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 <18세기 이후 자연과 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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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이후 자연과 나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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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안 헐벗었던 산봉우리는 이제 초록색 브래지어를 걸쳤다. 자연이여, 18세기 이후 나는 불행해졌다 나는 내 자지를 노 저어 여기까지 왔다 뒤돌아 보면 강물은 여지저기 찢겨 있다. 자연이여, 흘러가는 상처여, 늙은 동지여, 헉헉거리며 숨가쁘게 얼음 녹는 해빙의 물결에 나는 더러운 손을 씻는다 나는 그처럼 따뜻한 구멍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랬다 18세기 이후 역사는 접붙인 자지들로 만든 인공 숲이었다 겨울 동안 배곯았던 길은 이제 훈풍의 노래를 여물처럼 씹고 있다. 자연이여, 찢긴 악보여, 단 하나의 모성이여, 나는 강가에 쭈그리고 앉아 내 자지를 기역자로 꺾어 날카로운 낫이 될 때까지 숯돌에다 갈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봄날이 등 뒤에서 산불처럼 크게 웃으며 나를 덮치리라

-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200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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