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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02 고양이의 단풍놀이 29
고양이의 단풍놀이
우리 동네 은행나무 노란 단풍이 절정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잎들이 우수수 와르락 떨어져내린다.
가을 산책이나 하자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은행나무 아래서 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고양이 한 마리가 은행나무 밑에서 놀고 있다.
아니, 저 녀석은....달타냥이다.
단풍이 절정인 은행나무 아래서 달타냥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잠시 녀석이 하는 양을 멀리서 훔쳐보다가 나는 배꼽잡는 줄 알았다.
고양이의 눈에는 은행잎이 떨어지는 것이 마냥 신기했던 모양이다.
녀석은 은행잎이 떨어질 때마다
우다다다 잎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있자면
고양이 한 마리가 은행나무 밑에서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는 꼴이었다.
"왜 안 떨어지는겨...떨어져라 은행잎!!!" 은행나무를 스크래처 삼아 박박박 발톱을 긁어대고 있는 달타냥.
그것은 달타냥만의 단풍놀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은행나무 가까이 다가서자
달타냥은 잠시 혼자만의 단풍놀이를 집어치우고 냥냥거리기 시작했다.
단풍나무 가지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아마도 녀석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냥냥 신기해, 저 위에서 노란 잎들이 막 떨어져! 와아, 대따 신기해...!”
내가 은행나무 밑으로 걸어가자 이 녀석 때와 장소도 안가리고 발라당을 선보인다.
그때 냥냥거리던 달타냥이 은행나무 밑동으로 걸어가더니
이번에는 은행나무 밑동을 스크래처 삼아 박박박 발톱으로 긁어대기 시작했다.
발톱이 근지러운 것인지,
그렇게 해서 은행잎을 떨어뜨려볼 심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은 거의 일 삼아 세 그루의 은행나무를 돌아다니며
박박박 긁어대는 거였다.
"와아... 대따 신기해요...은행잎이 막 쏟아져..." 뽈뽈거리며 은행잎 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 달타냥.
곧이어 녀석은 깜빡했다는 듯 폭신한 은행잎 융단 위에서
발라당을 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발라당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달타냥은 은행나무 밑에서 놀았다.
뽈뽈뽈뽈 폭신한 은행잎 밟기도 하고,
화르락 냥냥 은행잎 잡기 놀이도 하다가
박박박 은행나무를 긁어대기도 하면서
달타냥은 한참이나 은행나무 아래 머물렀다.
"에구 놀래라...근데 왜 누워서 찍어요?" "낼 또 와야지...!"
고양이가 단풍놀이를 할까, 라는 반문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설령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고양이가 은행나무 아래 머물렀다고 해도
내 눈에는 그 자체로 그것은 낭만적인 그림이다.
찬바람 불어 은행잎 다 지고 나면
저 낭만적인 그림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달타냥아, 은행잎 지기 전에 너의 묘생을 즐겨라.
* 묘생을 즐겨라::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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