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병관, 삼도수군통제영이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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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 삼도수군통제영이 여기 있었다




통영에 가거든
세병관 마룻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라.
빛바랜 단청의 아름다움과 시원한 마룻바닥이
잠시나마 세속의 시름을 잊게 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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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 천장의 옛빛 그득한 단청의 아름다움.

통영(統營)이란 지명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통제영을 줄여쓴 것이 통영으로 선조37년(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시)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통영의 명칭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통제영이 있었던 만큼 통영에는 임진왜란 당시 통제사로 있던 충무공과 이경준의 숨결이 스민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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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은 옛 통제영이 있던 곳으로, 세병관 건물은 여수의 진남관과 더불어 현존하는 조선 최대 목조건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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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에 전하는 제승당은 전란시 이순신 장군이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던 곳이며, 충렬사는 충무공을 기리기 위한 사당, 착량묘는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국보 제305호인 세병관은 통제영의 상징적 건물로 여수 진남관과 함께 현존하는 조선 최대의 목조건물로 유명하다. 1604년 한산도에서 창건돼 정유재란 이후 지금의 통영시 두룡포로 옮겨진 통제영은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부임한 뒤, 무려 290년간 왜군에 대비하는 조선수군의 총본부 노릇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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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병관 나무기둥의 자연스러운 나뭇결.

그러나 단지 이곳이 해군사령부의 기능만을 해온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과거 6방에 이어 12공방(입자방, 총방, 상자방, 화원방, 소목장, 야장방, 주석방, 은방, 칠방, 동개방, 화자방, 안자방)을 두어 다양한 공예품을 생산하고 조달하는 일을 전담케 했는데, 갓일과 나전, 두석과 소반, 옻칠 등은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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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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