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던 아기냥 로드킬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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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던 아기냥 로드킬당하다


달포전 집앞에서 희미하게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차 밑을 들여다보니 이제 겨우 젖을 떼고 먹이 동냥을 나온 듯한
기껏해야 달포쯤 세상 구경했을 법한 아기 길고양이였다.
늦은 밤이었고,
녀석은 배가 고픈지 힘없이 모기소리만하게 울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챙겨나와
녀석이 있는 차 밑으로 그것을 밀어넣었다.
하지만 녀석은 겁에 질렸는지 다른 차 밑으로 도망가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자리를 피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한참 뒤 차 밑을 들여다보니 말끔하게 다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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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길고양이 꼭잡이. 약 한달 전의 모습.

그렇게 녀석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다음날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이번에도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젯밤 보았던 그 녀석이었다.
그날 이후 녀석은 매일같이 우리 집앞을 찾아왔고,
나는 그런 녀석에게 먹이를 주며 보살펴왔다.
녀석에게 나는 ‘꼭잡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는데,
‘꼭 잡아’ 집에서 키우고 싶다는 옆집 아이의 소망을 담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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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에서 내게로 다가오는 꼭잡이. 꼬리를 바짝 세우고 경계하는 모습이다.

녀석을 만난 지 거의 열흘 정도 지났을 때다.
한번은 집앞에서 동네가 떠나갈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이 놈의 고양이 새끼들...누가 또 먹이 줬어~!”
우리 동네 청소부 아줌마였다.
아줌마는 장대 빗자루로 차 밑에 있던 고양이를 쫓아내며
들으라는듯 “어떤 새끼가 그랬어?” 하며 큰소리를 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집앞의 고양이까지 빗자루로 내쫓는 건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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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밑에 앉아 있는 꼭잡이.

어쨌든 그날 아침 꼭잡이도 그 차 밑에 있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이후 거의 일주일 넘게 집앞을 찾지 않았다.
아기 길고양이로써 처음으로 당하는 봉변에 적지않게 놀란 게 분명하다.
녀석이 다시 집앞을 찾아온 건 그 사건이 있은 지 거의 열흘 만이었다.
녀석은 배가 등에 붙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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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밑을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오고 있다.

나는 녀석에게 먹이와 함께 물도 챙겨서 차 밑에 넣어주었다.
녀석은 허겁지겁 먹이를 다 먹고 물도 마셨다.
그리고 다시 꼭잡이는 매일같이 집앞을 찾아왔다.
2주일 전부터는 차 밖으로까지 나와 앉아 있을 정도로
경계심도 많이 없어진 상태였다.
집앞에 오는 깜냥이나 외출이, 점냥이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넉살좋게 먼저 녀석들에게 다가가
이마를 부비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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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먹고 나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있다.

그렇게 한달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오늘 아침이었다.
밖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가 죽었어!”
예감이 좋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보니 동네 삼거리 쯤 길 한복판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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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이와 사이좋게 앉아 있던 꼭잡이가 내가 나타나자 차 밑으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로드킬당한 고양이였다.
아, 아니기를 바랐지만, 다가가서 보니 꼭잡이 녀석이었다.
새벽쯤 차에 치인 것으로 보인다.
현장은 참혹했다.
차에 부딪친 것이 아니라 바퀴에 깔려 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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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심을 유지한 채 차 밖으로 조심스럽게 걸어나오는 모습.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외출이와 깜냥이가 로드킬당한 꼭잡이 주변을 왔다갔다 하면서
평소와는 다른 울음을 울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꼭잡이를 저 세상으로 보내는 마지막 장례의식처럼 보였다.
그랬다. 녀석들은 그들만의 장례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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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밑을 나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잠시 후 꼭잡이의 주검은 청소부 아저씨의 손에 치워졌다.
몇 달 전 희봉이와 깜냥이의 어미냥이기도 했고,
주황색 아기냥을 낳았던 ‘랑이’도 동네 골목에서 로드킬당했다.
고속도로나 자동차 전용도로 등에서 길고양이는 수도 없이 로드킬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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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부터 녀석은 나와 눈도 맞추고, 경계심도 풀기 시작했다.

동네 골목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다음 카페에서 나는 이런 충격적인 댓글을 발견한 적도 있다.
“고양이는 재수없다. 운전할 때 고양이가 보이면 그냥 깔아뭉갠다.”
아마도 그는 자식에게는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인자한 아빠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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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을 부르면 돌아보면서 빤히 쳐다보기도.

야생동물 로드킬을 다룬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이다.
이기적인 인간의 도로는 대부분 야생동물의 영역 위에 건설된 것이다.
그런데도 늘 인간은 자신들만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속도를 늦춰야 하는 것은 인간이고, 자동차이지 동물은 아니다.
동물은 언제나 자신만의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늘 인간에게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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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잡이가 저쪽에서 도로를 건너오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도둑고양이는 재수없고, 비위생적이며 시끄럽다고.
그러나 고양이보다 더 재수없는 인간도 많다.
이를테면 정치하는 인간들, 사기치는 인간들, 유괴하는 인간들, 오폐수 흘려보내는 인간들....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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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골목의 도로는 길고양이에게 언제나 로드킬의 가능성이 있는 위험구간이다. 

이 세상을 가장 비위생적으로, 환경을 망친 장본인도 인간이며,
지구에서 가장 시끄러운 소음을 내는 집단도 인간이다.
사실 인간은 지구상의 어떤 생명에게도 뭐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이제껏 지구를 이 따위로 망쳐논 장본인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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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간의 생을 마감한 채 로드킬당한 꼭잡이의 주검. 외출이와 깜냥이도 녀석을 조문하느라 주변을 빙빙 돌며 울었다.

어쨌든 꼭잡이는 인간에 의해 로드킬당했다.
녀석은 태어나서 이제껏 기껏해야 3개월쯤 세상 구경을 했다.
그 세상이 아름다웠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길 위의 삶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아기 길고양이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인간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기를....
 녀석에게 이번 세상은 너무 가혹했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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