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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1 1박2일 혹한기캠프에 나온 아침가리, 오지중의 오지 (8)

1박2일 혹한기캠프에 나온 아침가리, 오지중의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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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혹한기 캠프’에 나온 아침가리, 오지중의 오지

 

 

지난 12월 13일과 20일 1박2일 ‘혹한기 대비캠프’ 편에서 소개된 곳은 아침가리라는 곳이다. 아침가리(조경동). 오지여행가가 아닌 이상 그곳에 다녀온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오지 중의 오지다. 내가 처음 아침가리를 찾은 것은 10여년 전. 2년 전에 한번 더 그곳을 찾은 적이 있는데, 모두 여름이었고, 아침가리 입구인 방동리는 지난 겨울에도 한번 들른 적이 있다. <정감록>에는 ‘삼둔 사가리’라 하여 인제와 홍천 7곳을 일러 ‘피난지소’로 기록하였다. 삼둔은 바로 홍천군 내면에 있는 살둔, 월둔, 달둔이고,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에 있는 적가리(곁가리라고도 함), 아침가리(조경동), 연가리, 명지가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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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로 들어가는 2개의 들머리 가운데 진동리 쪽 들머리 계곡의 눈 내린 풍경.

이 가운데 사람이 사는 마을은 아침가리와 살둔 뿐이며, 적가리에는 현재 방태산 자연휴양림이 들어서 있다. 삼둔 사가리를 피난처로 꼽았던 까닭은 이 지역의 지리적인 특성 때문이다. 우선 살둔을 중심으로 삼둔 사가리를 둘러싼 산들은 방태산, 개인산, 구룡덕봉, 맹현봉, 계방산을 비롯해 1천미터 이상의 높은 산이 즐비하게 솟아 있다. 그 때문에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삼둔사가리와 그 주변 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로 손꼽혔다. 물론 지금도 그곳의 몇몇 마을은 ‘두메산골’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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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핀 겨울 나뭇잎.

살둔을 비롯한 ‘삼둔’이 홍천군 내면 쪽에 자리해 있는 반면,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 쪽에 자리해 있다. 또 이 사가리 가운데 연가리(진동리)를 뺀 적가리와 아침가리, 명지가리가 모두 방동리 땅에 속해 있다. 우리에겐 방동약수가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방동리. 사가리 가운데서도 최고의 두메로 알려진 아침가리(조경동)는 방동리에서도 산을 하나 넘어 10킬로미터 남짓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기린면 진동리 갈터에서 계곡을 타고 올라가더라도 8킬로미터 정도는 가야 하는 거리. 아침가리라는 이름은 마을에 밭이 적어서 아침 나절에 밭을 다 갈 수 있다고 붙은 이름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 곳에는 3가구가 살고 있었으나, 2년 전에는 유일하게 한 가구만이 사는 적막한 곳으로 변했다. 아침가리 입구에는 방동 초등학교 조경분교도 외롭게 남아 있다. 이번에 1박2일이 혹한기 캠프를 차린 곳이 바로 이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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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동리에서 10km쯤 험한 비포장 고개를 넘어가 만난 아침가리의 순한 길(위). 1박2일 '혹한기 캠프'를 차린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 물론 오래 전 폐교된 곳이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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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에서 진동리 쪽으로 가다가 만나는 연가리는 과거 담배(연초)를 많이 갈았다고 ‘연갈이’란 이름이 붙었으며, 현재 통나무집을 거느린 자연휴양림이 옛 마을을 차지하고 들어선 적가리에는 ‘보름가리’도 있었다고 한다. 방동리 밤골에 사는 박명철 씨에 따르면 적가리에는 커다란 분지가 하나 있어 과거 이 분지를 일러 ‘보름가리’라 불렀다는 것이다. 아침가리가 아침 나절에 밭을 다 갈 수 있었던 반면, 적가리의 보름가리는 보름을 갈아야 밭을 다 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는 얘기다. 박명철 씨는 이 커다란 분지(지금은 낙엽송을 심어 놓았다)를 별똥이 떨어진 자국이라고 했다. 사실 아침가리라는 곳도 구룡덕봉에서 내려다보면 분지를 이룬 모양인데, 살둔에서 만난 이상주 씨는 이도 운석이 떨어진 자국이라고 했다. 명지가리에도 옛날에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었다고 전해오는데, 이도 어쩌면 운석이 떨어진 자국일지 모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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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에서 만난 맑은 계곡물.

“여기가 옛날부텀 이름난 피습지요. 교통이 불편한 것 빼고는 이만한 데가 없을 거요. 옛날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장에를 갈래두 여기서 콩 두세 말 짊어지구 저 조침령(새도 하룻밤 묵어간다는 고개) 넘어서 저기 서림이라는 곳에 마방이 있었대요. 거기서 하루 자고, 원래 양양이 큰 곳이라서 거기 가 장 보구, 저녁에 다시 소금 한 말 짊어지구, 막걸리 한 잔 걸치구, 다시 마방에서 하루 자구, 이튿날 일루 넘어 왔대요. 장 한번 보믄 2박 3일씩이나 걸린 거죠 뭐.” 밤골에 사는 박명철 씨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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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가리에서 만난 사람이 사는 유일한 집.

시인 박정대는 아침가리를 ‘새들이 날아가 죽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강원도 인제에 가면 아침가리라는 곳이 있네/나는 이제 그 아침가리의 끝에서/어떤 기억의 여행을 시작하려 하네/거친 영혼의 산맥을 거슬러 오르는/내 오래된 逆行,/게릴라는 바람을 타고 이동하며/항상 겸허하게 땅에 입맞출 줄 아네 (중략) 작은 숨소리 하나만으로도/온 숲의 고독이 깨어나던 곳/바람이 고요히 물결을 떼밀어 열목어들,/물속의 처마에 걸어둔 풍경처럼/은은히 울리던 곳/전생의 애인이/하얗고 소담한 꽃으로 피어나/환하게 길을 비추어주던 곳/물소리 먹고 자라난 나무들이/물소리 나는 나뭇잎들을/종처럼 매달고 울던 곳//아, 아침가리의 길을/나는 천상에서의 기억처럼/간직하고 있네”((박정대, <아침가리, 새들이 날아가 죽는 곳>, 시집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민음사) 중에서))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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