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밑생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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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밑생활묘




여섯 마리 아기고양이가 커갈수록 어미 여울이의 수심은 깊어만 간다. 갓난냥이 시절만 해도 녀석들은 둥지가 있던 주황대문집 헛간채와 마당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거리의 판잣집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녀석들에게 세상은 엄청나게 넓고 위험한 곳으로 바뀌었다. 한동안 아기고양이들은 판잣집에서 나와 인근의 콩밭에 숨어 노는 것이 중요한 하루의 일과일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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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덥다. 겔겔겔겔... 낮잠이라도 자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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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까지만 해도 아기고양이들은 어미가 가져오는 먹이나 누군가 둥지 앞에 내려놓고 가는 사료에 의존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태어난 지 3개월이 다 되었으니, 어미가 없어도 이제 스스로 먹이활동을 할 나이가 된 것이다. 녀석들도 그것을 아는지 급식소를 찾아가 문 앞에서 냐앙 냥냥 먹이 구애를 한다. 한번은 급식소 옆 공터 차 밑에 앉아 있는 녀석들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아기고양이 중 두어 마리는 어미 없이도 급식소를 찾아가 기웃거리고, 심지어 열린 부엌문 사이로 들락거리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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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언제 나오는 거지? 그래, 묘생은 기다리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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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도 네 마리의 아기고양이는 어미가 움직이지 않는한 먼저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어미가 일어나 급식소로 향해야 녀석들도 어미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거였다.
이래저래 요즘 여울이와 아기고양이들은 급식소 옆 차 밑에 앉아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이건 다시 말해 녀석들이 굳이 판잣집 둥지와 콩밭 은신처가 아니어도 스스로 대피하고 도망칠 능력을 갖췄다는 얘기다. 차 밑에서 여울이네 식구들은 더위도 피하고, 낮잠도 자면서 급식소 문이 열리거나 밥차가 와서 종을 치기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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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그루밍이나 좀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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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그루밍 삼매경에 빠진 녀석도 있다. 가끔씩 오라는 것은 오지 않고, 옆 식당의 커다란 개가 나타나거나 하굣길의 철없는 아이가 돌멩이를 던지고 가지만,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공습경보가 발령되면 재빨리 판잣집 둥지나 콩밭으로 피신하거나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여울이네 아기고양이들은 차밑생활묘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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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다 큰 녀석이 지금 뭐하는 거야. 젖 뗀 지가 언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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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든 좋든 이 차 밑은 길고양이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피신처이며, 기다림의 장소이다. 차주가 나타나 시동을 걸면 다른 차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차 밑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길고양이는 차밑생활묘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고양이가 외국처럼 골목이나 거리의 나무 그늘에서 평화롭게 엎드려 쉬는 생활은 꿈도 꿀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길고양이가 그렇게 호기롭게 앉아 있다면 십중팔구 해코지의 대상이 되고 만다. 결국 만만한 게 차 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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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건 못참아! 엄마 젖이라도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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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기고양이들은 스스로 먹이활동을 나설 만큼 자랐고, 곧 독립을 할 나이가 되었지만, 여울이의 근심은 여전하다. 바야흐로 녀석들은 ‘질풍노도냥’ 시기인 3개월령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녀석들이 점점 통제불능 상태가 된다는 얘기다. 더러 어떤 녀석은 어미 속께나 태우는 반항묘가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울이네 아이들은 덩치만 커졌지, 여전히 아기고양이의 티를 벗지 못했다. 삼색이 한 마리는 어미가 잠시 그루밍을 하며 방심을 한 사이, 가슴을 파고들어 젖을 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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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은 기다리는 거라는데,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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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적인 새끼의 행동에 여울이는 뒤늦게 녀석을 밀쳐내 보지만, 삼색이는 끈질기게 젖울 물고 늘어졌다. 젖 몸살이 도지는지 여울이는 짧게 비명도 질렀다. 결국 여울이는 끝까지 뿌리치지 못하고 새끼가 하는대로 그냥 두었다. 여울이의 그 하얗던 가슴과 배의 털은 여섯 마리 아기고양이들에게 젖을 물리느라 갈색으로 물들었다. 새끼에게 젖을 물린 채 여울이는 그루밍을 하고, 뒤쪽 여기저기에 배를 깔고 엎드린 다른 녀석들은 저마다 편한 자세로 낮잠에 빠져 있다. 누가 뭐래도 지금 여울이네 오후는 평화롭기만 하다. 후끈거리는 바닥의 열기도 한풀 꺾인 늦은 오후였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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