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고양이
휘유우, 사는 게 힘들어!
오늘 하루도 힘들게 살았습니다.
휘유우, 저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아직은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살고 있지만,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팍팍하기만 합니다.
길에서 나서 길에서 죽는 것, 그게 어쩔 수 없는 길냥이의 운명이지.
언젠가 엄마 냥이는 말했었죠.
묘생은 고해야, 라고.
오해가 아니라 고해!
너도 독립을 해서 너의 영역을 지키며 살다 보면 알게 된다고.
고개를 들면 아픈 현실이 보여. 그래서 가끔 이렇게 고개를 묻고 있지.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4개월쯤 묘생을 살아보니,
이제 그 말뜻을 알 것도 같습니다.
아마 길냥이가 아닌 집냥이들은 이 말뜻이 뭔지 모를 게 분명합니다.
길냥이는 길냥이로서의 삶이 있는 거야. 그 길을 가야 하는 거고.
길 위의 묘생.
길에서 나서 길에서 죽는 것, 그게 길냥이의 운명이고 비극이죠.
그렇다고 우리가 집냥이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편하게 사는 것보다 자유롭게 사는 것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입니다.
시궁창에서 물을 마시고, 쓰레기 봉투를 뒤져 배를 채울지언정
인간에게 길들여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태어난 지 한달 되었을 때, 처음 나는 배가 고파서 둥지를 벗어나 큰 골목으로 나섰지.
지금보다 더 어려서, 그러니까 내가 걸음마였을 때
그 때는 엄마가 먹을 것도 주고, 잠도 재워주고 했지만,
그것은 한달만에 끝이 났습니다.
너희는 이제 독립할 때가 되었단다.
이 말을 남기고 엄마는 둥지를 떠났습니다.
인간의 골목에는 위험한 것이 많아서 이렇게 차 밑에 숨어 있어야 해.
그 때부터 나는 스스로 먹이를 찾아다녀야 했죠.
사람들을 피해 골목길에 주차된 차 밑에 숨어 있어야 했고,
툭하면 동네에 돌아다니는 다섯 마리의 들개떼를 피해
참호 같은 둥지에 숨어 있어야 했습니다.
물론 배고플 땐 눈밭을 걸어서라도 먹이를 찾아다녀야 하지.
어떤 날은 눈밭을 걸어 먹이 동냥을 다녀야 했고,
어떤 날은 비를 쫄딱 맞고서야 둥지로 돌아왔습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한껏 웅크리고 잠을 잔 지도 어언 4개월이 되어갑니다.
하루종일 쓰레기 봉투를 뒤져도 헛수고일 때가 많아.
다행히 이따금 먹이를 주는 세탁소가 있고,
사진 찍는 아저씨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결코 풍족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쓰레기 봉투를 기웃거리며 사는 게 싫습니다.
하지만 그래야 하는 게 길냥이의 현실입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느니, 이렇게 불량 고양이에게 얻어터지는 게 더 낫지.
가끔은 동네의 불량 고양이에게 시달리기도 합니다.
괴롭힘도 당하고, 얻어터지기도 하죠.
그러나 가장 무서운 건 불량 고양이도, 들개떼도, 배고픔도 아닙니다.
바로 사람들입니다.
내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어. 이것도 인간이 만든 벽일 뿐이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둑 고양이라고도 하고, 미친 고양이라고도 합니다.
뭐, 가끔은 낭만 고양이라고 추켜세울 때도 있긴 하지만,
세상에서 믿을 건 길냥이 동료밖에 없습니다.
아무데도 길냥이가 기댈 곳은 없습니다.
아, 이제 봄이다... 근데 왜 이렇게 마음이 퀭한 걸까.
춥고 배고프고 외롭고 쓸쓸합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길냥이로 산다는 게 이렇게도 힘이 듭니다.
몇몇의 우호적인 손길은 언제나 다수의 적대적인 손길에 묻혀버립니다.
세상에는 봄이 와서 따뜻한 바람이 부는데,
나는 왜 가슴이 이렇게 싸늘하기만 한 걸까요.
'토닥토닥' 괜찮아, 깜냥아! 네 옆엔 언제나 내가 있잖아...걱정하지마!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내 옆에 형제가 있다는 겁니다.
나와 함께 먹이를 구하러 다니고,
나와 함께 잠도 자고, 아플 땐 위로도 해주고,
오늘은 이렇게 옆에서 내 머리를 토닥토닥, 해주는 형제가 있어
오늘 하루치의 고통을 견뎌냅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았습니다.
그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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