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구경 나온 길고양이
생애 첫가을을 맞은 길고양이 멍이와 얌이가
오늘은 동네 공터까지 내려와
노랗게 물든 은행잎 단풍 구경을 한다.
공터에는 은행나무가 다섯 그루,
노란 잎들을 은전처럼 흔들고 있다.
성격이 얌이보다 훨씬 낭만적인 멍이는
아예 담장에 올라가 노랗게 물든 은행잎과
은행잎 너머로 언뜻언뜻 비치는 푸른 하늘을
마치 사람처럼 감상하고 있다.
그야말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는 생애의 첫가을.
푸르던 잎들이 저렇게나 노랗게 물든 풍경이 신기한듯
멍이는 한참을 그렇게 담장에 앉아서
은행잎과 하늘과 은행잎이 떨어진 바닥을 번갈아 보고 있다.
녀석에게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만이 관심사로 보인다.
그러다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멍이는 은행나무 밑으로 슬금슬금 걸어가더니
나무를 타고 오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은행잎이 가득한 가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멍이가 한참 가을의 낭만을 즐기고 있을 무렵,
얌이는 은행나무 아래를 똥 마려운 개처럼 왔다갔다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은행잎이 떨어진 거리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떨어지는 은행잎이 신기해
저기서 은행잎이 떨어지면 저리로,
여기서 은행잎이 떨어지면 이리로,
왔다갔다 하는 것뿐이다.
그래도 녀석은 떨어진 은행잎이 마냥 신기한지
코를 킁킁거리며 낙엽더미에서 은행잎 냄새를 맡고 있다.
혹시 모르지,
낙엽더미 속에 숨겨진 은행 열매의 지독하게 구린 냄새를 맡고 있는 것인지도.
이따금 얌이는 단풍놀이가 지겨운지 하품도 한다.
멍이에게 그만 가자고 채근도 한다.
은행잎도 구경하고 하품도 하는 한가로운 가을의 한때!
아무튼 멍이와 얌이의 생애 첫 가을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은행나무가 자라듯 녀석들도 쑥쑥 자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녀석들의 생애 첫 겨울이
불쑥 찾아올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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