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발도장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나면
우묵한 밭고랑마다 그득하게 물이 고인다.
이 고랑물은 시골고양이들에게 유용한 식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날이 맑아 왼종일 뙤약볕이 내리쬐면
밭고랑의 물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이제 고랑에 남은 건 흙탕물의 흔적과
선명하게 남은 이것 뿐이다.
바로 고양이 발자국.
마치 발도장을 찍어놓은 듯 선명하다.
작고 앙증맞은 아기고양이 발도장 사이로
간간이 좀더 큰 어미고양이 발자국이 섞여 있다.
아주 가끔 어미고양이 발자국의 두 배가 넘는 고양이 발자국도 있는데,
왕초고양이 발자국으로 보인다.
물이 빠진 밭고랑마다 고양이의 흔적은 이토록 선명하다.
그동안 나에게로 왔던 고양이들도
발도장만큼이나 선명하게 마음에 남아 있다.
* 길고양이 보고서::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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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10.08.15 22:19
고양이 발도장이라는 오늘의 글이 유독 마음에 와닿는 날입니다. 아마도 어젯밤에 제가 돌보던 아가냥(마리오 2세로 이름을 지었어요)이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녀석은 제가 사는 골목에 사는 총명이가 첫 출산을 해서 나은 삼형제 중에 서열 순위로 해서 둘째인 남자아이입니다. 첫애는 로드킬을 당하고 제가 이 녀석을 지난주에 집에 데려오기 직전에 막둥이 노랑이 여자아이가 죽은 듯합니다. 장염으로요. 그리고 좀 전에 마리오도 그 장염으로 어젯밤에 숨을 거뒀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있었는데, 파보바이러스도 나중에 잠복기를 거치고 나타났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자식 둘이 장염으로 세상을 뜬 줄 알아서인지 또 출산을 앞둔 총명이가 제가 사는 이 골목을 떠난 듯합니다. 떠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파보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는 이 골목은 정말 죽음의 장소이니까요. 제 생각에 저도 한 몇 년간은 개나 고양이를 키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 집에도 파보 바이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가 살고 있을 테니까요.
건강했을 때는 사내녀석이라고 여동생을 지키면서 제가 주던 밥도 안 먹고 어른 고양이과 영역싸움을 하거나 위협을 하던 용감한 녀석이었는데요, 마리오는 몸이 아프고 제가 집에 데려와서 돌보니 정말 귀염둥이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제가 옆에서 잠들 때 제게 와서 부비부비를 하던 녀석을 잊을 수가 없네요. 여하튼.. 일주일 동안 함께 한 마리오가 고양이별에서 형과 여동생과 행복하게 지내면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죽고 떠나고 나니 좀 더 잘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도 많이 되고요.
그리고 고양이들에게 급식할 때 위생문제를 철저히 해야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길에서 살아나가는 길고양이들이 참 대견합니다. 사람, 개, 굶주림, 자동차, 추위, 더위, 목마름, 세균 등이 둘러싼 무서운 곳에서도 길냥이의 묘생을 꿋꿋이 이어나가는 게 참 대단하고요.
제 마음에도 고양이 발자국이 선명히 남는 하루입니다.
여러분들 고양이들도 전염병 주의하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