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그 독하고 향기로운 뒷이야기

|
 

스카치 위스키 탄생의 비밀: 생명의 물에서 증류주의 왕으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코틀랜드 앤트릭 강에서 고기를 잡던 낚시꾼들은 어느 날 상류로부터 물고기들이 비실거리며 떠내려오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낚시꾼들은 저마다 낚싯대를 집어던지고 손으로 고기를 잡기 시작했는데, 그들에게 잡힌 물고기에게선 한결같이 술냄새가 났다. 물고기들이 온통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상류에 있던 스카치 위스키 공장에서 실수로 위스키 원액을 강으로 흘려보내는 통에 물고기들이 완전히 술에 취해버렸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안 낚시꾼들은 자신들이 잡은 물고기를 깨끗한 물에 씻어준 다음 다시 강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예부터 애주가에 대한 대접이 각별한 나라였던 만큼 상대가 물고기였을지언정 극진하게 술꾼 대접을 해 주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위스키의 고향인 스코틀랜드가 아니었다면 가당치도 않은 풍경이라 하겠다. 

스카치 위스키가 정확히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스코틀랜드 문헌에 따르면, 위스키 제조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1494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12세기 경에 위스키 제조법이 스코틀랜드에서 영국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아, 최소한 12세기에 스카치 위스키가 탄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초창기 위스키는 거의 약용이나 다름없었는데, 맥아를 원료로 한 알코올에 샤프란이나 설탕으로 맛을 들인 것이 고작이었다. 대부분 가정에서 소규모로 제조되던 위스키가 처음으로 상품화되어 판매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초이며, 오늘날과 같이 증류기를 이용한 스카치 위스키가 만들어진 것은 17세기 들어서면서부터이다. 당시 스코틀랜드 산악지대에서 ‘이탄’을 사용함으로써 단식 증류기로 위스키를 뽑아냈던 것이다. 이후 1826년에는 드디어 연속 증류기를 이용한 그레인 위스키가 탄생하였다.   


스코틀랜드에서 스카치 위스키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대륙과는 달리 술을 만들만한 포도가 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대신 스코틀랜드에는 보리가 풍부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평원은 물론이고 계곡까지 빼곡히 뒤덮은 보리를 주식 이외의 목적으로 이용할 방법을 찾다가 이 곡물을 증류시켜 술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알코올 증류에 대한 기술은 사실 외국에서 유입된 비법이라 할 수 있다. 당초 증류 기술에 대한 역사는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숯을 만드는 과정에서 증류 기술을 사용했다고 하며,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선원들이 바닷물을 끓여 발생하는 증기를 스펀지 같은 것으로 흡수하여 먹을 물을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증류 기술은 아라비아의 연금술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아랍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돼 있었는데, 연금술사들이 알코올을 증류하여 향료나 화장품 제조에 사용했다고 한다. 알코올의 어원도 바로 아랍어의 콜(kohl)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의 증류 기술이 유럽에 전해진 것은 12세기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카톨릭 수사들이 알코올 증류 비법을 들고 들어오면서 증류기술은 순식간에 유럽 각지로 전파되었다. 당연히 스코틀랜드에도 이 비법이 들어왔고, 보리를 증류하여 알코올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는데, 당시 이 알코올을 우스케바(Usquebaugh) 즉 생명의 물이라 불렀다. 훗날 이 말이 위스키가 된 것이다. 결국 위스키의 탄생은 스코틀랜드의 독특한 토양과 물, 그리고 증류 기술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827년 조지 밸런타인이 개발한 밸런타인.


증류 기술이 널리 퍼지면서 위스키의 생산도 점차 늘어갔으나, 정작 오늘날과 같은 독특한 향미를 가진 위스키가 탄생된 데에는 정작 우연한 결과가 작용한 덕택이다. 과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합쳐져 대영제국이 탄생하자, 국내의 재정 수요를 늘리기 위해 술에다 주세를 물리기 시작했다. 특히 알코올 도수가 높은 위스키는 중과세 대상이었다. 이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비싼 주세를 피하기 위해 증류기를 산 속으로 옮겨 이른바 밀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밀주를 만드는 사람을 가리켜 속칭 ‘달빛치기’라 불렀는데, 이는 이들이 증류과정에서 발생하는 연기로 인해 밤새 망을 보면서 증류를 해야 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이렇게 몰래 만든 위스키는 위장을 위해 오크 통에 담아서 동굴 같은 곳에 숨겨 놓았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이 위스키를 따라보니 부드러운 맛에 향이 풍부한 말간 호박색의 술로 변해 있었다. 위스키에 숙성법이 보편화된 것도 바로 이 때부터이다.


