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달리자-몽골의 말 탄 풍경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몽골을 여행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울란바토르에서 말을 한 필 사는 것이라고.
말이라고? 그렇다. 달리는 말 말이다.
말을 사서 가고 싶은 곳까지 말 타고 가면 된다고.
더는 갈곳이 없거나 돌아갈 때가 되면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말을 팔면 된다고.
이렇게 하면 최소한 돌아다니는 여행 경비는 남기게 되는 거라고.
얼핏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지만,
몽골처럼 광활한 땅을 어떻게 말 한 마리에 의지해 여행한단 말인가.
몽골이 제주도만한 것도 아니고.
몽골의 사내들처럼 말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그러나 몽골에서는 실제로 이런 여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유럽과 일본의 여행자들)이 종종 있다.
나도 홉스골에서 두어 시간 말을 탄 적이 있다.
푹신한 자동차 시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말안장에 올라
‘춰춰’(이랴이랴)하면서 말고삐를 당길 때
말은 내 엉덩이의 아픔과는 상관없이 호숫가 초원과 구릉을 냅다 내달렸다.
꼬리뼈가 뻐근할 정도의 뼈아픈 승마 체험이었다.
그런데 몽골에서는 이런 말타기가 생활이고, 일상이다.
몽골에서는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말 타는 법부터 배운다는 말이 있다.
이건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사실이다.
몽골인의 말타는 실력은 대부분 마상 서커스 수준이다.
독특한 것은 몽골인들은 말 등에 입식 안장을 놓고 서서 탈 때가 많다.
칭기스칸 시절에도 몽골병사들은 서서 말을 탔다.
서서 말을 타는 것은 몽골의 전통이나 다름없다.
안장도 없이, 심지어는 말 고삐도 없이 말을 타는 경우도 허다하다.
말 등이 그냥 안장이고, 말 갈기가 그대로 고삐인 셈이다.
몽골에서는 누구나 말을 탈줄 안다.
외계에서 온 자동차라는 것은 울란바토르를 뱅글뱅글 돌아다니거나
여행자를 싣고 고비나 홉스골을 이따금 왕복할 뿐이다.
어차피 비포장길인 초원과 황무지에서는
자동차의 속도나 말의 속도가 별로 차이 나지 않는다.
자동차는 기름이 필요하지만,
말은 물과 풀만 있으면 된다.
하긴 고비 인근의 사막지대에서는 물이 기름만큼이나 귀하다.
우리는 누구나 말을 타고 와서 말을 타고 떠나죠.
몽골인의 이 말은 말 타지 않는 우리에게는 낯선 말이지만,
몽골의 유목민에게는 당연한 말이다.
그들에게 말은 밥이고, 돈이고, 희망이고, 미래다.
유목민에게 말은 이동수단이며,
식수와 짐을 나르는 수레의 역할도 한다.
사람에게 젖을 주고, 그 젖에서 나온 유제품은 유목민의 가장 중요한 식량이 된다.
오래 전 칭기스칸의 병력은 병사 한 명당
말 네댓 필씩을 함께 끌고 다녔다.
한 마리의 말이 지치면 다른 말을 바꿔타고,
식량이 떨어지면 가장 늙은 말을 잡아 식량으로 썼다.
나담 축제의 절정도 바로 말달리기 시합이다.
나담에서 말달리기 시합은 주로 7세 이하의 어린이가 참가하는데,
경주 거리는 15~30킬로미터에 이른다.
말이 유목민의 생활과 밀접하다 보니,
말을 지칭하는 단어만도 10가지 이상이다.
가령 두 살짜리 숫말은 다가, 암말은 사르바 하는 식으로
나이별 성별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물론 말을 전체 아우르는 말은 ‘모르’ 또는 ‘몰’이다.
제주도 방언으로 말을 ‘몰’이라고 하는데,
이는 몽골의 ‘모르’ 혹은 ‘몰’에서 온 것이다.
모르-몰-말로 변형된 셈이다.
제주도의 조랑말, 그러니까 덩치가 작은 말을 일러 몽골에서도 ‘조로몰’이라고 한다.
이렇게 쓰고 나니 갑자기 말 타고 싶다.
'말달리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평선이 보이는 끝없는 초원을 무작정 달리고 싶다.
구름이 굴러다니고, 하늘이 내려앉은 저 초원으로...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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