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부채
장철문
백년 만의 무더위라던 올 여름은
히말라야에 눈이 많이 와서
전에 없이 시원할 것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의 하느님은 그 먼 히말라야에도 계셔서
당신의 부채바람이 여기까지 불어오는 것이다
바람의 날개가 티베트 일대 산록을 이륙해서
서역을 지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지나
백두대간 언저리까지 그늘을 드리우며 동해로 빠진다는 것인데,
하루에 구만리를 간다는 대붕의 날개도
거기 대면 애걔걔,
겨우 소리개 날개쯤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다
눈의 집이라는 히말라야의 곳간을 얼마나 채운 것인지는 몰라도
그 하느님의 곡식이
죽부인도 되고
무좀 걸린 발을 씻는 여울도 되고,
그것참!
당신의 부채가 도무지 맘먹고 장만한 에어컨쯤은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나 아닌지는 몰라도
하여간, 말만 들어도 시원하기는 무진장 시원한 것이어서
당신의 그 서슬 푸른 흰 살이
바람도 되고
풍류도 되고
거울도 되어서
올여름에는 내가 살아온 내력이나 그 바람에 비춰봐야겠다
-- 장철문 <무릎 위의 자작나무>(창비, 200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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