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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지존 광천 토굴 새우젓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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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지존 광천 토굴 새우젓비밀
- 40여 개 토굴에서 익어가는 살큰짭짤 새우젓



광천장(4, 9일장)날이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한달 여쯤 앞둔 때인지라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장은 일찌감치 김장 준비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짭짤하고 살큰한 새우젓 삭는 냄새가 시장에 가득하다. 새우젓 냄새를 따라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제 저마다 새우젓을 내놓고 파는 가게가 줄지어 펼쳐진다. 오젓, 육젓, 추젓뿐만 아니라 어리굴젓, 꼴뚜기젓, 멸치젓, 창란젓, 황새기젓, 밴댕이젓까지 젓이란 젓은 다 모여서 살큰하게 사람들의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그런데 광천장에서 파는 새우젓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 귀에 생소한 토굴 새우젓이다. 토굴 새우젓이란 말 그대로 토굴 속에서 숙성시킨 새우젓을 가리킨다. 토굴젓은 그 맛과 향이 좋아 다른 새우젓보다 훨씬 값이 비싼 편이다. 하지만 광천이라 해도 아무데서나 토굴 새우젓을 내는 것은 아니다. 옹암리 독배마을에서만 토굴 새우젓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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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 옹암리 독배마을에서 볼 수 있는 '광천 토굴 새우젓'을 보관하는 토굴. 독배마을에는 이런 토굴이 40여 개 정도 된다.

이야기들 듣고 찾아간 독배마을은 그야말로 새우젓을 삭히는 토굴 천지였다. “이런 토굴이 몇 개나 됩니까?”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독배마을에는 무려 40여 개의 토굴이 있다고 한다. 드럼통으로 따지면, 약 1만 5천여 개의 드럼통을 저장할 수 있는 숫자란다. 대체로 이 곳의 토굴은 하나의 길이가 100~200미터쯤, 높이가 2미터쯤, 너비는 3미터 정도이다. 마을에서 만난 박기자 씨는 친절하게 40년이 넘었다는 토굴로 나를 안내했다. 이 굴은 독배마을에서 최초로 토굴 새우젓을 낸 곳이란다. 토굴로 들어서자 짠내와 쿰한 냄새가 진동했다. 굴은 생각보다 길어서 입구부터 끝까지 가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리고 굴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여러 개의 지굴로 이어졌으며, 지굴마다 새우젓을 숙성시키는 플라스틱 통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이 곳이 바로 새우젓 가운데 으뜸의 맛을 자랑하는 토굴 새우젓의 산실인 것이다.

연중 온도변화 없는 토굴, 변질 없는 새우젓

“여기 토굴의 온도가 13~17도 정도예요. 연중 온도의 변화가 없죠. 토굴에서 50일 정도만 숙성시키면 팔 수 있을 정도가 되요. 토굴 안에서 길게는 6개월에서 1년을 둬도 맛이 그대로유지됩니다. 여기 토굴이 모두 40여 개 되는데, 토굴 하나를 가지고 두 집이 쓰는데도 있어요.” 박기자 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한번 맛을 보라며, 토굴 새우젓 가운데서도 맛이 가장 좋다는 육젓통을 열어보였다. 살이 튼실하게 오른 육젓을 손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넣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밥 생각이 절로 났다. 처음에는 짠맛이 강하지만, 입안에서 향긋한 젓냄새가 오래오래 혀 끝에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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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 토굴 새우젓은 변질이 없고, 저장성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토굴 새우젓은 일단 변질이 없고, 김장을 해 놓으면 맛이 확 달라요. 김장을 해서 1년 내내 냉장고에 둬도 그대로일 정도로 저장성도 뛰어나요. 이건 일체 조미료 넣지 않고, 물도 넣지 않고 오로지 토굴 안에서 자연숙성해서 파는 거예요.” 사실 젓갈의 맛은 숙성이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 숙성이란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하는데, 독배마을의 토굴은 바로 이런 최상의 조건을 다 갖추도 있다. 물론 신선도가 중요한 젓갈용 새우 재료를 가져오는 것 또한 바닷가가 지척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젓갈은 김치와 더불어 대표적인 우리네 발효식품으로 꼽힌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사랑받아온 젓갈이 새우젓이다. 새우젓은 그냥 고춧가루에 깨소금을 무쳐서 반찬으로 내놓기도 하지만, 김치를 담글 때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재료로 널리 쓰였다. 또한 돼지고기를 먹을 때도 탈을 없애 준다 하여 빠지지 않았던 것이 새우젓이다. 새우젓은 크게 오젓, 육젓, 추젓으로 나뉘는데, 오젓은 5월에, 육젓은 6월에, 추젓은 가을에 잡아 그렇게 불린다. 보통 새우젓 가운데는 육젓을 으뜸으로 치는데, 이는 산란기인 6월에 새우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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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신선도, 숙성시 토굴에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명품 새우젓의 명성을 얻은 광천 토굴 새우젓.

