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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07 이스탄불 처녀의 탑 그리고 고양이 14

이스탄불 처녀의 탑 그리고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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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처녀의 탑 그리고 고양이

 

에미뇌뉘 선착장에서 위스퀴다르행 여객선에 오른다. 이곳에서 위스퀴다르 선착장까지는 겨우 20분 남짓. 배편이 자주 있어서 그런지, 여행 비수기라서 그런지 승객은 별로 없다. 해협을 건너면 곧바로 아시아 구역이다. 위스퀴다르는 아시아 구역의 중심지로 구시가와 신시가를 오가는 길목에 자리해 있다. 아시아 구역에는 베일레르베이 궁전을 비롯해 참르자 언덕, 하이다르파샤 역, 처녀의 탑 등을 볼 수 있는데, 이 중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아무래도 처녀의 탑이다.

 

 

크즈 쿨레시(Kiz kulesi)라 불리는 처녀의 탑에는 이런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어느 날 주술사가 비잔틴 왕에게 예언하기를, 딸이 16세가 되기 전에 뱀에게 물려 죽을 것이라고 했다. 왕은 바다 위에 요새를 짓고 그곳으로 딸을 보내 안전을 도모했다. 시간이 흘러 딸이 16세가 되었을 때 왕은 생일을 축하한다며 과일바구니를 보냈는데, 하필 바구니에 숨어 있던 뱀이 그녀를 물어 죽였다고 한다. 위스퀴다르 선착장에서 남쪽 해안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처녀의 탑에서 가까운 전망 좋은 카페들을 차례로 만날 수 있는데, 모두 탑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바닷가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만일 이곳에 갈 여행자가 있다면 나는 맨 아래쪽 카페를 추천하고 싶다. 젊은 캣대디가 운영하는 카페다. 내가 갔을 때에도 사장과 종업원은 주문받을 생각도 없이 두 마리 고양이(어미고양이와 아기고양이)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 또한 한동안 주문할 생각도 없이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카페는 해안에서 보이는 처녀의 탑 전망도 가장 좋은 곳이다. 처녀의 탑과 바다를 배경으로 고양이를 쓰다듬거나 물끄러미 서로 바라보는 장면은 그야말로 그림과 같았다. 살라미 한 팩을 가져와 장난을 치며 하나씩 나눠주는 장면도 그저 흐뭇했다. 역시 여기서도 살라미가 진리.

 

 

 

결국 청년은 살라미 한 팩으로 실컷 장난을 치며 나눠주고서야 카페로 돌아왔다. 뭐 카페라고 해봐야 두어 평도 안 되는 담배 가게 수준이지만, 바닷가 자리는 수십 명이 한꺼번에 와도 문제가 없었다. 고양이 두 마리가 처녀의 탑을 보며 앉아 있는 낭만적인 카페. 바닷가 계단에 앉아 멋진 고양이를 구경하며 커피를 마시는 기분. 무엇보다 이곳은 구시가처럼 관광지가 아니어서 조용함, 여유,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고양이가 있는 카페에서 바쁠 것도 없이 한참이나 머물렀다. 에미뇌뉘 선착장으로 가는 배를 여러 척 놓쳤지만 상관없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위스퀴다르 선착장 인근에서 밥도 먹고, 인근에 있는 이스켈레(Iskele) 사원도 구경했다. 역시나 사원에는 고양이가 있었고, 사원 앞 벤치에서 나는 참 아름다운 모습을 목격했다. 벤치에 웅크리고 잠든 삼색이 옆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소녀가 물끄러미 잠든 고양이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사원을 벗어나 중심가로 걸어가면서 나는 벤치에 엎드려 잠든 고양이를 이따금 만났다. 아, 여기서는 벤치가 사람만을 위한 의자가 아니었다. 고양이 휴게소 노릇도 함께 하고 있는 거였다. 위스퀴다르의 중심가 도로는 한산했다. 고양이는 한산한 도로를 사람들과 함께 자유롭게 걸어 다녔고, 어떤 고양이는 빵집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새치기를 했다.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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