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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1 영주댐 수몰마을의 마지막 고양이들 (4)

영주댐 수몰마을의 마지막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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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댐 수몰마을의 마지막 고양이들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 금강마을. 예정대로라면 이곳은 2015년 영주댐 건설 공사로 수몰이 된다. 수몰을 앞둔 어느 가을에 금강마을을 찾았다. 보존 가치가 높은 희귀한 모래강, 내성천은 여기저기 파헤쳐진 채 공사 트럭의 행렬이 이어졌다. 4대강 공사의 일환으로 풍수해 방지를 위한 댐이라는데, 마을에 사는 한 주민의 말로는 대대로 이 마을에 살았어도 풍수해를 입은 적이 별로 없다고 한다. 개발과 건설이 미덕인 토건족의 나라에서는 길이라는 것이 무조건 포장해야 하는 것이고, 강이나 하천은 볼 것 없이 시멘트로 싸발라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가. 꼭 그래야만 하는 건가. 그것이 수많은 가치 있는 것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정말로 가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잠시 지구로부터 이 땅을 빌려 쓰는 것뿐인데, 이렇게 마음대로 산을 허물고 강을 파헤치고 시멘트 ‘공구리’를 해도 되는 것인가.

 

 

마당에는 대추를 말리고 있고, 고양이는 흙벽 그늘에 앉아 졸고 있다.

 

사실 <흐리고 가끔 고양이> 작업을 위해 내가 들렀을 때, 금강마을은 이미 주민 이주가 시작되어서 60여 가구 가운데 10여 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을을 떠난 뒤였다. 사람들이 떠나기 전 금강마을의 마지막 가을이었던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고향을 충주댐에 빼앗긴 수몰민이다. 30여 년 전(당시 중학생) 충주댐이라는 거대한 다목적댐은 강에 젖줄을 대고 살던 강마을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실향민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시 고향에 선산과 논밭이 상당했던 우리집은 서울의 변변한 집 한 채 값도 안 되는 보상금을 받고 쫓겨나야 했다. 지금 같으면 보상금이 적다고 거리로 나가 억울함을 호소했겠지만, 그때는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이었고, 광주 시민들에게 총까지 쏘던 시대라 우리는 입도 벙긋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쫓겨난 사람들 대부분은 지방 소도시 변두리쯤에서 영세한 시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강마을의 문화와 생태계를 송두리째 수장한 것은 그렇다 치고, 수많은 수몰민의 생계를 위한 합리적 보상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가시덤불이 뻗어오른 빈집 쪽마루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자세로 앉아 있는 고양이. 마음이 짠하다.

 

10여 가구밖에 남지 않았지만, 금강마을은 생각보다 썰렁하지는 않았다. 여기저기 빈집이 수두룩해도 남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마지막 농사를 짓고 수확을 하느라 평상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마을회관엔 여전히 마실 온 노인들로 온기가 돌았고, 마당마다 대추를 말리는 손길이 분주했다. 골목의 감나무엔 주렁주렁 감이 달렸고, 직박구리가 떼지어 감나무를 습격하곤 했다. 마을회관을 지나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설 때였다. 차가 한 대 주차된 마당에 중고양이로 보이는 노랑이 두 마리가 이쪽을 보고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갑자기 마주친 고양이. 서둘러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찍으려는데, 녀석들이 먼저 두어 발짝 앞서나와 냥냥거렸다.

 

"우리가 간다" 수몰마을의 귀여운 냥아치들.

 

시골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도 도망을 가지 않고, 일면식도 없는 내게 밥 달라고 목울대를 높이는 걸 보면 어디서 밥께나 얻어먹은 듯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가방에 항상 사료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녀석들이 알 리 없을 텐데. 어쨌든 우는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사진 찍는 것도 뒤로 하고 마당에 사료를 한 움큼 풀었다. 음냥냥냥, 아그작 아그작 사료 먹는 소리가 다른 고양이를 불러들였을까. 다 큰 노랑이 한 마리가 옆집 담장을 넘어왔다. 빈집으로 남은 마당에서 홀로 해바라기를 하던 녀석이다. 녀석은 사료 먹을 생각은 않고 허공에 대고 한참이나 냐앙, 냐앙 누군가를 불렀다. 새끼를 부르는 소리였다.

