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는 붐브그르에 와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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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붐브그르에 와서 운다



델게르를 벗어난 델리카는 한참이나 바위 너설지대를 지나 보차강에 도착한다.
사막의 한복판에 자리한 삭막하고도 황량한 마을.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사원은
수시로 몰려오는 세찬 모래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 있다.

저녁이 가까워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았으나, 게르 숙소조차 없다.
하는 수 없이 서너 시간 거리에 있는 다음 마을까지 가야만 한다.
다시 시작되는 바위 너설지대.
사막에 가까운 모래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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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언저리, 초원의 변두리에 있는 듯 없는 듯 자리한 붐브그르 마을. 마을의 유일한 게르 여인숙에 짐을 풀고 나는 알타이의 온순한 밤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불쑥 나타난 바이드락 강과 계곡의 지구답지 않은 풍경들.
마치 우주복을 입힌 사람만 있다면 달착륙 사진으로 조작해도 될 듯한 풍경.
여기가 지구라는 유일한 단서는 강물과 강변의 나무들뿐이다.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카메라는 고되고,
더 이상 적을 곳이 없는 수첩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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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브그르에서 만난 아이들. 내가 카메라를 올릴 새도 없이 녀석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내 앞에 섰다.

가방에서 꺼낸 축적 1:3,270,000 몽골 지도 한 장은 너무 펴봐서 접힌 데가 다 닳아버렸다.
온전한 것이라곤 게르에서 모래와 함께 뒹굴던
낡은 침낭과 아껴두었던 레모나 한 통뿐이다.
저녁놀이 모래벌판을 붉게 물들일 때쯤 붐브그르에 도착했다.
붐브그르.
 나는 입을 오므려 '붐브그르, 붐브그르'하고 중얼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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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마을 공터를 지나고 있는 두 아이.

붐브그르에서는 바람이 붐브그르 붐브그르 분다.
해는 기울고 바이드락 강변을 떠난 낙타는 붐브그르에 와서 밤새 운다.
세상의 끝에서 온 모래바람이 한바탕 마을을 휩쓸고 가면,
먼지 속에서 사막을 닮은 아이들이 붐브그르 붐브그르 뛰쳐나온다.
어떤 아이는 지붕에 올라가 칼싸움을 하고,
어떤 아이는 게르 밖에 앉아서 저녁 햇살을 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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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무렵에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늙은 유목민.

이 작은 마을에 아이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카메라를 둘러멘 나를 보자 순식간에 열댓 명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미처 카메라를 올릴 새도 없이 녀석들은 시키지도 않은 갖가지 포즈를 취한다.
어떤 아이는 V자를 그리고,
어떤 아이는 한쪽 눈을 찡그리고, 어떤 아이는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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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하고 적막한 붐브그르 풍경. 어쩌다 나그네가 한번씩 묵었다 가는 외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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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작아 까치발을 하고 선 한 아이는 사진에 나오지 않을까봐 기어이 울고 만다.
멀리서 그것을 지켜보는 어른들은 손뼉까지 쳐가며 웃어댄다.
여기는 사막의 언저리, 초원의 변두리.
늑대를 닮은 개들과 구름을 닮은 양들이 사람보다 많고,
어른보다 아이들이 많은 붐브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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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브그르 외곽에 자리한 바이드락 강변 풍경.

여관도 없고, 나그네도 없다.
마을의 유일한 게르 여인숙은 거의 개점휴업인 채로 갑자기 찾아온 이상한 나그네를 맞는다.
도대체 무엇하러 찾아왔는지도 묻지 않은 채
게르 주인은 난로에 한가득 말린 소똥을 집어넣고 불을 피운다.
순식간에 게르를 뒤덮는 온기와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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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브그르에서 바라본 저녁 무렵의 오렌지빛 하늘(위)과 아침 해뜰 무렵의 마을 풍경(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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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가 서걱이는 오래된 침대.
스프링이 고장난 매트리스는 엉덩이를 들썩일 때마다 크으응, 낙타 우는 소리를 낸다.
한뼘 남짓 뚫린 게르 지붕 사이로 북두칠성이 보이고,
알타이로 흘러가는 은하수가 보인다.
게르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아도 북두칠성은 분명 하늘 가운데 걸려 있다.
북반구에서는 북두칠성이 하늘 중간에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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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브그르 마을 한복판에서 만난 풍경. 어미소가 저녁 햇살 속에서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고 있다.

하늘은 온통 별바다다.
바람은 밤에도 이렇게 세찬데, 별들은 저토록 온순하다.
별바다 언저리에는 손톱만한 그믐달이 떠서 외롭고 적막한 붐브그르를 비춘다.
밤이 깊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들으려 하지 않아도 바람의 노래가 들려온다.
하늘에 지천으로 피어난 별꽃 무리 중에 몇은 별똥으로 지고,
몇은 카메라에 담긴다.

* 바람의 여행자::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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