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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9 3대째 가업 잇는 심마니 부자 (5)

3대째 가업 잇는 심마니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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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가업 잇는 심마니 부자와의 산삼 동행


홍천군 내면 율전리에 사는 김영재 노인은 심마니다. 그것도 70세를 훌쩍 넘긴 심마니다. 그는 열다섯 살 때부터 삼을 보러 다녔다. 심마니 생활을 해온 60여 년 동안 그는 200뿌리가 훨씬 넘는 삼을 캤으며, 가장 오래된 삼은 250년짜리이고, 가장 큰 삼은 여러 냥이 나가는 애들 팔뚝만한 육구 세쌍대였다. “산삼 육구는 여간해서 못 캐요. 내가 50년 넘게 하면서 세 번 캤어요. 오구는 올해도 꽤 여러 번 봤지만.” 그가 처음 삼을 본 것은 한국전쟁 이전인 열여섯살 때라고 하는데, 150년 된 삼을 비롯해 수십 대의 삼을 한꺼번에 만났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돼서 50년이 넘도록 산에만 다닌 것이다.

15년 전부터 김영재 씨는 산에 갈 때면 언제나 작은 아들인 김용선 씨(54)를 데리고 다닌다. “나만 아는 데가 있으니까 후대에 캘까 해서.”라고 짤막하게 그 까닭을 밝혔지만, 김용선 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심마니였으니, 3대째 그 맥을 잇겠다는 생각이다. 상상해 보라.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산에 오르는 모습을. 아들은 심마니란 직업을 떳떳한 가업으로 여기고 있다. “10년 넘었는데, 이제 거반 다 배웠어요. 이게 장뇌와 구분해야지, 찾는 것두 배워야지, 돋구는 거 배워야지, 한 10년은 꼬박 배워야 해요.” 김용선 씨에 따르면 아버지가 연세가 있기 때문에 언제 심마니로서의 활동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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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에서 60여년간 심마니 생활을 해온 김영재 씨가 산을 오르고 있다.

동이 틀 무렵 나는 이들 심마니 부자와 함께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이상 달려 인제군 남면에 위치한 산을 함께 올랐다. 이들 부자는 아침 일찍 산에 올랐다가 저녁이면 내려온다고 한다. 옛날에 비해 산마다 산림도로가 나 있고, 차도 있기 때문에 굳이 오랜 동안 산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그저 걸어서 산질로 한 100여 리씩 가니까, 내려올 수도 없구. 전에는 한 일주일두 있구, 한달 열흘두 있었쥬. 그냥 모둠에서 지내는 거지 뭐. 시방은 비니루 같은 게 좋잖아. 옛날에는 풀을 비다가 낭구를 이래 걸쳐놓고 치덮어서 막을 쳤어요. 그러니 비가 오면 안 샐 턱이 있어요. 바람 불면 불까지 다 꺼진다구. 비 오면 불에다가 젖은 옷 말려서 입구, 비온다구 내려올 수도 없으니까. 나무를 비다 많이 해 놓고 땠어요. 지금은 좋아진 거지.” 김영재 씨의 회상이다.

산 중턱에서 약식으로 산제를 올리고 나자 아들이 앞장을 서고, 아버지가 뒤를 따라 ‘부자 마니’는 골짜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숲은 우거져 밀림 속이나 다름없는데, 둘은 마치 집 앞마당을 거닐 듯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골 안쪽을 몇 시간째 뒤졌을까. 칠부 능선 쯤에서 앞서 나가던 김영재 씨가 아마도 지난 태풍이 지나갈 때 쓰러진 것으로 보이는 나무 둥치를 마대로 탁탁 두들겼다. 뭔가를 발견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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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심마니 가업을 잇고 있는 아버지 김영재 씨와 아들 김용선 씨.