 

 

집 부엌 쪽에서 두 마리 아기고양이가 걸어나왔다. 한 마리는 노랑이, 다른 한 마리는 턱시도였다. 태어난 지 3개월도 채 안된 녀석들로 보였다. 나란히 걸어오던 두 마리는 거리가 가까워지자 아기 노랑이가 앞장을 서고, 턱시도는 한발 뒤에서 절룩거리며 따라왔다. 다리를 다친 턱시도. 나는 한 번 더 푸짐하게 사료를 풀었다. 중고양이 두 마리, 아기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어미고양이. 알고 보니 이 녀석들은 모두 한 가족이었다. 아무래도 이 집에서 녀석들을 보살피는 듯했다. 그럼 그렇지, 부엌 앞에 닭죽으로 보이는 고양이 밥이 커다란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있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산중마을이나 바닷가 마을에서 더러 고양이 밥을 주는 풍경을 목격할 때가 있다. 도시에서처럼 사료나 고양이용 캔이 아니라 그냥 밥에다 생선살을 비벼 내놓았거나 먹다 남은 고깃점을 섞어 준 그런 밥. 이런 고양이 밥을 볼 때마다 나는 군불을 지핀 듯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비록 사료가 없어도, 고양이를 생각하는 그 마음. 고양이를 걱정하는 그 마음 한 그릇. 작은 동네라 고양이들에게 소문이라도 난 걸까. 골목 저쪽에서 노랑이 한 마리가 이쪽을 기웃거리며 코를 벌름거렸다. 가까이 오지는 못하고 녀석은 근처 감나무 아래 앉아서 사료 먹는 고양이 가족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내가 다가가자 녀석은 마당 한가득 대추를 말리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당 가득 대추를 말리는 집 봉당에 앉은 노랑이 한 마리. 봉당 아래엔 고양이 밥그릇으로 보이는 찌그러진 양은그릇이 보였다. 한동안 밥을 주지 못했는지, 바닥은 새카맣게 말라붙어 있었다. 거기 사료를 한 움큼 내려놓고 나오는데, 헛간에 숨었던 녀석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나를 배웅했다. 여기저기 보이는 빈집들 마당은 쑥대밭이 되었고, 가시덤불이 대청마루까지 뒤덮은 집도 있었다. 어떤 빈집에서 만난 고양이는 참 쓸쓸해 보였다. 가시덤불이 뻗어 오른 쪽마루에 앉아 녀석은 그냥 낮잠을 자고 있었을 뿐인데, 구멍이 숭숭 뚫린 창호문을 배경으로 그저 앉아 있었을 뿐인데, 꼭 빈집을 지키는 고양이 같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고양이 같아서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수몰이 되면 이곳에 있던 마지막 고양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저 뒷산을 타박타박 넘어가겠지.

 

찬찬히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에 옛빛 그윽한 고택 담장에 앉아 있는 카오스 녀석을 만났다. 감이 익어가는 감나무와 고택의 날렵한 처마지붕과 아련한 흙벽을 배경으로 앉아 있던 고양이는 나를 보자 갑자기 담장에서 뛰어내렸다. 아까 사료 주는 거 몰래 지켜봤다는 듯 녀석은 보자마자 내 앞에서 발라당을 하고 가랑이 사이를 드나들며 부비부비 하더니 계속해서 내 뒤를 졸졸졸 따라왔다. 100미터 가까이 따라오던 녀석이 걸음을 멈춘 곳은 ‘장씨 고택’ 대문 앞이었다. 녀석은 마치 손짓하듯 나를 부르더니 고택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을 따라 나도 고택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행랑채와 사랑채까지 갖춘 꽤 규모가 큰 집이었다. 뒤란에는 항아리가 가득했고, 넓은 마당에는 황혼이 가득했다. 녀석이 이 집의 고양이인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녀석은 나를 이 집으로 이끌었고, 지금은 뒤란 항아리 위에 올라가 그루밍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집과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싶었던 걸까. 사료를 한 움큼 줘도 먹는둥 마는둥 시큰둥한 걸 보면 딱히 배가 고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간다고 하자 녀석은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았고, 장독대 아래로 내려와 그저 내가 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어느덧 내성천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수몰마을의 마지막 가을. 이제 사람들마저 마을에서 다 떠나면 남은 고양이들은 어떻게 살까. 사람들이 다 떠난 마을에 물까지 들어차면 녀석들은 또 어디로 갈까. 영문도 모르고 녀석들은 타박타박 저 고개를 넘어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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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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