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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12 500년 내력의 부안 돌모산 당산제 (8)

500년 내력의 부안 돌모산 당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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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내력의 부안 돌모산 당산제


아마도 고향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리운 마을 어귀에 수염이 성성한 할아버지처럼 서 있던 당산나무일 것이다. 고향의 푸근함과 넉넉함, 마을의 신성성과 정서를 더해 주던 당산나무. 오며가며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과 서낭신을 모신 아담한 당집이 함께 했던 서낭당. 옛날에는 마을마다 이 서낭당이 없는 곳이 없었고, 사람들은 나무에 깃든 서낭신이 마을을 지켜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서낭의 형태는 나무일 때도 있고, 돌탑(또는 선돌)일 때도 있고, 당집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커다란 나무를 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내요리 돌모산과 함께 부안에서 가장 유명한 당산마을로 꼽히는 우동리 당산.

 

이런 서낭당은 바닷가 마을로 가면 해신당이 되고, 산간 마을로 가면 산신당이 되었다. 그리하여 음력 정월 대보름이 되면 사람들은 떡과 과일을 비롯한 푸짐한 음식들을 서낭신에게 대접하며 마을 동제를 지내곤 했다. 이 당산제는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묵은 감정을 씻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자는 마을축제였다. 물론 지금은 이런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이 별로 없지만, 부안에는 아직도 옛 당산제의 원형을 지켜오는 당산마을이 여럿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우동리와 내요리 돌모산이다. 


변산반도로 널리 알려진 부안 땅에는 서문안당산, 동문안당산, 남문안당산, 쌍조석간당산, 돌모산당산, 우동리당산 등 옛 당산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그 형태도 솟대와 장승, 나무가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 부안에 이렇듯 당산이 많은 까닭은 부안이라는 땅 모양이 마치 배가 떠가는 형국이므로 그것을 붙잡아매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과거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탓에 개인과 마을의 평안을 당산신에 의존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놀이와 신앙이 어우러진 축제마당


부안읍 내요리에 있는 돌모산 당산은 당산 그 자체로만 본다면 부안에서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당산이다. 그만큼 돌모산 당산이 그 모양과 민속적인 의미가 크다는 이야기인데, 이 곳의 당산은 한마디로 석조신간 위에 돌로 깎은 오리를 얹어놓은 돌솟대 당산이다. 이런 돌솟대 당산은 돌모산 말고도 계화면 궁안리 대벌에 있는 쌍조석간 당산,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서문안당산, 동중리에 있는 동문안당산에서도 만날 수 있듯, 부안의 가장 전형적인 당산 모양이라 할 수 있다.

 


마을의 할아버지가 짚단에 앉아 마을 사람들이 용줄을 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짐대당산 또는 짐대할머니라고도 하는 이 당산은 신간과 오리가 모두 화강암 재질로 되어 있으며, 신간의 높이는 2.5미터, 밑둘레가 75센티미터이고,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오리가 신간 꼭대기에 앉아 서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부안읍도 그렇고 우동리도 그렇듯, 내요리라는 마을도 땅모양이 마치 배가 떠 있는 모양(행주형)이어서 배가 가벼우면 쉽게 파선할 수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 무거운 돌기둥을 배에 꽂아 배를 무겁게 하고자 이 곳에 돌솟대를 세웠다고 한다.


돌모산 당산제는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내는데, 그 첫 순서는 용줄꼬기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동네 당산제는 역사가 500년이 넘었어요. 17대째 내려오고 있는 당산제요. 여기 용줄은 다른 데보다 굵어서 그 전에는 장정이 못들 정도였어요. 이게 처음에는 세 가닥을 꼬아서 다시 합쳐요. 당산제 당일날 아침 9시가 넘으면 이 세 가닥 용줄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일부터 당산제가 시작되는 겁니다.” 당산제 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최영호 씨의 설명이다. 당산제에 쓰일 용줄은 미리 꼬아놓은 세 가닥의 줄을 나무에 걸어놓고 세 명이 각자 줄 하나씩을 잡고 서로 엇갈리며 빙빙 돌아 마치 새색시 머릿단을 땋아내리듯 줄을 꼬는데, 암수 따로 줄을 만드는 대신 암수 두 줄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길게 용줄을 만든다. 이 용줄의 두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두꺼워서 웬만한 통나무의 두께와 맞먹는다.

 


돌모산의 용줄은 워낙에 길고 무거워 외지에서 온 구경꾼들까지 모두 합세해 용줄돌기에 나선다.

 

이 용줄꼬기가 끝나면 점심 식사를 하고, 곧바로 줄다리기에 들어간다. 역시 남자편과 여자편이 나뉘어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편이 이겨야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믿음은 다른 마을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우동리나 다른 마을의 당산제에 비해 이 곳의 당산제에서 선보이는 줄다리기는 그 장난기가 훨씬 더 심하다. 물론 종국에는 여자편이 이기기는 하지만, 남자편에서는 여자편이 이기기 전까지 온갖 골탕을 먹이고, 시간을 끌고, 장난을 건다. 무릇 당산제란 마을 축제에 다름아니므로, 이왕에 놀이를 곁들일 것이라면 모두가 한바탕 즐겁게 웃어보자고 온갖 장난을 거는 것이다. 이렇게 장난 섞인 줄다리기가 끝나면 이제 용줄돌기가 기다리고 있다.


용줄돌기와 당산 옷입히기


우동리 당산제의 절정이 줄다리기라면 돌모산은 용줄돌기가 절정이나 다름없다. 줄다리기에서 보였던 장난기 또한 용줄돌기에 이르면 절정에 이른다. 마을 사람들이 다 달라붙어도 모자라 바깥에서 구경 온 구경꾼들이 모두 달라붙어야 간신히 움직이는 이 용줄을 가지고 마을의 청장년들은 일부러 마을을 돌다말고 갑자기 줄을 놓아버리거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거나, 아예 용줄을 깔고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다. 심지어는 논두렁을 지나다가 줄을 끌고 논바닥으로 떨어져 뒤에 오는 사람들을 골탕먹이기도 한다.

 


용줄돌기가 끝난 용줄은 당산에 친친 '당산 옷입히기'를 한다. 옷입히기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격식을 차려 제를 지낸다.

 

이렇게 용줄을 맨 장정들이 심술을 부리면, 또 달래는 사람도 있어 커다란 과자 봉지와 사탕 봉지를 들고 심술 부리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내 과자와 사탕을 건네주며 어르고 달랜다. 장난이 심할 때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당산에 이르기까지 1시간이 훨씬 넘게 걸리기도 한다. 워낙에 용줄이 길고 굵다 보니 용줄돌기가 보기보다 힘이 들고 지치기 쉬운데, 이들의 장난기는 바로 쉬엄쉬엄 마을을 돌며 재미있게 당산까지 가보자는 뜻에 다름아니다. 장난스럽게 용줄돌기를 하다보니 당산에 이르면 날이 저물기 일쑤다.


그러나 돌모산에서는 저녁이 되어서야 제사를 지내는 관례가 있어, 사실 용줄돌기를 하면서 마을 장정들이 보여준 장난은 제사 시간을 맞추기 위한 다목적 장난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용줄이 당산에 이르면 당산 옷입히기(짐대할머니 옷입히기)를 하고, 제를 지내는데, 이 곳의 제사는 그 격식과 시간이 다른 마을에 비해 엄격한 편이어서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옛날 밤 9시쯤 제사를 지낼 때에 비하면 지금은 다소 간편해진 셈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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