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어때요?
참 뻔질나게도 찾아오는 아저씨가 저를 휴지 먹는 고양이로 소개하는 바람에
졸지에 저는 휴지냥이 되었어요.
슈렉이도 막냉이도 나 보고 휴지냥이라고 놀려대지만,
뭐 나도 슈렉이에게 가끔 ‘이런 고양이계의 슈렉이’하고 놀려대곤 합니다.
제가 사는 곳이 누추해서 웬만하면 집 공개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자꾸만 수염 난 아저씨가 사진을 '박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오늘은 제 집을 공개할 수밖에 없게 되었군요.
제가 사는 곳은 볼것도 없이 초라하게 생겼습니다.
누군가 갖다놓은 이 커다란 파이프가 바로 우리 집입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맞춤하게 구멍이 나 있고,
안으로도 깊어서 길개나 손버릇 나쁜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게 피난할 수 있는 공간이죠.
더구나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처럼
층층이 복층 구조로 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위층 아래층 이사를 다닐 수도 있구요.
실제로 1층에는 제가 살고, 2층에는 슈렉이가, 3층에는 막냉이가 살죠.
내일이면 또 층수가 달라질 수도 있구요.
전망은 별로 좋지 않지만,
아저씨가 사료를 내려놓고 가는 장소에서 가까워 언제든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뛰쳐나갈 수도 있답니다.
더더욱 파이프 더미 위에 천막을 씌워놓아서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끄떡없습니다.
한 가지 문제라면 파이프가 쇳덩이다보니
바닥이 차갑다는 겁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저 안에서 자다가는 동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곳은 한낮에 먹이활동을 나왔을 때만 임시로 사용하고,
한밤중이나 잠을 잘 때는 근처의 슬레이트 지붕 위로 올라갑니다.
슬레이트 지붕 위에 내가 태어난 멋진 둥지가 있죠.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고, 결정적으로 거기엔 엄마가 있습니다.
그래도 하루중 절반 가량은 이곳에서 지내다보니 여기 또한 집이나 다름없죠.
그러고보니 먹고살기 바쁜 길고양이 형편에 1가구 2주택인 셈이네요.
하여튼 이곳에서 저는 슈렉이와 막냉이와 함께 숨바꼭질도 하고
낮잠도 자고, 아저씨도 기다립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지면 발이 시려서 여기 오래 머물 수도 없지만,
그냥 우리 노랑이네 놀이터라고 생각하면 이만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얼른 추운 겨울이 끝나서
이 놀이터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그런 봄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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