 전이었다. 그날은 내가 소나무밭에 사료를 부어주었는데도 녀석은 먹지 않고, 대고 나를 따라 전원주택으로 올라왔다. 배를 보아하니 출산이 임박해서 오늘 내일 그랬다. 아무래도 녀석은 출산만큼은 전원주택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다롱이에게 쫓겨나 다시 소나무밭 피난처로 내려가고 있는 고래고양이.

 

다행히 그날은 전원주택 마당에 다롱이가 보이지 않았다. 고래는 눈치를 보며 한참이나 사료를 먹더니 잠시 마당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러고는 집안 곳곳을 휘휘 둘러보는 거였다. 출산장소를 찾는 듯했다. 할머니는 고래가 기웃거릴 때마다 마당가 컨테이너 문을 열고 고래를 불렀다. 그곳에 고래를 위해 할머니가 따로 출산박스를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래는 그곳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가 문을 열어놓자 잠시 그 안으로 들어가 잠시 머물긴 했지만, 녀석은 도로 컨테이너를 나와 테라스 위의 박스를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이미 박스마다 한 마리씩 자리를 차지하고 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나무밭 언저리, 내가 부르자 뒤뚱뒤뚱 걸어와 먹이를 기다리는 고래 녀석. 뒤에 함께 쫓겨난 고등어 녀석도 있다.

 

결국 고래가 마지막으로 찾아 들어간 곳은 개집이었다. 개집 앞에 이르러 고래는 개집 주인인 처녀개 반야에게 뭐라고뭐라고 냐앙냐앙거렸다. “나 집 좀 빌려줘. 새끼 낳을 데가 여기밖에 없는 것같아!” 그건 꼭 그렇게 말하는 것같았다. 마음 착한 반야는 그렇게 하라며 선뜻 집을 내주었다. 반야는 “그래 내가 보초까지 서 줄게!” 그러는 것같았다. 다행히 고래는 집 바깥이 아닌 전원주택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다. 이제 저곳에서 새끼만 낳으면 되는 것이다.

 

 처녀개 반야에게 개집을 출산 장소로 써도 되느냐고 묻는 고래. 결국 고래는 개집에서 출산을 했고, 다섯 마리를 사산했다.

 

이틀 전 고래가 출산을 했는지 궁금해서 나는 다시 전원주택을 찾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고래는 보이지 않았다. 고래는 다시 쫓겨난 것일까? “아이고 그날 고래가 개집에 들어가 새끼를 낳으려고 그러는데, 다롱이가 몇 번이나 쫓아내려고 그러는 거야. 헌데 고래도 그날은 날 잡아잡수 하면서 안나가더라구. 그래서 결국 개집 속에 새끼를 낳았지 뭐야. 혹시나 해서 내가 지키고 있는데, 대낮에 고래가 새끼를 낳았어. 다섯 마리나. 근데 이게 뭔 조환지. 다섯 마리 다 죽어서 나왔더라구. 모두 사산을 했어. 몸도 다 추스르지 못했는데, 이게 또 다롱이한테 쫓겨난 건지. 안 보여!” 할머니가 지켜보면서 죽은 새끼 다섯 마리를 다 받아냈다고 한다.

 

 출산 후 다시 쫓겨나 소나무밭 피난처에서 몸을 추스르는 고래고양이.

 

이 녀석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 아픈 마음으로 또 고래는 다롱이에게 쫓겨서 소나무밭으로 내려갔으리라. 나는 고래가 쫓겨내려간 길을 따라 타박타박 고래를 찾아 내려갔다. 그리고 소나무밭 언저리에 이르러 고래를 불러보았다.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소나무밭 깊숙한 곳까지 걸어들어갔다. 어디선가 냐앙냐앙 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래였다. 녀석은 소나무 아래 앉아서 숨을 색색거리며 쉬고 있었다. “왜 또 내려왔어. 거기 있지 않고!” “냐앙~!” “많이 힘들었지?” “냐앙~!” 녀석은 그저 담담했다. 누굴 탓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이거라도 먹고 힘을 내, 알았지?” 나는 녀석 앞에 수북하게 사료를 부어주고 숲을 빠져나왔다. 길가에는 배꽃이 피고 자두꽃이 피고, 앵두꽃이이 졌다. 라일락이 피고, 목련이 졌다. 꽃잎의 말로 나는 중얼거렸다. “이번 봄은 많이 아프구나!” 비가 그치고, 황사가 걷힌 하늘은 오랜만에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지그시 펼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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