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먹이원정대
길고양이의 삶은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다.
더욱이 길 위에 내던져진 아기냥의 삶은
하루하루가 처절한 생존의 날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태어난 길아기냥의 절반 이상은
3개월을 넘기지 못한채 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굶어죽고, 얼어죽고, 차에 치여죽고, 길개에게 물려죽고...
유독 길고양이에게만 냉혹한 현실도
아기냥을 참혹한 죽음과 비극으로 내몰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앞으로 아기냥을 데리고 오는
여섯 마리 그냥이 가족(막내인 순진이는 끝내 죽었다)도
냉혹한 현실을 피해갈 수 없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엊그제 아침,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는데,
어미냥 그냥이가 네 마리의 아기냥과 한 마리의 보모냥을 이끌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길고양이 여섯 마리의 먹이원정대!
녀석들은 아래쪽의 다세대주택 골목이 둥지(추정)이지만,
이렇게 2~3일에 한번 꼴로 집앞으로 먹이 원정을 온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컨테이너 박스로 가지 않고
공터 텃밭으로 내려간다.
텃밭 가장자리 우묵한 나무더미가 이 녀석들의 임시 거처,
즉 베이스캠프인 셈이다.
그러니까 아래쪽의 둥지가 기지라면,
텃밭 거처는 베이스캠프, 컨테이너 박스는 최종캠프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도 험난하다.
뒤처진 아기냥 한 마리는 나무턱을 넘지 못해 끙끙거리고,
한 마리는 아예 너무 오버해 혼자서 컨테이너까지 올라갔다.
임시거처에 도착해 아기냥 한 마리가 보이지 않자
보모냥은 나무 담장에 올라 아기냥을 애타게 불러본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컨테이너까지 올라갔던 아기냥은 보모냥의 소리를 듣고서야
텃밭 무청밭에서 상봉한다.
아기냥을 무사히 임시 거처에 옮겨놓은 어미냥 그냥이는
이제 맘놓고 먹이를 구하러 간다.
잠시후 그냥이는 집앞에 놓아두었던 탕수육 조각을
임시 막사로 물어날랐다.
탕수육 몇 조각으로는 여섯 마리 원정대에게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태어난지 이제 한달 반,
아기냥들의 식성은 나날이 늘어만 간다.
그것은 다시 말해 녀석들이 나날이 배를 곯는다는 얘기다.
막내 순진이도 그렇게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4개의 고양이캔을 들고나와
아기냥들에게 나눠주었다.
임시 거처 앞에 사료도 뿌려주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녀석들을 다 먹여살릴 순 없다.
언제까지 녀석들을 보살펴줄 수도 없다.
동네에서 내가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는 녀석들만 해도 15마리가 넘으니,
사료값이며 캔값을 감당할 수도 없다.
다행히 여러 네티즌들이 내게 사료와 캔을 보내와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부족하나마 녀석들을 보살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위의 따가운 눈총만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길고양이가 가장 참을 수 없는 것 또한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이며,
이유없는 해코지다.
차밑에 얌전하게 앉아 있는 아기냥을 향해 빗자루로 쑤시는 행위는 괜찮고,
아기냥에게 먹이 주는 행위는 나쁘다고 말한다.
이래저래 그냥가족 먹이원정대는
그럭저럭 하루를 무사히 살아남았다.
먹이를 받아먹은 아기냥들은 텃밭과 나무더미에서
이제 장난을 치며 논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땅바닥은 질척하고
현실은 척박하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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