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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26 여기가 한국의 고양이 공원 (20)

여기가 한국의 고양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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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미로공원, 한국의 고양이 공원을 꿈꾼다

 

지난 가을 터키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공원이나 광장에서 여행자가 열댓 마리 고양이에게 둘러싸인 풍경을 만나는 것이 그저 흔한 일이었다. 마냥 부러웠던 풍경. 우리나라에서는 도무지 만나기 어려운 풍경. 그런데 딱 한번 우리나라에서 터키 같은 풍경을 만난 적이 있다. 그것도 길고양이에 대한 인심이 사납다는 제주도에서. 김녕 미로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명랑하고 온순한 고양이들이 가득한 곳. 괴롭히거나 귀찮게 굴지만 않으면 언제든지 고양이가 사람의 친구가 되어주는 곳. 주저 없이 나는 김녕 미로공원을 ‘고양이 해방구’로 부르고 싶다. 김녕 미로공원에서는 고양이를 무서워하던 아이들도 어느새 고양이를 만지며 고양이와 친구가 된다. 고양이를 싫어하던 어른들도 ‘고양이가 저렇게 예쁘고 애교 많은 녀석들’이구나, 하고 몰랐던 고양이에 대한 매력을 발견하고 간다.

 

 

한마디로 김녕 미로공원은 고양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교육의 장이자, 사람과 고양이의 거리를 좁히는 체험의 장이나 다름없다. 고양이가 사람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길거리 이웃이자, 사람이 사랑을 준만큼 고양이도 마음을 연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소중한 ‘고양이 공원’인 것이다. 김녕 미로공원 입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하나같이 어여쁘고 깔끔한 용모의 고양이 열 마리가 마치 손님 접대하듯 입구에 삼삼오오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는데, 이 녀석들 먹을 거라도 주는 줄 알고 일제히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터키와 모로코, 라오스에서나 경험했던 일이 여기서 벌어질 줄이야. 하는 수 없이 나는 가방에 있던 샘플 사료 두 봉지를 꺼내 나무 발판 위에 뿌려주었다. 열 마리의 고양이가 우르르 나무 발판으로 몰려들어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내 바로 앞에서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밥을 먹는 열 마리의 고양이.

 

 

그런데 가만, 등에 난 무늬가 특이해 눈길을 사로잡는 녀석이 있었다. 등에 하트 무늬가 있는 고양이. 이름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완벽한 하트무늬는 아니지만, 누가 봐도 ‘등에 하트 무늬가 있어’라고 말하는 고양이. 이 녀석은 성격도 좋고 특히 사람들의 손길을 즐기는지라 이곳에서 인기를 독차지 하는 편이었다. 그런가 하면 양쪽 눈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도 한 마리 있다. 오른쪽은 파란색, 왼쪽은 호박색. ‘런’(runt)이란 이름이 붙은 이 녀석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묘해지는 신기한 느낌. 밥을 다 먹은 녀석들은 삼나무숲을 배경으로 바위에 올라 그루밍을 하거나 곰솔나무를 스크래처 삼아 발톱을 다듬었다. 평화스럽고 행복한 풍경이었다.

 

하트무늬 고양이

 

그러나 이곳에도 아픔을 간직한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 점점 눈이 멀더니 어느 날 완전히 실명이 된 고양이. 녀석은 특별히 더스틴 교수가 집무하는 사무실에서만 지낸다고. 녀석이 아프다 보니 더스틴 교수도 이 녀석을 더 아껴서 사료도 직접 주고 보살핀다고 한다. 녀석의 이름은 ‘대장’이라고 하는데, 어려서는 제일 용맹하고 씩씩해서 무리의 대장이 될 거라고 다들 말해 왔기 때문이다. 내가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녀석은 책상 위에서 몇 번이나 굴러떨어지곤 했다. 김녕 미로공원에 지금과 같은 고양이 가족을 있게 한 어미고양이 ‘나비’(삼색이)도 요즘에는 주로 실내에서 생활한다.

