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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19 고양이 꽃잠 (34)
고양이 꽃잠
우리동네 파란대문집 달타냥이 산책을 나간다.
할머니는 또 마실 나가고
혼자 집 보기가 심심해서
봄바람이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어서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달타냥이 나긋나긋 길을 나선다.
이왕 갈 바엔 발톱도 다듬어야지.
집 뒤란의 고사목에 발톱을 다듬고
무꽃 파꽃 일렁이는 텃밭을 건너
분홍빛 꽃잔디 화단을 어슬렁어슬렁 거닐며
이따금 고개를 들어 꽃구경도 한다.
고샅의 앵두꽃은 지고 길가엔 어느새 철쭉이 피었다.
탐스럽게 핀 철쭉꽃에 고개를 파묻고 꽃향기도 맡아본다.
햐, 좋다.
한번 더 철쭉향을 맡아본다.
별로 향기도 없을 텐데, 이 녀석
다른 꽃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이상하게 철쭉꽃만은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음미하듯 냄새를 맡는다.
그렇게 한참을 철쭉꽃에 취해 있다가
녀석은 봄볕이 너무 따가워
꽃그늘 속으로 몸을 피한다.
자기 집도 아닌 남의 집 화단에 올라가 아예 자리를 잡고 앉는다.
따사로운 봄볕에 몸은 노곤노곤해지고 졸음이 쏟아진다.
아무도 없지?...
스윽 한번 주변을 둘러보고는 이 녀석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꽃잔디에 꽃양귀비에 이름도 잘 모르는 봄꽃이 팝콘처럼 피었는데,
꽃 속에서 고양이는 까무룩 잠이 든다.
고양이의 꽃잠이다.
꽃잠 자는 고양이다.
그 모습을 렌즈로 들여다보는 나조차 나른해지는 풍경이다.
행복하고 게으른 그림이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파란대문집 함석 담장 뒤에서 누군가 야옹거리며 달타냥을 부른다.
그 소리에 달타냥이 게슴츠레 눈을 뜬다.
귀찮게 누가 부르는 거냐는 표정으로
달타냥은 노곤해진 몸을 일으켜 느릿느릿 뒤란으로 걸어간다.
함석 담장 사이에서 낯선 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내민다.
처음 보는 고양이다.
아니, 자세히 보니 두어 번 정도 저 녀석을 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한밤중에 달타냥과 함께 파란대문 앞에 앉아 있던 녀석이
아마도 저 녀석이지 싶다.
내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달타냥 여친냥이다.
여친냥은 산책을 나간 달타냥이 올 생각을 않자
일부러 부르러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가만, 여친냥의 배가 불룩한 게 수상쩍다.
혹시 달타냥의 아기라도 밴 것일까.
달타냥의 2세라면 크림색 아기고양이가 나오는 건가.
생각만 해도 흐뭇해진다.
내가 설레발을 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볕 좋고 꽃 좋은 봄날에
달타냥과 여친냥과 아기고양이들이 봄꽃 속을 거닐다
꽃그늘 속으로 들어가 까무룩 꽃잠이라도 자면 좋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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