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37번 국도에서 죽어간 고양이
여기 한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녀석은 방금 세상을 떠났다.
죽은 고양이의 영혼은 잠시 죽어 있는 자신의 주검을 바라보다가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으로 기나 긴 여행을 떠났다.
죽으면서 녀석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혀를 반뼘이나 길게 빼물고 있었다.
배는 하얗고, 등은 노랑 줄무늬가 선명한 노랑둥이 녀석이다.
37번 국도를 달리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도로 가장자리에서 로드킬로 죽어간 고양이 한 마리.
장호원에서 여주로 올라가는 그럭저럭 한적한 도로였다.
도로 왼쪽은 주택가이고, 오른쪽은 제법 큰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아마도 이 녀석은 하천 갈대숲에 내려앉은 오리라도 사냥할 생각으로
하천을 내려갔을지 모른다.
사냥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 녀석은 하천 둑방을 기어올라와
도로를 건너려고 하는 순간, 머리쪽을 부딪쳤던 게 분명해 보인다.
다른 곳의 외상은 전혀 없고,
머리 부위에만 핏자국이 맺혀 있었다.
갓길이 좁아 차를 세울 곳이 없어 사고지점 50~60미터 전방 둑방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나는 겨우 몇 컷의 사진을 찍은 뒤,
로드킬당한 녀석을 둑방 풀섶으로 옮겼다.
이미 죽은 고양이이긴 했지만,
또다시 바퀴에 깔려 납작한 사체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검을 옮기는데, 뒷다리쪽만 몸이 굳었을 뿐
아직도 체온이 싸늘하게 식지 않은 상태다.
기껏해야 죽은 지 반나절도 안된 것이 분명하다.
삽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제한속도 시속 60km의 도로.
다시 운전대를 잡고 60km의 제한속도로 올라오는데,
얼마나 급한 차들이길래 상당수의 차들이 내 똥차를 추월해갔다.
여주 인근에서도 수많은 바퀴에 깔려 납작하게 도로에 달라붙은 로드킬의 흔적을 만났다.
역시 고양이였다.
장호원에서 양평까지 올라오는 동안
도로에서 로드킬로 죽어간 고양이는 무려 5마리나 되었다.
도심과 도심 인근에서 로드킬로 죽어가는 동물의 절대다수는 고양이다.
그러나 고양이는 로드킬의 어떤 통계에서도 누락되어 있다.
한국도로공사의 고속도로 로드킬 조사에 따르면
2005년 6,543마리, 2006년 5,565마리 등으로
하루 평균 약 8~9마리의 야생동물이 로드킬을 당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러나 이 통계는 국도와 지방도가 조사에서 빠져 있고,
조사대상 동물 또한 다람쥐나 고양이 등은
대부분 통계에서 제외된 수치다.
몇 년 전 서울대 환경연구소의 <로드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리산 구간에 위치한 88고속도로만 해도
같은 구간에서 조사한 도로공사의 조사 수치보다 7~8배나 더 많았다고 한다.
또한 서울대 조사팀은 차량 속도가 로드킬 빈도를 높인다는 점도 밝혀냈다.
제한속도가 각각 다른 도로를 조사한 결과
제한속도가 높은 쪽의 도로에서 더 많은 로드킬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로드킬이 단지 동물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로 인한 교통사고는 인명피해로 이어질 때가 많다.
최근 들어 도로를 건설할 때 생태통로를 확보하고 있음에도 로드킬은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제대로 된 생태조사 없이 잘못 조성된 생태통로와도 연관이 있다.
한마디로 엉뚱한 지점에 동물이 이용하기도 불편하게 생태통로가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일본과 캐나다를 비롯한 선진국의 경우
야생동물의 출현이 잦은 곳에는 반드시 생태통로와 유도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에 생태통로(전국에 100개도 되지 않는)도 부족할뿐더러
제대로 그 기능을 다하는 곳도 드물다.
그동안 침략자인 우리는 전적으로 인간의 편의를 위해 본래 동물의 서식지였고, 이동로였던 곳들을
깎고 밀고 뚫어서 도로를 만들어왔다.
그로 인해 우리는 더 빨리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게 되었지만,
동물들은 그로 인해 더 빨리 생명을 잃고 있다.
우리나라 야생동물의 가장 치명적인 사망원인 1위도 로드킬이라는 보고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도로 포장률을 자랑하지만,
동물의 안전시설은 거의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동물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목숨을 건 도로횡단을 해야만 한다.
동물에게도 가야만 하는 길이 있다.
