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실에 버려진 고양이, 여성단체 식구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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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에서 거둔 고양이, 여성단체의 유일한 수컷




지난 겨울, 몹시도 추운 어느 날이었다. 어디선가 가늘게 아기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진원지는 여성평화의집 지하실이었다.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가 봤죠. 꼬물거리는 3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노랑이 어미 품에서 젖을 물고 있었어요. 그때 ‘나비’를 처음 봤죠. 그리고 한달쯤 지났을까. 어미 노랑이가 2마리의 새끼만 데리고 사라진 거예요. 젖먹이였던 ‘나비’만 지하실에 남게 된 거죠.” 한국여성단체연합 유일영 씨의 말이다. 유일영 씨는 버려진 ‘나비’를 이제껏 먹이와 물을 주며 9개월 이상 보살펴온 장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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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지하실에 버려졌던 고양이 '나비'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보살핌으로 행복한 '뜰고양이' 생활을 하고 있다(위). 기지개를 켜고 평화의집 산책에 나서려는 나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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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는 그가 보살펴온 고양이의 이름이다. 그냥 나비라서 나비라고 부른 게 나비의 이름이 되었다. 나비는 여성평화의집 뜰에서 살아가므로 길고양이도 집고양이도 아닌 ‘뜰고양이’로 통하는데, 사무실 사람들과 정이 들어 이제는 다들 나비를 ‘우리 고양이’라 부를 정도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마스코트가 다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옆 건물 사람들도 이 녀석을 무척이나 귀여워해서 종종 녀석의 밥그릇에는 멸치와 야쿠르트 간식까지 올라온단다. 수컷인 녀석은 애교도 많고 붙임성이 좋아서 낯선 사람을 봐도 별로 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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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하다 잠시 커다란 고목 앞에 앉아 명상에 빠진 고양이(위). 평화의집 산책에 나선 나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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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비를 보살피고, 나비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내가 녀석을 만난 건 며칠 전이다. 오후 늦게 찾아간 여성평화의집 뜰에서 녀석은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산책하는 녀석의 뒤를 내가 졸졸 따라다니자 녀석은 잠시 나를 빤히 올려다보더니 ‘음 모르는 녀석이군!’ 하면서 뜰의 숲 그늘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녀석은 숲 그늘을 나와 내 앞을 보란듯이 지나쳐 풀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뜰에 웃자란 잡초를 낚아채고 물어뜯는 장난이었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녀석은 그 장난에 한참이나 빠져 있더니, 다시 산책에 나섰다. 자신의 영역인 여성평화의집을 한 바퀴 둘러보며 냄새를 묻혀 영역 확인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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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질주 본능. 뜰을 몇 바퀴 돌고서야 나비의 우다다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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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산책만 해서는 심심했던지 녀석은 갑자기 ‘우다다 본능’을 드러냈다. 기어이 녀석은 뜰을 서너 바퀴 찍고서야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녀석은 낯선 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지 내 가방의 끈을 이리저리 붙잡고 장난도 쳤다. 그리고는 내 앞에서 보란 듯이 발라당과 뒤집기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저도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있지만, 이 녀석이 훨씬 살갑게 구는 거예요. 나비가 우리에게 보살핌을 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녀석은 나비에요. 출근할 때도 가장 먼저 이 녀석이 반겨주죠. 우리가 출근할 때쯤이면 나비는 아예 건물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혹시라도 바빠서 밥을 챙겨주지 못하면 녀석은 줄레줄레 사무실까지 올라와 밥 달라고 야옹거려요.” 유일영 씨에 따르면 얼마 전 나비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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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풀장난. 낚아채고, 잡아댕기고, 물어뜯고... 일종의 사냥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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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덫에 걸려 고생한 나비

어느 날 한 여성이 이곳을 찾아와 ‘나비’를 찾더라는 것이다. 누군가 이곳에 길고양이가 있다면서 구청에 신고를 했다는 것인데, 그 여성은 다짜고짜 먹이걸이식 통덫을 들고 와 뜰에 설치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그 분은 길고양이들에게 중성화수술을 시켜준다고, 자신 또한 시간을 내서 하는 봉사활동이라고 신념에 차서 말했지만, 우리 나비는 더 이상 길고양이도 아니고 우리가 키우는 우리 고양이잖아요. TNR 한다고 잡아가서 수술시키고 귀 커팅하고 엉뚱한 곳에 방사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반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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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한 구석 낙엽더미가 이 녀석의 화장실이다(위).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는 나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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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 잠시 한눈을 파는 동안, 나비가 통덫 안에 놓여진 캔을 먹으러 덫 속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결국 녀석은 먹이걸이식 통덫에 갇히고 말았다. 뒤늦게 그것을 발견하고 달려갔더니 녀석도 뒤늦게 자신이 갇혔다는 것을 알고는 공포에 질려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간신히 통덫에서 녀석을 구조했지만, 녀석은 한동안 공포와 불안 속에 덜덜 떨고 있었다. 사실 TNR(중성화수술 후 제자리 방사)이란 것이 어쩔 수 없는 길고양이대책이긴 하지만, 요즘 TNR 사업은 관리당국의 무지와 용역업체의 잇속챙기기로 인해 악용, 변질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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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이 있는 여성평화의집 전경(위). 여성단체연합에서 보살피는 나비와 얼룩이가 급식장소에 앉아 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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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성평화의집 ‘나비’는 다시금 안정을 찾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의 2시간 넘게 나비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쯤,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돌보는 또 다른 고양이 ‘얼룩이’가 돌아왔다. 올 봄부터 이곳의 뜰을 찾아오기 시작한 얼룩이는 여기서 언제나 밥과 물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녀석은 급식이 끝나면 어디론가 사라져 이렇게 때가 되면 다시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 녀석 얼굴이 온통 검뎅이로 얼룩져 있다. 어디서 굴뚝을 청소하고 왔는지, 연탄을 배달하고 왔는지, 도대체 녀석이 어디서 뭘 하다 왔는지는 이곳 사람들조차 언제나 미스테리라고 한다. 이 녀석의 미스테리한 행동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한번 더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 고양이의 사생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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