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보내온 SOS: "우리 애들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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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SOS: “우리 애들 좀 살려주세요”

 

 

지금부터 나는 며칠 전에 일어난 믿지 못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며칠 전 여느 때처럼 나는 사료를 한 포대 들고 전원주택에 들렀는데, 대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냐앙냐앙 울고 있었다. 산둥이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녀석!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대문 앞에서 뒹굴며 한참이나 발라당을 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고 대문을 열어주자 녀석은 처녀개 반야 앞에 납작 엎드려 또 한참이나 몸을 맡겼다. 반야는 마치 집 나간 자식이 돌아온 것처럼 오랜만에 찾아온 산둥이의 몸을 구석구석 핥아주었다.

 

 우사 앞 배수구 근처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놀고 있는 산둥이네 아기고양이들.

 

때마침 밖에서 소란한 기운을 듣고는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할머니는 산둥이(할머니는 순둥이라 부른다)를 보자마자 눈물을 글썽이며, “아이구 우리 순둥이 왔네. 잘 왔다. 잘 왔어!” 하면서 사료 그릇을 내밀었다. 할머니에 따르면 그동안 여러 차례 산둥이가 머무는 우사(요즘에 소는 없고, 창고처럼 비어 있는)에 들러 사료를 내려놓고 오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사 주인이 사료를 치워버리고, 고양이가 드나드는 구멍조차 돌멩이로 다 막아버렸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최근에는 몇 번이나 산둥이가 대문 밖에 찾아와 냐앙냐앙 할머니를 부르더라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사료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 산둥이를 먹이곤 했다고.

 

 오랜만에 전원주택을 찾은 산둥이가 반야에게 몸을 내맡기고 있다(위). 최근 백내장 수술을 한 할머니가 아픈 몸으로 마당에 나와서 산둥이에게 멸치를 다듬어주고 있다(아래).

 나를 데리고 과수원 너머 우사 쪽으로 가고 있는 산둥이(아래).

 

그날도 산둥이는 무척이나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할머니가 내민 사료 그릇을 보자 산둥이는 허겁지겁 그것을 먹어치웠다. 한껏 입을 벌리고 다급하게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는 “아롱이가 올까봐” 그런다고 했다. 산둥이는 순식간에 먹이 그릇을 비우고도 현관 앞에서 또 냐앙냐앙 울었다. 이번에는 할머니 무릎에 얼굴을 부비고, 다리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가 양손 가득 굵은 멸치를 들고 나왔다. 그것을 그릇에 내려놓자 여기저기서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다른 고양이를 다 막고서 산둥이에게만 그것을 먹였다.

 

 멀리서 낯선 사람이 나타나자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이쪽을 보는 아기고양이들.

 

다른 녀석들이야 언제든지 먹을 수 있으니, 오랜만에 온 산둥이가 우선인 것이었다. 산둥이는 거의 절반 가까이 멸치를 먹고도 할머니를 쳐다보며 냐앙냐앙 울었다.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녀석은 그 앞길까지 막고 계속해서 울었다. 무슨 할말이 있는 고양이처럼. 결국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가자 산둥이는 이제 사진을 찍고 있는 나에게로 와서 냐앙 냥 울었다. 바짓춤에 얼굴을 부비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내가 카메라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가려 대문을 나서자 녀석은 내 앞에 드러누워 아예 시위를 했다. 나는 그것이 그저 만져달라는 것인 줄 알고 목덜미와 등을 쓸어주었다. 하지만 녀석의 눈빛이 어쩐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앞쪽에 사료를 내려놓자 조금씩 다가오는 녀석들.

 

녀석은 발라당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몇 미터쯤 앞서 가서는 뒤돌아보고 또 냐앙냐앙 울었다. 내가 서너 걸음 쫓아가자 다시 또 몇 미터쯤 걸어가 뒤돌아보고 냐앙 냐앙거렸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것 같았다. 녀석은 나를 부르고 있었던 거다.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려는 거였다. “무슨 일이 있구나! 그래 가자!” 하면서 나는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이제야 안심이 됐는지 녀석은 걸음을 재촉했다. 묏등 아래 시멘트길을 지나서 과수원(벚나무를 심어놓은 밭, 할머니는 이곳을 과수원이라 불렀다)으로 들어서자 산둥이는 잰걸음을 거두고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어라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나긴 하는데..."

