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절름발이 길고양이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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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절름발이 길고양이의 하루




저쪽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길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옵니다.

주택가 한편의 비탈진 텃밭을 절름절름 건너서

힘겹게 밭가에 두른 목책을 넘어옵니다.

멀리서 보아도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새끼 길고양이입니다.




녀석은 주택가 골목의 도로에 이르러 잠시 머뭇거립니다.

트럭이 한대 덜컹하며 지나가자

뒤로 한발 물러서며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저 어린 길고양이가 자동차에 치여 저렇게 불구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작컨대 왼쪽 앞뒷발을 모두 다친 것으로 보아

지나가는 차에 치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새끼 고양이가 이제 절룩절룩 골목의 도로를 건넙니다.

다리가 다친 고양이에게 이 좁은 도로는 운동장만큼 넓어보입니다.

간신히 도로를 건넌 고양이가 세탁소 앞으로 갑니다.

세탁소 앞에는 오늘도 길고양이를 위해 놓아둔

사료와 물 한그릇이 놓여 있습니다.




세탁소에 도착한 녀석은 계단에 뿌려놓은 사료를 하나 입안에 넣어봅니다.

그러나 곧바로 뱉어내고 맙니다.

아무래도 새끼 고양이는 이도 성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할수없이 녀석은 물그릇에 담긴 물로 배를 채웁니다.




이 녀석을 세탁소 앞에서 만난 건 처음입니다.

원래 이곳은 ‘희봉이’와 ‘깜냥이’가 차지한 영역인데,

두 녀석은 맘씨 좋게도 다친 고양이가 나타나자

뒤로 한발짝 물러서 자리를 양보합니다.

그 보람도 없이 어린 고양이는 물만 몇 모금 마시고는

다시 절뚝절뚝 도로를 건너갑니다.




길고양이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도 다리가 다치고 귀도 다치고 이도 성하지 않은

길고양이로 살아간다는 것이 저리도 힘이 듭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가게에서 200원짜리 소시지 2개를 사서

녀석에게 다가갑니다.





다행히 내 손에 먹을 것이 있다는 걸 보고는

녀석이 오히려 내게 다가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길고양이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경계심도 없이 다가올까요?

소시지 2개를 까서 조금씩 떼어 녀석에게 던져줍니다.

이가 성하지 않은 녀석인지라 그것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보입니다.


 


그래도 소시지 2개를 넙죽넙죽 다 받아먹고

녀석은 텃밭 가장자리 풀밭으로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낮잠이라도 자러 가는 모양입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녀석이 꾸벅꾸벅 조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녀석이 자리를 피하면 따라가면서 괴롭힙니다.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희봉이’와 ‘깜냥이’가 부리나케 달려옵니다.

그리고는 두 마리가 힘을 합해 회색 고양이를 몰아냅니다.

그동안 내가 애써 통조림이며 멸치를 갖다 준 보람이 있습니다.

희봉이는 마치 다친 고양이의 안부라도 확인하는 듯

다가가 얼굴을 살피고 볼도 부빕니다.



그러나 녀석은 이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다시 절뚝절뚝 걸음을 옮겨 텃밭으로 내려갑니다.

몸이 다친 것도 서러운데, 마음까지 다친 모양입니다.

어쩌면 녀석에게는 안전한 곳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릅니다.

안전한 곳이 존재했다면 애당초 다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그러나 무엇보다 녀석이 참기 힘든 일은

아마도 배고픔일 것입니다.

거리나 골목에 설령 먹을것이 있다 해도

그것은 약삭 빠른 길고양이 차지일 뿐입니다.

녀석에게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퀭한 바람과 스산함, 외로움뿐입니다.




저 조그맣고 연약한 새끼 고양이의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저렇게 아프고 지친 몸으로 녀석은 이 힘들고 고단한 세상을 건너갑니다.

날씨가 많이 누그러졌지만, 녀석의 마음은 여전히 겨울입니다.

녀석에게도 봄이라는 게 오긴 오는 걸까요?

봄이 온다고 녀석의 삶이 나아지긴 하는 걸까요?

* 기사에 나온 절름발이 길고양이는 어제(2월 20일) 오후 5시쯤 1시간여의 수색 끝에 극적으로 구조되었으며, 현재 강서구에 사시는 수의사 분께서 치료하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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