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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04 부산 자갈치 시장 고양이들 (13)

부산 자갈치 시장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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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시장의 통 큰 인심

 

 

자갈치 시장의 통 큰 인심. 누군가 고양이만한 생선을 고양이에게 던져주었다.

 

자갈치 시장 입구에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다. 수레에 목줄을 매어놓은 노랑이 한 마리. 시장 사람들은 무심하게 고양이를 지나치고, 고양이는 심심하게 수레 그늘에 들어가 낮잠을 잔다. 수레 앞에 쪼그려 앉아 내가 아는 척을 하자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수레 그늘을 빠져나와 내 앞에 선다. 아구처럼 하품도 하고, 가오리처럼 기지개도 켠다. 짧은 탐색의 시간이 끝나자 녀석은 스스럼없이 내 가랑이 사이를 파고들며 몸을 부벼대기 시작한다. 목덜미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나한테 몸을 맡긴다. 뒤집뒤집 발라당도 한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듯 녀석은 ‘수줍은 아가씨’ 자세도 취한다.

 

 

 

이 녀석 시장에서 잔뼈가 굵어서인지, 사람 대하는 게 보통이 아니다. 사람을 밀고 당기는 재주가 ‘고수’에 이르렀다. 그러니 녀석의 꼬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성의 있는 유혹에는 넘어가주는 게 예의다. 바닥에 생선궤짝을 동여매던 끈이 있어서 고양이 낚싯대처럼 살살 흔들어주니, 이 녀석 물 만난 고기처럼 잘도 논다. 그 커다란 덩치로 풀쩍, 점프까지 한다. 저만치서 구경만 하던 생선장수 아저씨는 나보고 한마디 한다. “새끼 때만 잘 노는 줄 알았더니 나이가 들어도 잘 노네.” 하면서 생선을 뒤적거린다.

 

 

가만 보니 이 녀석 자갈치 고양이답지 않게 꼬박꼬박 사료를 급식 받고 있었다. 생선대신 고양이 캔이 간식이었다. 자갈치 시장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목적은 한가지다. 어물전을 탐하는 쥐를 쫓기 위한 것이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이다. 특별히 녀석은 쥐를 잡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고양이가 있는 것만으로 쥐는 이곳에 얼씬도 하지 못한다. 나는 한참이나 녀석과 끈 하나로 놀아주었다. 생각해보면 녀석이 도리어 심심해하는 나와 놀아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자갈치시장에는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꽤 많은 편이다. 자갈치 시장과 충무시장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가면 과일가게가 있는데, 거기에는 어여쁜 삼색이가 창고의 건어물과 좌판의 과일을 지키며 산다. 두어 집 건너 위쪽의 쌀집에도 노랑이 한 마리를 키운다. 지난겨울 이곳에 들렀을 때 쌀집 고양이는 주인 할머니가 덮고 있는 담요 속에서 꼬리만 내놓고 자고 있었다. 이불에 덮인 채로 녀석을 주무르자 녀석은 귀찮은 듯 기어 나왔다. 활어센터 앞 횟집에도 고양이(고등어) 한 마리가 있는데, 녀석은 횟집 아주머니를 귀찮을 정도로 졸졸 따라다녔다.

 

 

낯선 사람이 근처에라도 가면 녀석은 아주머니의 발 뒤에 숨곤 했다. 낯선 사람은 무서워해도 아주머니는 어찌나 잘 따르는지 연신 얼굴을 들이밀고, 장화에 볼을 부비고, 어깨를 아주머니 품에 기대는 것이었다. 자갈치 시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양이는 소금장수 할머니가 밥을 주던 두 마리의 고양이다. 두 마리 다 검은 고양이. 할머니에게 고양이 이름을 묻자, ‘깜장이’라고 했다. “두 마리 다 깜장이에요?” “응, 둘 다 깜장이!” 할머니는 자갈치에서 어렵게 소금과 생선을 팔며 살지만, 고양이에게 기꺼이 밥을 주고 있었다. 그래봐야 팔다 남은 생선이지만, 녀석들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이 두 녀석은 할머니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고양이다. 어느 봄인가, 바다로 나가는 길목의 쓰레기장에 웬 까만 게 보이더란다. 거기 검은색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버려져 있더라는 것이다. 할머니는 가여워서 죽어가는 새끼들을 데리고 와 밥을 주기 시작했다. 결국 할머니는 자신이 소금을 파는 좌판 수레 아래 녀석들이 머물 보금자리를 마련해줬고, 녀석들은 이곳을 집 삼아 이제까지 살아오고 있는 거였다. 때마침 내가 갔을 때, 두 녀석 중 한 녀석이 좌판 앞에 앉아서 커다란 생선을 뜯어먹고 있었다. 누군가 통 큰 인심으로 고양이만한 생선을 녀석에게 던져준 것이었다.