 

과수원 건너편에는 문 닫은 비닐하우스 우사가 한 동 있는데, 거기가 목적지임에 분명했다. 할머니가 말하던 우사가 바로 저곳이었던 거다. 그런데 한참을 앞서나가던 산둥이가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라가던 나도 덩달아 걸음을 멈추었다. 과수원 고랑에서 우사 쪽을 바라보니 놀랍게도 그곳에는 조막만한 아기고양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녀석들은 우사 앞 배수구 속을 드나들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고추밭과 오이밭 고랑을 오르내리며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다. 모두 다섯 마리였다. 산둥이 녀석이 나에게 구조신호를 보낸 것이 바로 저 녀석들 때문이었던 거다. 내 맘대로 이해하자면 산둥이는 “우리 아이들이 며칠째 굶고 있어요. 우리 애들 좀 살려주세요!”라고 내게 SOS를 보낸 것이다. 먹이원정을 다니기에는 너무 어리니, 저 불쌍한 아기들에게 사료 좀 주고 가라고.

 

 낮은포복으로 사료 앞까지 다가선 녀석들.

 

내가 주머니 속에서 사료봉지를 꺼내느라 바스락거리자 우사 앞에서 놀던 아기고양이들이 일제히 놀란 토끼눈을 해서는 나를 쳐다보았다. 우사 앞에 갑자기 낯선 사람이 떡하니 서 있자 녀석들은 기겁을 하고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다. 구멍이 작은 배수구 속으로 숨은 녀석, 구멍이 뚫린 하우스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녀석, 오이넝쿨 늘어진 잎사귀 뒤에 몸을 숨기는 녀석,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해 얼음자세로 이쪽을 보는 녀석,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경계심을 드러내는 녀석. 이왕 녀석들을 놀라게 했으니, 나도 씩씩하게 사료봉지를 들고 녀석들 가까이 다가섰다. 그리고 적당한 곳에 사료를 부어주었다. 사료를 부어주고 산둥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산둥이는 나를 보고 냐앙 하고 길게 울었다. 고맙다는 말일 테다. 갑자기 내 앞에서 격하게 발라당도 선보였다.

 

 사료를 먹고 있는 녀석들(위).

 사료를 먹고 나서 어미 품을 파고 드는 녀석들(위, 아래).

 

저 많은 녀석들 내일까지 먹으려면 사료 한 봉지로는 부족해 보였다. 나는 차로 되돌아가 봉지에 가득 사료를 더 담아왔다. 그것을 한번 더 부어주고서야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이제 멀찍이 물러나서 나는 망원렌즈를 통해 녀석들을 구경하는데, 이 녀석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고 작은 꼬물이들이 꼬물꼬물 바닥에 엎드려 낮은 포복으로 기어오는데, 기어와서는 아작아작 인상을 써가며 사료를 씹어대는데, 카메라의 찰칵 소리에 놀라서 우르르 배수구 속으로 다시 숨기도 하는데, 다시 사료 앞으로 헤쳐모여 냠냠냠냠 소리까지 내가며 맛있는 식사시간을 보내는데, 보는 내가 다 배가 불렀다.

 

 사료를 갖다 줘서 고맙다고 발라당을 하는 산둥이.

 

어느 새 산둥이는 새끼들 앞으로 가 보초를 서고 있었다. 내가 사진 찍는 시간이 길어지자 산둥이는 보초도 때려치우고 나에게 다가와서는 무릎에 고개를 대고 나를 밀어댔다. 이제 그만 가보라는 거였다. 그래 알았다 인석아! 간다 가! 사람과 고양이가 서로 대화가 통할 리 없지만, 아주 가끔은 의사소통이 될 때가 있다. 산둥이가 내게 했던 행동처럼 고양이도 위급하거나 도움이 절실할 때면 사람에게 구조신호를 보낸다. 만일 어떤 고양이가 당신에게 이런 구조신호를 보내온다면, 당신은 그 고양이로부터 아주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그런 당신은 그런 고양이의 간청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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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하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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