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 전통 수유차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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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전통 수유차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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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피요, 고기요, 생명이다.”

티베트에 내려오는 오랜 속담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티베트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차를 즐겨 마시는 민족이다.

이들에게 차는 생명수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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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물과 야크 버터를 넣어 수유차를 만드는 돔부(대나무 차통).


이들은 하루 수십 잔의 차를 보통으로 마셔댄다.

하지만 티베트인이 마시는 차는

우리가 마시는 맑은 차와는 차이가 있다.

이들이 마시는 차는 주로 찻물에 버터를 첨가한

수유차(Tibetan butter te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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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부에 가락을 꽂아 100번 이상 저어야 수유차가 된다.


티베트 전통 수유차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1. 발효차(덩어리차)를 끓여낸 찻물을 넉넉하게 준비한다.

2. 야크 우유로 만든 버터와 약간의 소금을 함께 준비한다.

3. ‘돔부’라 불리는 차통에 뜨거운 찻물과 야크 버터, 약간의 소금을 넣어 섞는다.

4. 돔부에 가락을 넣어 100여 회 이상 저어준다.

5. 돔부에서 섞이고 우러난 차를 주전자나 보온통에 담아 따라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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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부에서 수유차를 주전자에 따르고 있다.


티베트 전통 수유차는 열량이 매우 높아서

그냥 마시는 보이차에 비해 마시면 몸이 따뜻해질 뿐만 아니라

찻잎에 함유된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하는 효과가 있다.

춥고 건조한 고원지대에 사는 티베트인들에게

딱 맞는 차가 바로 수유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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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맛보는 사람들은 야크 냄새 때문에 고개를 가로젓지만,

먹다 보면 제법 고소하고 중독성 맛이 있다.

이 맛에 길들이고 나면 그냥 맑은 차는 밍밍하고 심심해서 되레 못마신다.

이들은 손님이 와도 언제나 차를 내오는데,

잔을 비우면 곧바로 채워주는 게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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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전통 수유차. 맛은 고소하고 향긋하다.


사실 해발 4000m 안팎의 고원지대에서

야크 고기와 유제품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티베트인들에게

소화를 돕고, 장내의 기름기를 제거하며, 체액의 분비를 촉진하는

수유차는 더없이 훌륭한 음료라 할 수 있다.

특별히 티베트에서만 수유차가 대중화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들에게 차는 물과 불처럼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생활필수품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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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아침 무렵 수유차와 곁들여 먹는 티베트 전통 빵 빠바.


수유차와 비슷하게 만드는 창아모차도 티베트 전통 차라 할 수 있다.

창아모차는 야크 버터가 아니라 야크 우유에다 발효 덩어리차를 섞은 차를 말하는데,

찻물에 야크 버터를 저어서 만드는 수유차와 맛은 비슷하다.

티베트에는 야크 버터로만 만드는 뵈차라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이차를 섞어서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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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차를 만들 때 없어서는 안될 야크 버터.


사실 차마고도의 역사는 차의 역사와 함께 한다.

중국의 문헌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3000여 년 전인

기원전 1700년대(商周시대)부터 윈난 지역에서 차를 재배해 마셨다고 한다.

그러나 문헌이라는 것은 객관적 증거일 뿐,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차가 재배되고 거래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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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에서 운반된 보이차 덩어리. 수유차의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보이차의 역사와 차문화의 뿌리를

중국의 역사이자 자부심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나 오랜 옛날 차를 재배하고 교역하던 윈난의 남부 지역은

중국에 속해 있지도 않았으며,

차를 재배하고 유통시켰던 당사자도

다이족이나 하니족과 같은 소수민족이었다.

물론 뒤늦게 중국이 이들의 거주지역을 차지해

중국의 땅으로 편입시켰으니,

소수민족의 차문화를 중국의 문화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이 동양문화의 정수라고 부르며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차문화의 뿌리가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에 있었던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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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가정의 평범한 부엌 풍경. 수유차 주전자와 보온병이 항상 놓여 있다.


과거 윈난의 시샹반나와 푸얼에서 생산된 보이차는

쿤밍과 청두(成都)를 거쳐 베이징까지 운송되었고,

따리와 리장, 중띠엔을 지나 티베트는 물론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과 인도까지 거래되었다.

이 끝없이 펼쳐진 높고도 험한 차의 길이 바로 ‘차마고도’다.

그러나 차마고도는 단순한 무역로에 그치지 않았다.

차를 운반하고 물물을 교환하면서

이민족의 문화와 종교는 조금씩 옮겨지고 뒤섞이고 어우러지게 되었으니,

그것은 무역로이면서 문명통로였고,

가혹한 말(馬)의 길이자 힘겨운 삶의 길이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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