 

 

내가 잠시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녀석의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근처에 있던 생선장수들이 십시일반 한 마리씩 녀석에게 생선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그러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자, 어차피 들어갈 시간이라 떨이로 남은 거라며 고양이에게 인심을 썼다. 고양이 앞에 점점 쌓여가는 생선. ‘뭉클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으로 올라왔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풍경, 내가 보고 싶었던 모습이 이런 거였다. 없이 살아도, 더 없는 사람들, 더 불쌍한 동물들에게 기꺼이 나누어주는 아름다운 풍경. 나도 가방에 숨겨두었던 고양이 간식을 몇 개 꺼내 할머니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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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리고 가끔 고양이

Trackback 0 And Comment 13
  1. Favicon of https://memo1234memo.tistory.com BlogIcon 오렌지수박 2013.10.04 09:2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제목만 보고 생선 시장에서 고양이를 키운다니 조금 신기했는데 할머니와 소박한 정을 나누는 고양이들을 보니 왠지 가슴이 푸근해지는 느낌입니다.

  2. Favicon of https://seattlemom.tistory.com BlogIcon The 노라 2013.10.05 13:24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따뜻한 포스팅이네요.
    자갈치 시장 고양이는 사랑도 많이 받고 먹을 것도 많이 얻고 행복하겠어요. ^^

  3. 페리네 2013.10.06 01:21 address edit & del reply

    따뜻하고 아름다운 글과 사진을
    함께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4. 길냥 2013.10.08 17:41 address edit & del reply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가서 저 엄니들 생선 많이 사오고 싶은데....
    분당서 부산까지 갈일이 없네...

    불러주는 사람도 읍고...

    • 어느날 부산 나들이 하실 날이 올거에요... 2014.03.02 21:15 address edit & del

      저도 서울에 살 때,
      고속도로를 바라보면서
      내가 여기서 가장 먼 부산을 갈 날이 있겠나...싶었는데,
      지금 여기서 살고 있어요. 30년이 넘게...

  5. 달타냥 2013.10.10 09:59 address edit & del reply

    제가 밥주는 동네네요..봐놨다가 티앤알하러 가야겠어요 ㅎㅎ

  6. 이경민 2013.10.12 20:33 address edit & del reply

    좋은 글과 사진이 힐링을 주내요 언제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세요

  7. Favicon of https://lincat.tistory.com BlogIcon 적묘 2013.10.16 01:19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아... 3년만에 보는 자갈치네요,
    내년 쯤에 시간내서 찬찬히 걸어볼 수 있겠지요.
    내후년쯤이려나요....

    부산 바다가 그리워집니다.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8. 새벽이언니 2013.10.24 17:52 address edit & del reply

    첫사진 생선 크기보고 사무실인데 입밖으로 헉! 해버렸습니다;;
    맛난거 애껴 먹어야지 하면서 침바르고 있는 녀석이 귀엽네요 ㅋ

  9. ㅎㅎ 2013.11.03 15:41 address edit & del reply

    진짜 큰 생선이네요 와~ ㅎㅎㅎㅎ 저도 저번에 여수갔을때 포장마차에서 밥을 먹으려고 갔는데 바닥에 장어가 떨어져있는거에요 . 주인아주머니께 장어떨어졌다고 말해줬는데 고양이 먹이라면서 땅에 놔두면 알아서 물고간다고 그러더라구요 ㅎㅎ마음도 따뜻해지고 맛있는 음식에 배도 따뜻해지고 ㅎㅎ 좋았어요

  10. BB 2014.01.10 04:07 address edit & del reply

    아앗~~!! 두번째 세번째사진의 아이 제가 아는 아이라서 반가웠어요!!사람도 잘 따르고 만질수도 있는 앤데 같이 놀다보면 손등에 발톱 자국이...ㅋㅋㅋ
    새벽시장쪽 냥이들도 이쁜이들 많답니다~

  11. Favicon of http://ㅁ BlogIcon 2014.03.19 08:48 address edit & del reply

    ㅠㅠ

  12. BlogIcon 찡코쥬맘 2016.01.09 15:44 address edit & del reply

    이런기사좋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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