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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30 어쩌면사무소의 면장고양이 (16)

어쩌면사무소의 면장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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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무소의 면장고양이

 

 

어쩌면 사무소가 있다. 그리고 이 면사무소의 면장님은 고양이다. 어쩌면 사무소의 면장 고양이. 고양이 면장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약수역 4번 출구에서 한참을 걸어가 왼쪽으로 보이는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드디어 어쩌면 사무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쯤에서 혹자는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서울에 무슨 면사무소? 분명 면사무소가 맞긴 맞다. 다만 이곳은 흔히 면 소재지를 대표하는 그런 면사무소가 아니라 커피를 파는 카페이다. 카페 이름이 어쩌면 사무소인 거다.

 

 

동네 복덕방 같은 작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 올라앉은 면장 고양이가 어서 오십시오, 하기는커녕 딴청을 부리고 있다. 짐을 내려놓고 카메라를 들이대도 새침하게 돌아앉는다. 몇 번이나 눈을 맞추고 등을 쓰다듬고 나서야 녀석은 어디 한번 찍어 보시던지, 하는 포즈를 취했다. 찰칵 찰칵, 작은 카페에 셔터 누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손님이 들어찬 곳은 두 테이블. 손님들의 시선은 모두 면장 고양이를 향하고 있었다.

 

 

사실 카페 ‘어쩌면 사무소’와 면장 고양이와의 관계는 어쩌면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무소를 개업(2012년 9월)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카페 앞 길 위에 젖둥이 새끼 노랑이 한 마리가 배가 고파 울고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막 지나다니는데도 피할 기력도 없이 길 한가운데서 계속 울고 있더라고요. 어미를 잃었는지, 애가 하도 굶어서 앙상하게 뼈밖에 안남은 거예요.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녀석을 구조해 들어왔죠.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여기저기 물어 고양이용 분유를 사다가 먹이고, 근데 이 녀석이 분유를 먹으면 토하고, 잘 못 먹고 그러더니 사료를 주면서부터 어찌나 잘 먹던지. 그 때부터 부쩍부쩍 살이 오르더니 이렇게 건강해진 거죠. 그래서 이 녀석 이름도 ‘어쩜’이에요. 그냥 여기서는 ‘쩜이’라고 불러요.”

 

 

어쩌면 사무소의 주인장 코기토 님이 들려준 면장 고양이의 사연이다. 이름은 어쩜. 길고양이 출신의 5개월 된 노랑이. 어쩌면 사무소의 오픈과 함께 시작된 뜻밖의 동거. “쩜이가 면장님이고, 우린 면서기인 셈이죠.” 우리? 이곳의 면서기는 혼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어쩌면 사무소는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해온 코기토 님과 신비 님 둘의 공동 기획이자 연출이었다. 둘의 꿍꿍이는 동네 사랑방 같은 플랫폼에서 같은 생각,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거였다. 좀 더 따뜻한 세상. 있는 것은 나누고, 없는 것은 보태는. 둘은 ‘어쩌면 사무소’가 바로 그 꿈의 플랫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면장 고양이 어쩜이는 테이블과 바닥, 창턱을 오가며 장난을 치고 있다. 누군가 뜨개질을 하다 버리고 간 실뭉치를 사냥하고, 신비 님의 딸깍거리는 오른손과 마우스를 공격하고, 심지어 노트북 자판 위로 몸을 날려 테러를 가하기도 한다. 신비 님은 그런 장난이 싫지 않은 듯 부러 즐기고 있다. 잠시 후 주방에서 코기토 님이 창가 자리로 나오자 어쩜이는 만사 제쳐두고 코기토 님 무릎을 점령해버린다. 거리에서 죽을 뻔한 목숨을 살려준 것이 두고두고 고마운지 녀석은 툭하면 코기토 님 품을 파고든단다.

 

 

그렇게 장난을 치던 어쩜이는 이제 코기토 님 무릎 위에 누워 나른나른 낮잠을 잔다. 옆 테이블에서는 5개월 된 아기가 잠투정을 하고, 5개월 된 무릎냥이는 이따금 고개를 들어 우는 아기를 흘끔거린다. 누구도 이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지만, 손님이 오면 어쩔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어쩜이의 달콤한 꿀잠은 새로운 손님의 등장으로 깨지고 말았다. 녀석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바닥으로 내려와 식사하고 물마시고, 창가 테이블에 올라가 창밖을 구경한다. 녀석은 저 길 위의 날들을 생각할까. 배가 고파 거리를 헤매던 시절을 기억할까. 아직도 수많은 고양이에게 저 길은 혹독한 묘생의 현장이고 사투의 현실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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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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