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롱고 고개 넘어 이크올
알타이 여행에 함께 나선 델리카의 운전기사 이름은 덥친(55세)이다.
황량함과 적막함을 건너 솔롱고(무지개) 고개를 넘으면
운전기사의 고향 ‘잡황’이 시작된다.
해발 3천미터 정도의 솔롱고 고개는 군데군데 잔설이 덮여 눈이 부시다.
운전기사는 고갯마루의 어버 앞에 차를 세우고
푸른 하닥을 품에서 꺼내 어버에 걸며 기도를 한다.
울란바토르에 살면서 그는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5년 동안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로
항가이산맥 북쪽 루트를 통해 알타이에 가겠다는 ‘나’의 고집으로
그는 5년만에 다시 고향땅을 밟게 되었다.
고갯마루 아래 자리한 작은 게르 식당에서
코릴타슐(양고기가 야크고기가 들어간 칼국수)을 시켜 점심을 먹는데,
식당으로 한 아저씨가 들어온다.
운전기사의 어릴적 동무다.
한 사람은 대도시로 나가 운전기사가 되었고,
한 사람은 고향에서 여전히 유목민으로 살고 있다.
운전기사는 야크가 풀을 뜯는 앞산을 가리키며,
어린시절 나무 열매를 따먹으러 저 산에 올랐던 기억을 털어놓는다.
고향에 남은 유목민보다 이제는 유목민이 아닌 운전기사에게 고향은
더 애틋한 존재로 남았다.
고향에 도착한 다음부터 운전기사의 얼굴은 언제나 생기가 넘쳤다.
이데르 강(바이칼 호수로 흘러간다)이 흐르는 이크올에 도착하자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동생이 길가에 마중을 나와 있다.
주인장은 처음 보는 우리에게도 코담배를 권하며 손님 대접을 한다.
몽골에서는 코담배를 받았을 때
코에 대고 향기를 맡은 다음, 오른손으로 전해주는 것이 예의다.
내가 마을 구경을 하고 싶다고 하자 딸네미를 길안내로 붙여 준다.
열 살 남짓한 예쁜 가이드는 마을의 소박한 사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사원은 소박하고 도시는 황량하다.
하지만 학교 운동장에는 이 황량한 도시를 지켜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벌판의 하늘에는 솔개가 낮게 떠서 이크올의 외로움을 내려다본다.
지구상에 이런 도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만 같은
이크올은 그렇게 은밀한 곳에서 ‘오래된 미래’를 유목하고 있었다.
* 맛있는 알타이의 푸른바람::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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