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가 고양이식당
개울에서 밥 먹으니 개울식당이다.
고양이가 와서 밥 먹으니 고양이식당이다.
대모네 식구들에게 개울가에 밥을 차려준 지도 벌써 3개월이 되었다.
처음에는 녀석들이 주로 애용하는 은신처인 배수구에서 가까운 곳에
밥상을 차렸더랬다.
개울가 편평한 너럭바위가 식탁이다. 뒤로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귓전에는 졸졸졸 물소리가 들리는 곳.
녀석들은 이곳에서 밥을 먹고, 개울로 내려가 물을 마시고,
너럭바위에 올라앉아 그루밍을 하고, 배수구에 들어가 낮잠도 잤다.
그런데 이 녀석들, 꼭 볼일을 볼 때면
위쪽으로 50미터쯤 올라가 네댓 평이나 될까 말까한 모래밭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볼일을 마치면 거기서 놀다가
아래쪽 배수구보다 두세 배는 큰 배수구로 올라가 휴식을 취하곤 했다.
푸른 잎이 돋아난 개울식당 뒤편의 느티나무(위). 대모네 식구들이 이곳의 단골손님이다(아래).
그곳은 내가 도로벽을 뛰어넘어 사료배달을 오더라도
50여 미터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해서 나는 아예 그곳으로 식당을 옮겨버렸다.
마침 배수구 가까운 곳에는 편평하고 넓은 너럭바위가 있어서
식탁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 너럭바위는 위에 모래 한 알 없이 깨끗한 편이어서 더욱 좋았다.
밥을 먹은 꼬미가 개울로 물 마시러 간다(위). 개울식당 근처 또다른 너럭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꼬미(아래).
나는 그곳에 언제나 수북하게 사료를 부어놓곤 했다.
대모네 식구 네 마리 말고도 개울식당 단골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가만이 녀석이다.
언제부턴가 가만이 녀석은 대모네 식구들과 시간을 달리해
개울식당을 찾곤 했다.
개울식당 근처의 배수구. 배수구 틈새로 꽃다지도 피었다.
어쩌다 식당을 찾는 시간이 겹쳐지게 되면
가만이는 늘 배수구에 들어가 차례를 기다리곤 했다.
너럭바위에서 밥을 먹는 고양이는 보기에도 좋았다.
뒤에는 오래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개울 너머로 희미하게 산자락이 펼쳐졌다.
어차피 이곳도 아래쪽 배수구 주변처럼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성불가침한 사람제한구역이나 다름없었다.
배수구를 내려와 식당으로 걸어가는 꼬미(위)와 이제 막 뛰어내리는 재미(아래).
대모네 식구들이 개울식당을 찾기 시작한 이후로
녀석들의 식사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과거 쫓기듯 다급하게 사료를 먹어치우던 풍경이
이제는 한결 느긋해 보였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메뉴는 늘 한 가지밖에는 내놓지 않는 식당이지만,
녀석들도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 녀석들에게 없던 여유와 낭만까지 선사한 셈이다.
"어서 가자! 식당문이 열렸다."(위). 초창기 문을 연 아래쪽 배수구 식당(아래).
최근 몇 며칠 장맛비 같은 비가 내렸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개울식당이 무사하다.
모내기를 앞둔 논에서 빗물을 가두느라 배수구로 물을 쏟아버리지 않은 탓이다.
개울물도 생각보다는 많이 불지 않았다.
이 또한 상류에서 개울물을 끌어다 이 논 저 논 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개울식당이 날로 번창해 대박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기껏 오픈한 식당이 문이나 닫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모가 식사 후 물을 마시고 있다. 위쪽에서 하천정비 공사를 하느라 흙탕물이다(위). 꼬미, 배수구에서 오래매달리기 연습중인 게냐(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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