이윽고 그가 나무 둥치를 들어내 멀리 밀쳐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심봤다’를 외쳤다. 순간, 바로 뒤에서 그를 따라가던 나는 그 소리에 놀라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다가가 보니, 삼대가 바닥에 깔린 채 누워 있었다.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삼대를 덮쳤던 모양이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영락없는 산삼이다. 이렇게 쉽게(?) 삼을 보게 될 줄이야! 그는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내비친 잎을 보고는 삼을 찾아냈던 것이다. 옛날에는 심마니가 ‘심봤다’를 외치면, 다른 마니들이 모두 삼 주변에 납작 엎드렸다고 한다. 삼을 발견한 마니가 허락하기 전에는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의 다른 삼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가 찾아낸 삼은 사구 산삼이었는데, 그 옆에는 ‘소생’들이 너댓 뿌리 흩어져 있었다. 산신령이 치성을 받아 주어 산삼을 내주었으니, 이제 돋구는 일만 남았다. 심마니들이 삼을 캔다고 하지 않고 돋군다고 하는 것도 산신령이 삼을 내준다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영재 씨가 마대를 이용해 먼데서부터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삼 가까이 파들어가자 손으로 일일이 조심스레 흙을 파냈다. 이렇게 손으로 삼을 돋구는 것은 ‘미’ 하나라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함인데, 미가 다치면 상품 가치도 그만큼 떨어진다. 어느덧 삼 뿌리의 모양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는 미에 얽히고 설킨 나무 뿌리만을 용케도 골라내 잘라내 버렸다. 삼을 돋구기 시작한 지 30여 분. 드디어 삼이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냈다. 미가 많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약통은 살이 도툼한 게 잘 생긴 모습이었다. 전체적인 모양은 팽이 모양을 띠고 있었는데, 산삼 치고 뇌두는 그리 길지 않았다. 년조를 물어보니, 100년 이상은 됐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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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니 김영재 씨가 발견한 사구 산삼. 년조는 약 100년생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통 삼은 봄에 잎이 올라올 때 고사리처럼 올라오는데, 여느 풀이 올라오기 전에 올라오므로, 심마니는 이 때부터 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다. 다알이 올라올 때는 그 빨간 다알 색깔 때문에 눈에 잘 띄고, 단풍이 들 때면 삼잎도 노란 꾀꼬리빛으로 물들어 역시 눈에 잘 띈다. 혹시 그해 나뭇가지나 동물에 의해 잎이나 줄기를 다쳤을 때는 이듬해 싹이 안나고, 몇 년 후에 다시 나올 때도 있는데, 이렇게 잎이 나지 않으면 심마니들은 ‘잔다’고 말한다. 김영재 씨는 잠을 자는 식물은 산삼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산삼이 신령스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한번은 이웃에서 육구 세쌍대를 캤다고 해서 구경을 갔는데, 시커먼게 꼭 칡뿌리를 뚝 짤라논 거 같드라구. 지끔으로 하면 5억쯤 되는 돈을 받은 건데, 그걸 캔 사람이 처음엔 이기 당구(당귀) 잎사귀로 보이드래. 그런데 어느 날은 당구로 보이던 게 심으로 보이드라는거야. 그렇게 두세쌍대쯤 되는 삼은 뇌두가 질지가 않아. 삼이 잠을 잔 거니까. 삼이라는 게 멀쩡한 삼은 자는 법이 웂어. 몸통을 벌레가 먹었다든지 동물이 밟았다든지 돌멩이가 굴러 잎이 다쳤다든지 하면 이기 자는 거야. 어떤 삼은 한 8년씩두 자요. 나두 한번은 노상 가두 없던 데서 8년 후에 삼이 퍼뜩 올러온 걸 봤어요.”

좋은 삼이라고 하면, 뇌두와 미가 길게 잘 뻗고, 약통이 도툼하며, 오래 묵은 것일수록 좋은 삼으로 친다. 홍종덕 씨는 약통과 미의 생김새가 봉황처럼 생긴 봉황삼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경사가 심한 곳일수록 삼 모양이 좋고 크다는 것이다. 한편 김영재 씨는 약통이 짧아도 팽이형으로 도툼하게 생긴 삼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는 삼을 볼 때 먼저 뇌두를 보고, 두 번째 미를 보며, 세 번째 약통을 보는데, 세 가지가 다 잘 생겨야 일등삼이란다. “큰 삼은 잎이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자빠져 있어요. 그러면 이기 큰 삼이야. 뇌두도 매디가 이래 툭툭 불어나야 큰 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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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산삼을 돋구고 있다.

아버지가 삼을 돋구는 동안 아들은 어느 새 바위옷과 연한 나무 줄기를 뜯어와 땅바닥에 깔아놓았다. 본디 삼을 캐면 여름에는 굴피나무 껍질을, 가을에는 피나무 껍질을 벗겨서 그 위에 바위옷을 깔고, 삼을 망가지지 않게 놓은 뒤, 마치 꽃집에서 포장을 하듯 둥그렇게 감싸 주루막에 넣고 내려온다. 집에서 삼을 보관할 때도 바위옷을 싹 빨아서 물기를 없앤 다음 바구니 같은 곳에 담아 비닐로 감싸 냉장고에 넣어두면 약간의 습기가 그대로 유지돼 5년 정도까지는 간다고 한다. 옛날 냉장고가 없었을 때는 부엌땅을 파고 그 안에 삼을 묻어두고 나뭇단을 덮어 보관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도 1년 이상 상하지 않고 보관이 가능했다고 한다. 한번 삼이 난 자리에는 그 씨가 떨어져 언제고 다시 삼이 나게 마련인데, 이로 인해 심메마니들은 산삼 캔 자리(구광자리)를 함부로 남에게 알려주지 않을뿐더러 흙을 덮어 삼 캔 흔적을 말끔히 없애버린다.