옛 옹암포의 맥을 이어가는 독배마을

그 밖에도 늦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속이 투명한 자하로 담은 젓을 자하젓, 초봄에 작은 보리새우로 담은 세하젓, 겨울에 잡아 담는 동백젓이 있다. 보통 육젓은 반찬용으로 많이 쓰이며, 김장용으로 많이 쓰이는 것은 가을에 나는 추젓이다. 새우는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으며, 비타민과 무기질이 들어 있어 더없이 좋은 김장 양념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오젓과 육젓을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거니와 같은 추젓이라 해도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좋은 새우젓을 고르는 방법은 전체적으로 약간 붉은색을 띠어야 하고, 새우의 껍질이 얇으며, 속살이 통통해 입에서 씹히는 맛이 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 냄새를 맡아 보았을 때 특유의 새우젓향이 강해야 좋은 것이며, 검은색이 돌거나 약간이라도 부패한 냄새가 나면 너무 오래된 것이다.

흔히 예부터 서산하면 어리굴젓이요, 광천하면 새우젓이었다. 한창 광천의 새우젓이 날개 돋힌 듯 팔리던 70년대 초만 해도 독배마을의 옹암포에는 하루 100여 척의 새우젓 어선이 들고 날 정도였지만, 개발의 피해를 비켜갈 수는 없었다. 간척사업으로 해안이 개발되고 포장도로가 생겨나면서 옹암포는 더 이상 새우젓 포구는커녕 배도 댈 수 없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독배마을 사람들은 앉아서 새우젓 포구를 잃었다. 그러나 새우젓의 명성까지 내던질 수는 없었다. 60년대 마을에서 처음으로 생겨난 새우젓 토굴이 이제 그 명성을 물려받게 된 것이다. 하나였던 토굴이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네 개가 되고, 다시 열 개, 스무 개로 독배마을은 토굴 천지로 변해갔다. 한마디로 토굴은 옛 옹암포의 명성을 이으려는 독배마을 사람들의 슬기로움과 부지런함의 산물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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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 새우젓 시장 풍경. 한때 이곳은 국내 새우젓 유통량의 70% 이상을 담당하기도 했다.

독배마을이 있어 광천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으뜸 새우젓 시장으로 통하고 있다. 특히 김장철이 가까워오면 광천장은 새우젓을 사려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맛보는 것은 공짜요, 한 ‘젓칼’(젓을 뜨는 도구)쯤 덤은 기본이다. 한때 우리나라 새우젓 유통량의 70퍼센트 이상을 냈다는 광천장. 분명 예전보다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번 광천 새우젓맛을 보고 간 사람이면 꼭 다시 광천을 찾는다. 그것도 독배마을의 토굴 새우젓을 한번 맛보고 나면 다른 새우젓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하니, 그 맛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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