 

오드아이 고양이.

 

그런가하면 무리와 떨어져 미로공원 한복판을 영역으로 살아가는 고양이(이쁜이)도 있다. 만일 미로공원에서 길을 헤매다 갑자기 고양이를 만난다고 해서 놀랄 필요 없다. 그럴 때는 오히려 다정하게 고양이에게 길을 물어봐도 좋다. 이 녀석은 길을 잃는 법이 없는 데다 기분이 좋을 때면 길 잃은 사람들에게 길안내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실제로 좀 이른 시간에 가면 더러 이 녀석이 길안내를 해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오후에 찾아간 데다 별로 내키지 않았는지 보기 좋게 길안내를 거절당했지만.

 

 

현재 김녕 미로공원에서는 15마리의 고양이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내가 찾아갔을 때는 한 마리 고양이가 입원하는 바람에 14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놀랐던 것은 고양이의 수가 아니라 그 많은 고양이가 어떻게 한결같이 사람 친화적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김녕 미로공원에서 그만큼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이곳에는 고양이들만의 공간이자 급식소인 ‘야옹이 놀이터’를 공원 입구에 만들어 놓았다. 거기에는 갖은 캣타워와 스크래처까지 준비돼 있다. 주차장 화단에는 솔잎 이불을 푹신하게 깔아놓은 고양이집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멀찌감치 떨어진 숲속이라는 지리적 환경도 고양이들에게는 안전한 보금자리 노릇을 하고 있다.

 

 

김녕 미로공원이 이렇게 ‘고양이 공원’이 되다시피 한 배경에는 설립자 더스틴 교수의 역할이 컸다. 그는 오래 전부터 집에서도 고양이를 키우고 좋아했는데, 어느 날 공원 주변에 야생고양이가 있는 것을 보고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날 보니까, 먹이를 얻어먹던 고양이 중 한 마리가 새끼를 낳고는 사무실로 가져온 거예요. 세 마리였는데, 한 마리는 죽고, 한 마리는 도망가고, 한 마리가 살아남아 그 고양이가 여기 사무실에 다시 새끼를 낳았죠. 그렇게 3세대를 거쳐 지금처럼 고양이가 많아진 거예요. 여기가 삼나무숲이고 미로공원에 물도 있고 하니 고양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죠.” 현재 김녕 미로공원 15마리 고양이의 실질적인 집사이자 주변 야생고양이 5~6마리에게도 캣대디 노릇을 하고 있는 이사 김영남 박사의 전언이다.

 

 

“교수님이 처음에는 고양이가 많아지는 것을 염려했어요. 바로 앞이 주차장이다 보니 사고도 날 수 있고. 그런데 제가 터키 여행을 가서 고양이와 사람이 멋지게 어울린 풍경을 보고는 우리 공원도 터키 같은 풍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안을 드렸죠. 김녕 미로공원을 ‘고양이가 행복하게 사는 공원’으로 만들어 보자고. 일종의 마케팅 차원으로라도 고양이를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도록 애써보자는 생각이 든 거죠. 물론 대부분 아이들은 중성화수술을 시켜서 묘구수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김녕 미로공원의 마스코트를 고양이로 바꾼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요즘 서울이나 대도시에는 고양이 카페도 많은데, 그런 카페보다는 오히려 이런 고양이 공원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국에서 고양이 공원을 꿈꾼다는 것.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왔고, 시기상조라고 여겨왔던 고양이 공원의 꿈이 김녕 미로공원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마케팅의 일환이라 할지라도 나는 응원할 것이다. 이곳이 고양이가 행복한 공원으로 널리 알려져서 더 많은 아이들이 고양이와 친구가 되고, 더 많은 어른들이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기를. 이곳이 한국의 작은 터키, 한국을 대표하는 고양이 명소가 되어 주기를. 그것은 이 땅의 많은 길고양이를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므로. 그것이 더 많은 곳으로 파문이 되어 번져갈 수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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