그러나 그 길은 죽음을 부르는 ‘킬-로드’가 되어가고 있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길고양이 보고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이주기 3개월, 드디어 정체 드러낸 고양이 (21) | 2009.06.03 |
---|---|
어느 길고양이의 삼각관계 (15) | 2009.05.17 |
아프지만 괜찮아 (14) | 2009.04.17 |
길고양이 숙소는 어떤 모습일까 (16) | 2009.04.08 |
실루엣 고양이 (5) | 2009.04.02 |
로드킬, 37번 국도에서 죽어간 고양이 (27) | 2009.03.27 |
다친 고양이 구조에서 수술까지 (35) | 2009.03.17 |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 (120) | 2009.03.12 |
길고양이 화분 놀이터 (14) | 2009.03.10 |
고양이 4남매 겨울나기 그후 (34) | 2009.03.09 |
어미냥 아기냥 (16) | 2009.03.06 |
- 이전 댓글 더보기
-
맘이 무거워 2009.03.27 16:52
맘이 무겁네요..ㅜㅜ.저도 집에 가려 택시를 타고 늦은 시간이라 집앞 골목까지 들어가다가 제가 탄 택시가 그리 빠르게 달린것도 아닌데 고양이를 치었어요.. 한번 치고 세게 친게 아니라 튀어나가질 않아 제가 앉은 뒷자리 바퀴에 또한번 치었답니다..그때 뒤를 돌아보았지만 차마 내려서 볼 순 없었는데,,맘이 무거웠지요..ㅜㅜ.근데 고양이들이 본인이 더 빠르다 생각해서 차가 오면 자기가 더 빠르게 지나갈 수 있다 생각하고 뛰어든다는데..맞는 얘긴가요? 무튼 맘이 안좋네요..대책을 마련할수 있음 도우면 좋겠어요..
-
아... 2009.03.27 20:41
이런 글 볼 때마다 마음이 슬퍼집니다.
저 고양이도 나름 힘들게 살아왔을텐데. 혹시 새끼가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 새끼들 먹이를 구하기 위해
나오다 사고당한 건 아닐까..
쟤들도 살기 위해 태어났는데 힘겹게 아둥바둥 살다 고통스럽게 세상을 떴을 걸 생각하니 우울해집니다.
인간의 이기라고 하지만 양보할 수 없다면 동물들이 다닐 수 있게 작은 다리라도 놓아둘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주인장님 말씀대로.
외국 어디에 (미국이었나..) 동물들만 다닐 수 있게 차도 위에 작게 다리를 놓아 로드킬을 많이 줄였다고 본 거 같아요.
하찮게 여겨지는 동물이라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음 좋겠습니다. -
온기잃은 2009.03.29 21:24
로드킬의 원인 제공이 되는 고양이 유기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비치못할 사정이 생겨 반려동물과 함께 할수 없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럴때는 다른 가정으로의 탁묘,재입양이 최우선의 방법이지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재입양할시엔 거의 고양이들이 평균적으로 5개월~7개월이 넘어선 성묘상태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5개월령 이상의 큰 몸집의 성묘들의 입양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실제 재입양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탁묘역시 상당한 금전적인 부담을 주인이 물어야 한다는 점에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경우라면 불가능한 일이죠.
탁묘,재입양이 불가능한 경우에 다음 수순으로 생각해볼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안락사"이지요..
그러나..
주인의 손에서 그나마 가장 책임있게 할수있는 방법임에도..
무언가를 죽인다는 점에서 꺼려하여..
결국 "유기"라는 최악중에 최악의 방법을 사용하게 되지요..
고양이를 유기하는 것은.. 긴말이 필요없이 한마디로 "고양이를 지옥에 내던지는 것"이지요.
이제 이런 "유기예정"인 동물들을 구할 방법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모아야 할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안락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운동을 전개한다거나..
혹은 대리탁묘기관 설립, 혹은 파향되는 동물들을 약간의 비용을 받고 수거해 대신 안락사를 시키는 방법같은..
대안의 방법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
사피아 2009.04.15 03:02
외국에선 동물들이 길을 다 건널때까지 기다려줍니다....왜 한국에선 동물들을 발견하면 더 쎄게 달려올까요? 어느 개한마리 길을 건너는데 정말 무자비하게 운전자들이 악셀을 밟아오더군요...한국은 언제 문화수준이 올라갈지요? 그런걸 학교에서 어린시절부터 가르치면 안될까요? 교육청과 환경청에서 해야할일...그런건 교육 안시키고 비열해지는 교육 야비해지는 교육만 앞장서서 시키네요..토플점수 일점올리기보다는 인간이 되길 가르쳐야하는데요..
아침마다 서울 외곽에선 로드킬당한 고양이를 보아야합니다..운전자들이 조시해서 운전해주었으면 합니다..항상 같은 지점에 고양이들이 몰살되어 있으니까요.. -
난이 2009.05.01 18:04
인간이면서 운전대를 잡으면 인간존중조차 하지않는 사람들이 있죠... 자동차는 분명 매력적인 도구이긴 하지만, 전 그게 정말이지 무섭습니다.
거기다 신호나 속도제한까지 위반하면서 달리는 것들은 더 무섭습니다.
사람도 그럴진데, 동물을 오죽할까, 싶어요. 제가 데리고 있는 강아지는 자동차를 극도록 무서워합니다. 산책 중에 자동차 불빛만 봐도 바로 굳어버립니다..
도로를 통행하거나 근처에 살아가는 동물을 배려하는 것은 단지 동물들만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배려하는 것임을 알아주었음 합니다..ㅠ_ㅠ
이쁜 고양이들 보다가 이 포스트를 보니, 마음이 먹먹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