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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9 눈 먹는 고양이 (25)

눈 먹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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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고양이

 

고양이가 눈을 먹는 모습은 지난 해 겨울에도 두어 번 목격한 적이 있다.
길고양이는 물과 땅이 얼어붙고 눈마저 내리면
마실 물이 없어 종종 얼음을 혀로 녹여먹거나
눈으로 물을 대신하곤 한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눈을 먹는 행위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며
전혀 이상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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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자주 봅니다 그려...눈이 쌓여서 사료 배달을 못나갔나?"

그러나 고양이가 눈을 먹거나 얼음을 녹여먹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긴 그런 날씨에 그런 모습을 보려고 길고양이를 관찰하는 것도 참 어리석은 일이겠다.
눈이 그치고 햇볕이 살짝 비추는 오늘
파란대문집 달타냥은 아침부터 눈 쌓인 밭을 무료한듯 거닐고 있었다.
내가 집 앞에 나타나자 녀석은
길동무라도 만난듯 앙냥거리며 꼬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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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목이 마르지...일단 목이나 좀 축이고...자 따라오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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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퍼부었던 어제는 거의 내가 억지로 녀석을 불러 산책을 가자고 ‘꼬드긴’ 점이 없지 않으나,
오늘은 어쩐 일인지 달타냥이 먼저 앞장을 선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나는 달타냥을 따라나선다.
그런데 이 녀석 몇 걸음 앞서나가더니 목을 먼저 축여야겠다는 듯
쌓인 눈에 코와 입을 박고 잠시 눈을 먹는 것이다.
“자 이제 따라와!”
가볍게 목을 축인 달타냥이 눈 쌓인 밭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논둑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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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내 땅이여...어때 부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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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 논이다.
녀석은 눈 위로 솟은 볏가리마다 돌아다니며 냄새를 묻히고
논두렁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도 확인한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지 영역을 둘러보러 나온 것이 아닌가.
밤새 침입자가 없었는지 확인 순찰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사실 달타냥은 집에서 자란 마당고양이이지만,
먹이활동이나 생활환경은 길고양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녀석에게도 영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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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내 땅에서 눈이나 퍼먹어 볼까나? 으악...뭐가 이래 차갑다냐...우퉤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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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정하는 바로는 우리 동네 마을회관을 기점으로 우리집 쪽은 바람이가,
파란대문집 거리는 달타냥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바람이는 가끔 달타냥의 영역을 넘나들지만,
달타냥은 좀처럼 바람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우리 동네 왕초 고양이는 바람이인 셈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그 동네의 왕초 고양이 성격에 따라 그 마을의 길고양이 분위기도 달라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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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가심으로 그루터기나 좀 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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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왕초 고양이가 있는 마을에서는 고양이끼리의 교류나 집회도 적고,
반대로 온화한 성격의 왕초가 있는 마을에서는 서로의 넘나들기나 급식에 대한 기득권도 훨씬 유연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맞다면 우리 동네는 바람이의 독재가 좀 심한 편이다.
한번은 우리 집에 예쁘장하고 얌전하게 생긴 턱시도 한 마리가 대문 앞을 기웃거린 적이 있다.
아주 가끔 우리집을 찾는 녀석이다.
그런데 이날 바람이는 사자후를 날리며 하악질을 해 결국 녀석을 쫓아내고 말았다.
올 여름에는 올블랙에 라임 눈망울을 가진 고양이가 몇 번 우리집을 찾은 적이 있는데,
이 녀석 또한 바람이의 공격을 받아 두 번 다시 우리집을 찾지 않는다.
바람이 녀석 고 배타적인 성격만 고치면 좋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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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 이런 것까정 다 찍고 그래요...요즘 스트레스가 좀 쌓여서....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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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달타냥은 눈 쌓인 것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영역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또 목이 마른지
이번에는 녀석이 앞발로 눈을 한 움큼 집어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으, 차가워!’ 부르르 몸서리까지 치면서 녀석은 한번 더 눈으로 갈증을 달랜다.
처음에는 그저 발이 시려워 그루밍을 하듯 앞발에 호호 입김을 부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눈을 먹은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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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집이 최고여...어여 가야지..."

눈이 너무 차서 혀가 얼얼했을까.
녀석은 갑자기 벼 그루터기를 앙냥앙냥 씹어댄다.
논으로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나
달타냥은 발끝의 시려움이 온몸으로 전해졌는지, 천천히 발길을 돌린다.
논둑으로 올라서 공연히 참깨 그루터기에 턱을 문지르다가
집앞에 이르러서는 텃밭 둘레에 쳐놓은 경계줄도 씹어보고
헛간에 기대어놓은 고목을 스크래처 삼아 박박박 긁어도 본다.

눈은 그쳤지만, 날씨는 여전히 매섭다.
길 위의 고양이들에게 이 추운 겨울은 길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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