보통 삼을 돋구고 나면 심마니들은 그 주변을 또 한번 뒤지곤 한다. 주변 어딘가에 또 다른 소생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삼을 바위옷에 싸는 동안 아들은 삼 난 자리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거짓말처럼 산 아래쪽에서 ‘심이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또 하나의 삼을 찾아낸 것이다. 운이 좋았을까. 하루에 두 번이나 ‘심’을 보았으니 말이다. 두 번째 삼은 먼저 캔 것보다 약간 작았으나, 모양은 잘 빠진 편이었다. 년조를 물어보니 50여 년 정도는 됐을 거라고 한다. 이날 이들 부자는 소생들까지 합쳐 모두 다섯 뿌리의 삼을 보았다. 너무 어린 소생은 나중을 위해 그냥 놔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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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니 김영재 씨가 마대로 풀섶을 뒤지며 가고 있다.

삼을 얻은 덕택인지 산을 내려오는 아버지와 아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였다. 보기에는 쉽게 삼을 얻은 것같지만, 김영재 씨도 3년 씩이나 삼을 못 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심마니 생활을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는 것이다. “그 때는 산에 다닐 맥이 웂어. 하루 다닐거두 사나흘 다녀야 돼요. 그래도 인내심 갖구 계속 다니다 보면 캔다구. 삼이란 것은 품값을 뜯기는 적은 웂어. 못 캐두 계속 다녀야 캔다구.” 옛날 그가 한창 산에 다닐 때만 해도 하루에 100여 리를 갈 때도 있었다고 한다. “심이라는 게 캐는 것두 중요하지만, 인내심이 있어야 해요. 옛날에 나까지 느이서 산엘 들어갔는데, 한달씩 삼을 못 캐니까, 다들 가더란 말이여. 그래 내중에는 나 혼차 남드라구. 그래 곧 명일이래서 그 전까지 산에 있다가 명일 새러 오다 심메를 봤단 말이여. 이 삼이라 하는 거는 정성이 있어야 해. 마음씨가 곱구 착하고 그런 사람이 삼을 캐지. 이게 재물이고 산에서 수십년 수백년을 묵는데, 그기 그렇게 아무데나 태이겠어요, 안태이지. 삼 태는 것이 얼매나 심드느나 하면 따라댕기는 사람부러 내 그랬어, 나 따라대닐래면 3년 먹을 기 있냐 이기야, 재수 없으면 삼 캐는데 3년두 넘게 걸린다는 얘기야.”

보통 심마니는 삼만 보는 전업 심마니와 약초나 송이, 버섯을 함께 하는 부업 심마니로 나뉘는데, 요즘에는 부업 심마니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 삼만 보러 다녀서는 먹고 사는 문제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김영재 씨는 요즘 보기 드문 전업 심마니로, 50년 넘게 오로지 삼을 찾아 산을 헤집고 다닌 사람이다. 그는 주로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삼을 보러 다니는데, 그 동안 큰돈은 못벌었어도 삼 판 돈으로 10남매나 되는 자식들 공부 다 시키고, 시집 장가 다 보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0남매 모두에게 산삼을 두 세 뿌리씩은 먹였단다. 그래서 그런지 자식들이 다들 건강하고 잔병치레를 거의 안 한다는 것이다.

‘부자 심마니’의 뒤를 따라 산을 다 내려오자 삼을 캤던 산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전히 아들이 앞장을 서고 아버지는 뒤에 서서 걷는다. 아들이 짊어지고 가는 산삼 보따리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이제 앞서 가는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들 또한 먼 훗날 지금의 아버지와 같은 백전노장 심마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란히 걷는 두 ‘부자 심마니’의 그림자가 내 눈에는 덩치 큰 산처럼 느껴졌다. 그 산은 오래오래 내 가슴에 남아 있으리라.

* 글: 이용한(dall-lee)  사진: 심병우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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