하지만 이렇게 숙성된 위스키는 맛과 향이 뛰어나긴 했으나, 생산량이 부족해 비쌀 수밖에 없었다. 맥아만을 원료로 사용하는데다 단식 증류기로 만들다보니 생산성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 제조법에 의해 만들어진 위스키를 몰트 위스키라 불렀다. 산업혁명 이후 잉글랜드에서 위스키의 수요가 급증하자 위스키 제조업자들은 새로운 제조법을 개발해 냈는데, 연속식 증류기 개발이 바로 그것이다. 이 증류기로는 소량의 맥아를 이용해 다른 곡물을 발효시켜 위스키의 대량 생산을 카능케 만들었다. 이것을 그레인 위스키라 하는데, 이 위스키는 대량 생산으로 가격은 저렴했지만, 품질은 몰트 위스키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이 두 가지의 위스키를 섞어 파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블렌디드 위스키다. 현재 블렌디드 위스키는 스카치 위스키 생산의 약 97퍼센트 정도를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스카치 위스키 브랜드가 있다면, 역시 커티 샥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커티 샥은 원래 1896년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범선의 이름인데, 1923년 영국 런던에서 스카치 위스키의 브랜드로 도입한 것이다. 아메리카 신대륙 이주의 마지막 범선이기도 한 커티 샥에는 당시 고향을 떠날 때 실은 스카치 위스키가 유일하게 그들의 향수를 달래고, 외로운 항해를 견딜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한다. 커티 샥의 성공은 바로 그 범선에서 맛보았던 스카치 위스키의 잊을 수 없는 맛을 은연중 브랜드를 통해 환기시킴으로써 가능했다고 보아진다. 커티 샥 이외에도 프리미엄급에서는 1801년에 탄생한 시바스리갈이, 스탠더드급에서는 1827년 조지 밸런타인이 개발한 밸런타인이, 몰트 스카치 위스키 가운데서는 ‘사슴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을 지닌 글렌피딕이, 디럭스급으로는 200개 국 이상으로 수출되는 조니워커 등을 스카치 위스키의 명품으로 꼽을 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통 위스키를 마실 때는 종류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프리미엄급 위스키는 거의 다른 것과 섞지 않고 원액 그대로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물론 얼음이 담긴 잔에 원액을 따르고 소다나 물을 약간 넣어 마시는 정도라면 고유의 향미를 음미하기엔 지장이 없다. 스탠다드급과 아이리쉬 위스키는 콜라나 사이다, 우유 등을 섞어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하며, 옥수수로 증류한 버번 위스키는 약간 단맛이 나므로 보통 콜라와 함께 마시거나 레몬을 넣어 마시는 것이 좋고, 캐나디언 위스키도 버번과 마찬가지로 사이다를 섞어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원래 위스키는 알코올 농도가 40~45도가 되기 때문에 식후에 마시는 것이 상례였으나, 최근에는 식전주로도 많이 애용하고 있다. 이 때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은 알코올기로 인해 미각을 잃을 수도 있으므로 금물이며, 식전에는 반드시 물이나 소다수를 타서 마시거나 언더락스로 마시는 것이 좋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이다.


오늘날 스코틀랜드에서 탄생한 ‘생명의 물’, 위스키는 이제 수많은 애주가의 입맛을 사로잡는 ‘세계인의 물’이 되었다. 스코틀랜드는 지구상의 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에는 길고 지루한 밤이 계속되었는데, 이 때 스코틀랜드인들의 지루하고 고독한 밤을 달래준 것이 위스키였다. 마치 어둠과도 같은 대영제국의 그늘을 견디게 해준 술이 위스키였다. 이제 그것이 어느덧 전세계인의 고독함을 달래고 어둠을 견디게 하는 술로 발전한 것이다.


현재 스코틀랜드에는 약 100여 개의 몰트 위스키 증류공장과 10여 개 정도의 대형 그레인 위스키 공장이 있으며, 각 스카치 위스키 회사들은 이들 공장에서 원액을 구입하여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투명한 호박색 술의 특색은 맥아 건조시 이탄으로부터 옮겨진 풍부한 향을 배고 있으며, 참나무통에서의 오랜 숙성으로 인하여 뒤끝이 깨끗하다는 점이다. 마치 오랜 어둠 뒤에 오는 햇빛의 상쾌함과 눈부심처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카치 위스키를 주저없이 증류주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