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 못날리는 요즘 아이들
어린시절 대나무를 잘게 쪼개 살을 만들고,
창호지용 한지를 붙여 연을 만들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겨울마다 연례행사처럼 만들던 게 연이었다.
칼바람 추위 속에서 바람을 등지고 살살 달리면서 슬슬 줄을 풀어주면
연은 좌우로 꼬리를 흔들며 금세 하늘로 날아올랐다.
연꼬리와 연실에 부딪치는 싱싱한 바람의 소리들!
솟구치는 연을 바라보던 알수없는 동경의 마음들!
하지만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아이들이 연을 날리는 풍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연을 날릴만한 공간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연 날릴 시간이 있으면 게임을 즐기거나 TV를 보는 게 낫다고 여긴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연을 손에 쥐어줘도 날릴 줄을 모른다.
엊그제는 도심의 한 초등학교를 지나다 연을 날리는 아이들을 보았다.
체육시간인지 쉬는 시간인지 몰라도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저마다의 손에 연이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중 누구도 제대로 연을 날리는 아이는 없었다.
다들 연을 들고 요령없이 달리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잠시 솟구쳤던 연도 금세 곤두박질치곤 했다.
아이들은 바람을 등져야 하는 것도 몰랐고,
살살 달리면서 슬슬 줄을 풀어주고 바람에 연을 달래야 하는 것도 몰랐다.
하긴 그런 걸 안다고 무슨 대수일까.
요즘 아이들은 그까짓 연 따위는 못날려도 된다.
공부만 잘하면 되지, 무슨 상관인가.
학원 가야지 연 날릴 시간이 어디 있는가.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쩐지 나는 그런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도 못날리고, 팽이도 못치고, 썰매도 못타고,
꽃이름 나무이름도 모르고, 자연도 모르고, 땅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너무 야박하고 삭막해서
저마다 사막화된 가슴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공연한 염려가 된다.
* 그래야 한다면 그래야 한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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