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무덤에 민들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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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무덤에 민들레꽃




어제 길고양이 바람이가 고양이별로 돌아가고 난 뒤,
오후 쯤 감자칩 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퇴근 후 바람이 데려갈게요. 다니던 곳에 묻어주세요.”

밤중이 다 되어 바람이가 도착했습니다.
감차칩 님과 함께 천랑 님, 호두마루 님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서울에서 이 먼곳까지 바람이를 데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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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칩 님이 이 먼곳까지 손수 데리고 온 바람이.

바람이가 담긴 상자를 일단 테라스에 올려두고 나서
해드릴 것이 없어 국수 한 그릇씩 사드렸습니다.
사실 어제 점심 무렵에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람이도 없는데, 테라스 거실 입구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놓여져 있었던 겁니다.
새끼 딱새였습니다.
하늘을 날던 새가 정확하게 이곳에 떨어질 리도 없고.
바람이를 구조해서 병원에 보낸 뒤에도
테라스 아래엔 변함없이 사료그릇을 놓아두었는데,
아침에 보면 꼭 고양이 한 마리가 먹었을 분량 정도가 없어지곤 했습니다.
추정하건대, 밤중에 가끔 마주치는 고등어무늬 중고양이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얼마 전 감자칩 님이 ‘바람이는 왕초고양이인데, 2세는 없어요?’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아마도 그 중고양이가 바람이의 2세가 아닌가 추정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녀석이 바람이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고양이였거든요.
결론적으로 말해 고 작은 딱새는 고등어무늬 중고양이가 선물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낮에는 이 녀석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만.
그렇다면 그 녀석은 왜 하필 어제 새를 선물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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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가 평소 다니던 길목인 꽃다지 방죽 초입에 녀석을 묻어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 민들레꽃도 한 포기 심었다.

‘아주 소설을 쓰시는구만!’
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하면 그렇게 말할 게 뻔해서 그냥 입을 닫고 있다가
마침 멀리서 온 분들에게 국수를 대접하며
입이 근질거려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
그래도 이 분들은 다들 믿는 눈치더군요.
그 새는 새로 심은 자두나무 아래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아침에 바람이를 묻어주었습니다.
평소에 늘 우리집으로 오던 길목인 꽃다지 방죽 초입에 녀석을 묻었습니다.
늘 다니던 곳이라 싫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뭔가 섭섭해서
무덤 위에 민들레꽃을 한 포기 심었습니다.
민들레꽃이 지고 나면 홀씨가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로 흩어지겠지요.
그 바람 따라 바람이의 넋이라도 구석구석 왕초고양이로 살던 영역을 둘러보라고.
그렇게 민들레꽃을 심었습니다.
노랑이로 살았으니,
노랑이를 닮은 노란 민들레꽃이 제격이겠지요.

* 길고양이 보고서 바람이편 모음::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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