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
-- 다우베 드라이스마 <나이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코 리브르, 2005)
우리는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이건 반드시 기억해야 돼. 지금 이 순간을 잊으면 안돼. 이 모습, 이 느낌, 이 손길." 하지만 몇 달도 되지 않아, 아니 겨우 이틀만 지나도 우리는 그 순간의 색깔, 냄새, 향기를 우리가 원했던 것만큼 생생하게 기억해낼 수가 없다. 체스 노테봄은 <의식>에서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고 말했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 고. 그리고 또 저자는 우리의 인생이 기억의 상실과 함께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고 말한다. 책은 어쩌면 따분할지도 모르는 기억과 망각, 데자뷰와 회상, 내면의 섬광전구에 대한 이야기를 건너 의사체험자(죽음의 경험자)들의 사례까지 확장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각자의 생체시계를 지니고 있고, 그것은 나이들수록 느려지는 것보다는 그저 과거 회상 속의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갔다고 여긴다.
저자는 생리적 시계가 느려지게 되면 세상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빨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여 어린시절의 1년은 너무나 길고 지루했으며, 지금의 1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린다. 나이가 들면 행동이 느려지고, 행동이 느려지면 시간은 상대적으로 빨라진다. 집에서 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걸리던 것이 나이가 들면 노쇠함과 몸의 느려짐으로 인해 15분이 걸릴 수도 있다. 결국 나이가 들면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기억과 망각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잊지 않은 것이고, 우리가 잊은 것은 기억해낼 수 없다. 기억이 끝나는 곳에서 망각이 시작되고, 망각이 끝나는 곳에서 기억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 이분법의 어디쯤에 우리가 잊어버린 기억을 끼워넣을 수 있을까?
책에는 소량의 시편과 그림들, 프로이트의 사례와 철학적/수학적 사례들까지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은 이해를 방해하고 있는 사례들이다. 기억과 망각, 시간의 문제를 408페이지까지 써야만 했던 저자의 갸륵함과 더불어 시간의 문학적 해석이 들어 있지 않았다면, 나는 이 책을 집어던졌을 것이지만, 다행히 몇몇 부분의 은유와 사유가 내 맘을 움직였다. 개처럼 드러누운 내게 다소 비싼 16,500원의 '뜯어먹을' 뼈다귀를 던져준 이 책에게 조금은 고마운 생각이 든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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