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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26 길고양이 탐구생활: 바람이편 (72)

길고양이 탐구생활: 바람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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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탐구생활: 바람이편



오늘은 바람처럼 왔다가 사료만 먹고 가는 길고양이 바람이가 주인공이에요.

바람이는 오늘도 랭씨네 집으로 발도장을 찍으러 가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한결같아요.
어언 8개월째 같은 짓을 하다보니 바람이는 어느새 빠꼼이가 다 됐어요.
랭씨네 집을 방문할 때는 타이밍이 중요해요.
아침 6시 50분쯤 랭씨네 집사가 집밖으로 나와요.
아침마다 마누라를 차에 태우고 어디를 가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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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그가 집밖으로 나왔을 때 눈도장을 찍는 거예요.
“어이 랭집사! 나야 나 고양이계의 비담, 바람이!”
그런데 이런 된장, 랭집사 표정이 오늘따라 고양이모래 속에 밤새 발효된 맛동산이라도 씹은 표정이에요.
마누라한테 당한 게 분명해요.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험난할 거 같아요.
그러나 산전수전 다 겪은 바람이, 사람의 표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기로 해요.
15분쯤 시간이 지나자 랭집사가 차를 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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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수작을 걸 타이밍이 되었어요.
다시 말하지만, 타이밍이 중요해요.
집안으로 들어간 그가 랭보와 랭이에게 아침밥을 주고 있어요.
지금 테라스로 올라서는 건 왕초보 유딩이나 하는 짓이에요.
바람이는 랭보와 랭이가 밥 먹고 올 때를 기다려요.
밥 먹고 나면 두 녀석은 언제나 창가로 나와요.
이때 어흥~ 쿠콰쾅, 하고 최대한 소란스럽게 테라스로 올라서는 거예요.
그럼 한바탕 실내에서는 두 녀석이 혼비백산 깨방정을 떨어요.
랭집사도 무슨 일이냐며 테라스 창가로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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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한번 더 그 사람과 눈을 맞춰야 해요.
그리고 ‘으냐앙~’ 목청을 높여 존재감을 알리는 거예요.
말이 존재감이지, 사실은 랭보와 랭이를 위협해 삥 뜯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그러면 십중팔구 집사는 사료를 한 접시 담아내와요.
그런데 이런 브라질 시베리아, 저 인간이 뒤도 안돌아보고 작업실로 들어가요.
이럴 수는 없는 거예요.
뭐 별로 바쁜 것도 없는 것같은데, 저 인간 허구헌날 골방에 쳐박혀 뭐하는지 모르겠어요.
바람이는 작업실 창가로 자리를 옮겨 저 인간이 뭐하나, 훔쳐보기로 해요.
컴터에게 뭔 화풀이를 하나봐요.
컴터가 맛이 갔대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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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안되니까 길고양이 보고선지 길고양이 볼거얀지도 못올리게 됐다고
짜증 게이지가 강변북로 택시요금마냥 마구 올라가요.
바람이는 잠시 생각에 잠겨요.
“하긴 나도 저 보고선지 볼거얀지로 유명해졌지... 달타냥 나오고 나서 한방에 훅 가더만...”
엊그제는 바람이가 달타냥을 만나 이런 충고를 날렸다고 해요.
“너두 나처럼 한방에 훅 간다...요즘 축사냥이 땜에 우리 둘다 찬밥인 거 알지..?”
그런데 달타냥의 대답이 맹랑해서 바람이는 왕짜증났어요.
“아니 몰라!”
이럴 땐 정말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신간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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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랭집사는 오늘 기분이 된장인 것만큼은 분명해요.
험한 꼴 당하기 싫으면 이쯤에서 내려가는 게 좋아요.
바람이는 단풍이 다 떨어진 마당을 걸으며 고민에 빠져 보아요.
아무래도 초절정 오나미 어메이징 선물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그동안 박새 두 마리에 동고비 한 마리를 뇌물로 갖다 바친 약발도 다 떨어졌어요.
인간이란 참 단순해요.
뇌물과 선물에 한없이 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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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 저나 오늘은 무슨 새를 잡아바치나...?”
바람이는 마당을 성큼성큼 걸어 논둑으로 내려가요.
가을걷이가 다 끝나 심심하기 짝이 없는 논이에요.
그때 바람이 눈에 개울가 오목눈이가 눈에 띄어요.
살금살금 몸을 낮추고 다가가요.
근데 이건 또 무슨 내장의 융털 곤두서는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집안에 쳐박혀 있어야 할 랭집사가 카메라 들고 앞에서 설치고 있어요.
도와주진 못할망정 산통을 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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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저 인간은 왜 툭하면 카메라를 들이대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는지 모르겠어요.
표정 관리 안돼요.
그래도 인기 관리 해야 돼요.
이제껏 뚱한 표정 하나로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은 최대한 침통한 표정을 지어야 할 타이밍이에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걸어가는데,
수컷 냥이 모양 빠지게 논에 고인 웅덩이에 한쪽 발이 빠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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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된장, 그래도 눈빛이 흔들리면 안돼요.
누가 뭐래도 수컷은 눈빛이에요.
랭집사에게는 여전히 도도하게 원망의 눈빛을 쏘아보내요.
“너 땜에 망쳤어!”
어쨌든 산통을 깨서 미안한지 랭집사가 사료를 한 접시 가득 내와요.
모로 가도 사료만 먹으면 되는 거예요.
체면이나 존재감 따위는 먹고 난 뒤에 생각해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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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고생 끝에 먹는 이 감동적인 사료의 맛!
여기에 캔의 도움이 약간만 있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에요.
사료도 배불리 먹었으니 바람이는 이제 테라스 아래로 낮잠을 땡기러 가요.
먹은 뒤엔 자는 게 남는 거예요.

지금까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언제나 반복되는 바람이의 하루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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