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여인숙>_어느 섬 여행자의 표류기
4년이란 세월을 나뭇잎처럼 나는 표류했다.
부표도 없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어떤 상처가 나를 흠집냈거나 역마살이 나를 내쫓은 것도 아닌데, 나는 이 바다 너머까지 흘러와 홀로 망망하다. 혼자서 배를 기다리고, 배를 타고, 배에서 내려 섬으로 왔다.
떠나온 곳은 아득했고, 갈 곳은 까마득했다. 더러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 막막했다. 그럴 땐 지구의 끝자락 같은 바다 어귀에 앉아 홀로 파도소리를 들었다. 처얼썩 철썩거리는 규칙적인 지구의 리듬. 지구의 음악. 섬에서는 뭍과 다른 섬만의 시간이 떠다녔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는 남들이 마다하는 오지나 두메를 무던히도 떠돌아다녔다. 방랑자로 살아온 것도 어언 1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런 나에게 섬은 궁극의 여행지였다. 오래 떠돈 여행자가 마지막으로 찾는 곳. 그러나 죽을 때까지 떠돌아도 다 가지 못하는 곳이 섬이리라.
그곳에는 뭍에서 진즉에 갖다버린 순결한 가치와 느림의 미학이 존재하고, 뭍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원초적 풍경이 남아 있다. 섬에 떨어진 이상, 그곳의 불편과 단절을 즐길 필요가 있다.
바다가 읽어주는 섬은 내내 아름답고 눈물겨웠다. 그것은 더러 나를 동심의 세계로 밀어넣었고, ‘오래된 미래’로 이끌었다. 오직 섬의 바람과 구름과 파도와 비릿한 시간만이 나의 섬 여행을 부추겼다. 나는 다만 섬이 보여주는 풍경 속을 타박타박 걸었다.
어떤 날의 사랑은 일찍이 썰물이 되었지만, 어느 날의 이별은 뒤늦게 노을이 되었다.
* 책에 수록된 34개 섬
청산도, 조도, 관매도, 욕지도, 사량도, 거문도, 사도, 금일도, 석모도, 볼음도, 가거도, 하태도, 만재도, 홍도, 외연도, 어청도, 여서도, 두미도, 위도, 연평도, 증도, 임자도, 흑산도, 도초도, 보길도, 낙월도, 송이도, 교동도, 추자도, 횡간도, 우도, 마라도, 울릉도, 독도.
*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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