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나무 고양이 놀이터
아마도 동물 가운데 가장 놀이를 좋아하는 동물이 있다면,
고양이일 것이다.
집냥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고양이를 위해 기꺼이
캣타워나 고양이 낚싯대, 쥐돌이를 갖다바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어떤 고양이 집사의 말에 따르면,
이사를 갈 때 냉장고 밑과 장롱 밑에서 무려 20개가 넘는
쥐돌이가 나왔다고도 한다.
"아함~ 심심해 슬슬 놀아볼까나!"
따분하게 야옹소리만 내면 장난감이 생기는 집냥이와 달리
길고양이에게는 별다른 놀이기구가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해 거리에 존재하는 모든 지형지물이 놀이기구이고,
거의 모든 나뒹구는 사물이 장난감이라는 얘기다.
"우선 이렇게 발톱 먼저 갈고..."
심지어 길고양이는 버려진 나뭇가지만 있어도
1시간쯤 거뜬하게 놀줄 알고,
어디선가 날아온 비닐봉지 하나만으로 2시간은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다.
특히 길거리의 키 낮은 나무나
가지 많은 나무는 그 자체로 캣타워이자 고양이 낚싯대라 할 수 있다.
"아이 자식...발톱 가는 사이에 새치기하냐?"
우리 동네 노랑이네 새끼들은
주택가 공터의 사철나무를 ‘고양이 놀이터’이자 ‘심신수련장’으로 여긴다.
사철나무의 무수하게 뻗은 가지는 하나하나가 고양이 낚싯대이며,
거기에 달린 숱한 잎들은 멋진 사냥감이고,
밑둥은 훌륭한 스크래처 역할을 한다.
"근데 너 뭐하냐? 무서운 녀석, 나뭇잎을 세고 있잖아!!!" "아니 걍 이빨 좀 쑤시려고..."
노랑이네 아이들은 여기서
사철나무 가지를 잡아당기고 물고 뜯고 낚아채고
긁고 나뭇잎을 따먹는다.
고양이가 딱히 사철나무 나뭇잎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저 몇 번 씹고는 버리기 일쑤인데,
이 또한 일종의 사냥놀이라 할 수 있다.
"입안에 생선가시가 걸렸나..."
혼자서 놀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두세 마리가 어울려 장난을 친다.
고양이 등쌀에 사철나무가 못살겠다 싶다가도
용케 녀석들은 ‘사철나무 놀이터’의 소중함을 아는지
죽지 않을 만큼만 사철나무를 괴롭힌다.
"타닥 탁탁~ 음 탄력 좋고..."
노랑이네 장난꾸러기들이 사철나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만
내 눈에 네댓 번 목격되었으니,
모름지기 녀석들은 내가 보지 않는 동안에도
이 놀이터를 무진장 애용하거나 남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끄억! 너무 놀았다. 길냥이 유치원 갈 시간이네!"
길거리에 사람들이 지나가거나 근처로 사람의 발자국이 다가오면
하던 장난도 딱 멈추고 시치미를 떼는 것이다.
사철나무 옆에 대추나무가 한 그루 서 있지만,
녀석들은 그 나무를 가끔 스크래처로 이용할 뿐,
노는 것은 언제나 이 사철나무로 와서 논다.
"저 녀석 나이 좀 들어보이는데...유치원이래!"
한마디로 녀석들에게는 이 사철나무가 만만하고
잡아당기거나 물고 뜯어도 상처날 염려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 겨울에도 사철나무 혼자서
고양이랑 놀아주느라 고생이 작심하다.
*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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