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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11 남해문학기행: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 (2)

남해문학기행: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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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문학기행: “한 여자 돌속에 묻혀 있었네”



남해 가천마을 앞바다. 미역따기가 한창이다.

 

저녁이 다돼 남해에 도착했다. 바닷가 민박집에 짐 풀어놓고 나는 ‘늦은’ 나를 본다. 저물기 시작한 바다 끝에서는 슬로모션으로 붉은 해가 떨어진다. 관능적으로 노을이 번진 구미포구의 하늘과 바다. 낮과 저녁의 경계에서 노을은 현실이 만들어낼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색채를 구현한다. 구불구불 아무렇게나 뻗어 올라간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막다른 바닷가에 그려내는 이 비정형의 실루엣들. 나는 번잡한 도심의 시간으로부터 뚝 떨어져 나와 헐거운 해변의 시간을 거닐었다.


가천 다랭이마을 밭고랑에 앉아 쑥을 뜯고 있는 할머니.


이튿날, 창 틈으로 스며드는 비릿한 해풍의 냄새에 나는 눈을 떴다. 봄이 한창인 바닷가 마을의 마늘이며 보리싹도 해풍에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린다. 나는 천천히 기어를 3단에 놓고 1024번 해안도로를 달린다. 이 도로는 내가 혼자 가장 아름다운 해안도로라고 여기며 벌써 네 번째 일주를 시도하는 중이다. 목도, 마도, 죽도 너머에는 아침의 다도해 풍경이 바닷물결과 함께 이랑진다. 선구포구를 지나 가천마을에 이르자 비탈을 따라 층층이 들어선 다랑논이 진풍경을 연출한다.


홍현리 포구의 아침.


시인 오세영은 <가천 다랭이논>이란 시에서 다랭이논 하나에 “한 민족의 땀과 피가 서려 있다.”고 했다. “수직을 수평으로 돌려놓은” 꿈과 의지가 거기에 깃들어 있다고 했다. 가천마을을 지나면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구인 홍현리가 나오고, 초승달 모양의 해안선에 해송과 모래밭이 그림처럼 펼쳐진 월포 해변이 나온다. 한참 달려온 1024번 해안도로는 이제 이동면에 이르러 19번 국도에게 해안도로의 임무를 넘겨준다. 왼쪽은 남해 금산, 오른쪽은 다도해를 끼고 도는 에움길이다. 금산은 몸뚱이 전체가 바위산이다. 옛날 이성계는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고 훗날 왕이 되었다. 신라 때 원효는 금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한 칸을 빌려 보리암을 지었다. 시인 이성복도 이 곳을 무대로 절창의 시를 한편 썼는데, 바로 <남해 금산>이다.



     이성복의 <남해 금산>의 배경이 된 남해 금산, 그리고 벼랑에 자리한 보리암 풍경.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_ 이성복, <남해 금산> 전문.



노도가 건너다 보이는 두모마을 다랑논 풍경.


돌과 바다와 푸른 하늘. 남해 금산은 수평적인 남해 들녘 맨 구석에 수직으로 솟아오른 그 생경함으로 늘상 풍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금산 정상에 오르면 절창의 시처럼 아름다운 다도해 풍경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금산을 에도는 19번 국도에서 보면, 양아리 건너편으로 섬이 하나 보이는데, 여기가 노도다. 노를 저어 건너야 한다고 노도다. 이 섬은 <구운몽>을 지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로 알려져 있다. 김만중은 숙종 때(1689) 서인이라는 이유로 남인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노도에 유배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3년 정도를 살면서 <구운몽>과 <서포만필>을 지었고, 결국 이 섬에서 숨을 거두었다. 글을 쓰다 죽기에는 더없이 맞춤한 섬이다.


미조항에서 만난 바지락 캐는 풍경.


노도가 건너다보이는 양아리 두모마을에서 소량, 대량을 지나면 상주 해변이고, 해안을 따라온 19번 국도는 미조항에 이르러 자취를 감춘다. 미조항에서는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물고기를 팔고 사려는 사람들이 활어 위판장에 모여 한바탕 손가락 싸움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항구를 벗어난 바닷가에는 바지락 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갈이 섞인 갯벌을 갈고리로 한번 뒤집을 때마다 여남은 개의 바지락이 올라온다. 봄볕 속의 심란한 노동. 시인 손택수는 <미조항>이란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미조항. 바다와 등대.

         

             19번 국도의 출발점, 표지판 속의 0km

              0을 갓낳은 물새알처럼 품고 있는 어항


              나는 길을 통해 늘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길은 나를 통해 매번 바다에 이르고자 했다


              조선소 앞에서 파도가 대팻밥을 만다

              청동구릿빛 사내들 장딴지처럼 울퉁불퉁

              튀어나온 섬들이 배를 민다


              _ 손택수, <미조항> 중에서




19번 국도는 미조에서 3번 해안도로로 바꿔탄다. 여기서부터는 남해의 동해안이다. 흔히 이 도로를 물미도로라 부른다. 물건리와 미조를 잇는 도로의 뜻과 함께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통하는 곳이다. 물건리의 방조어부림도 제법 알려져 있다. 방조어부림이란 태풍이나 해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고 고기를 불러들인다는 뜻을 지녔다. 일종의 방풍림인 셈인데, 그 길이가 무려 1.5킬로미터, 1만여 그루의 나무가 해안을 따라 숲을 이루고 있다. 물미도로의 아름다움은 죽방렴으로 유명한 창선교까지 이어진다.


남해 해안도로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창선교 아래는 물살이 센 지족해협이고, 이 곳에 원시적인 어업 형태인 ‘죽방렴’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죽방렴이란 말 그대로 대나무그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쥘부채를 편 모양처럼 생겼다. 이 죽방렴으로는 주로 멸치를 잡는데,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비늘이 고스란히 붙어있어 그물로 잡은 것보다 값을 훨씬 더 쳐준다. 죽방렴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친환경 고기잡이다. 드는 고기만 잡고, 나는 고기는 그대로 둔다. 그것은 마치 나에게 인생의 섭리를 이야기하는 것만 같고, 그렇게 살라고 하는 것만 같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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