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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9 고양이가 사라지는 마을 (45)

고양이가 사라지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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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사라지는 마을

 

 

고양이가 사라지는 마을이 있다.

한때 이곳은 우리 동네보다 훨씬 많은 고양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행방불명이 되었다.

내가 꾸준하게 드나들며 사료 배달을 했던 이웃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나를 보자 사료를 내놓으라며 달려오는 순둥이네 아기고양이.

 

까뮈와 봉달이, 여울이와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는

이미 오래전에 한 식당 아줌마가 놓은 쥐약을 먹고

고양이별로 떠났다.

(까뮈가 낳았던 새끼 중 당돌이와 순둥이를 제외한 다른 두 마리는 겨울을 나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이후에도 이 마을에는 이유를 알 수 없이 고양이들이

행방불명되곤 했다.

여울이의 오빠인 개울이가 갑자기 떠났고,

무럭이네 3남매와 노을이도 어느 날 갑자기 행방불명이 되었다.

3남매 중 무심이만 지난여름 세 마리의 아기고양이를 이끌고

마을에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가을이 한창일 무렵부터 다시 찾아온 무심이네 가족들조차

종적을 감추었다.

 

순둥이와 아기고양이.

 

순둥이와 단짝이었던 당돌이도 끝내 모습을 감추었다.

장마 이전까지 개울의 배수구를 은신처로 삼았던

대모 또한 행방불명이 돼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장마철에 잠시 개울에서 폐차장으로 영역을 옮겼던

꼬미와 재미, 소미도 이제는 만날 수가 없다.

지난 4년간 사료배달부 생활을 해왔지만,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다.

지난 2년 반 동안 한 마을(30여 가구 남짓한)에서 무려 20여 마리가 쥐약의 피해로 죽었거나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 녀석의 앞날도 걱정이다.

 

행방불명된 녀석들 중에 일부는 단순히 영역을 옮긴 것으로 추정이 되지만,

나머지는 아무래도 수상한 밥이 의심된다.

하지만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을 뿐이다.

이제 와서 물증이 있다 한들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저 답답할 뿐이다.

최근 들어 블로그 독자들이 꼬미나 대모 소식을 묻거나

여름에 다시 나타난 무심이네 가족 안부를 물을 때마다

나는 이 소식을 전해야 하나, 하고 오랫동안 망설였다.

 

지난 여름 승냥이와 녀석이 낳은 아기노랑이.

 

사실 꼬미와 재미, 소미를 비롯해 재등장한 무심이네 가족들이

사라진 건 지난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였다.

이후 지금까지도 녀석들은 소식이 없다.

부디 이 녀석들이 변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영역을 떠난 것이기를...

그래서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이웃마을에서 내가 만날 수 있는 고양이는

가만이와 카오스, 순둥이(순둥이는 지난 가을부터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닌다),

승냥이(승냥이도 지난 여름부터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다닌다)가 유일하다.

문제는 이 녀석들조차 지난 가을부터 부쩍 경계심이 심해졌다는 거다.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승냥이네 아기노랑이는 자라서 이렇게 어느덧 성묘가 되었다.

 

덩달이는 지난 여름에 잠시 철장에서 풀려났으나,

곧바로 다시 철장에 갇혀 지금까지도 철장에 갇혀 지내고 있다.

다행히 이웃마을과 달리 우리 동네의 고양이들은

지난번 쥐약사건으로 몽당이네 가족 세 마리가 고양이별로 떠난 이후

별다른 피해는 없다.

우리집에는 몽롱이와 조로, 너굴이가 여전히 밥을 먹으러 오고

삼월이는 우울증에서 벗어나 명랑함을 되찾았다.

전원고양이들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역전고양이 중 거기와 요기는 영역을 떠난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고양이들은 무사히 잘 지낸다.

 

고양이에게 살아갈 권리도 없는 마을이라니...

 

우리나라에서 고양이의 살아갈 권리, 사랑할 권리, 행복할 권리는 요원한 것일까.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어울려 사는 건 불가능한 것일까.

지난 4년 동안 한결같이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꿈꿔 왔지만,

지금 이곳의 현실은 어제보다 못한 오늘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안녕 고양이> 시리즈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하지만,

3권에서 시리즈를 완결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또한

바로 사료배달을 받아줄 고양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이웃마을은 길고양이 개체수가 느는 것이 아니라

급감하다 못해 씨가 마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길고양이 보고서>를 그만둘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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