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야,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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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문학기행: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독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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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11월의 독도.


안개 자욱한 망망대해에서 갑자기 섬이 하나 솟아오른다. 울릉도다. 안개와 바다와 갈매기 소리가 뒤범벅된 항구에 발을 딛는 순간, 나는 전혀 다른 시간의 지층에 발을 내리는 듯 아득했다. 마치 뭍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연대기로 들어서는 느낌! 수평의 바다에서 직벽으로 솟아오른 해안 절벽과 항구를 맴도는 갈매기들의 찍찍, 꼬꼬, 끄억거리는 울음소리들.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은 도동의 집들은 저마다 나뭇잎 같은 창문을 바다쪽으로 열어놓고, 일제히 바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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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전망대에서 바라본 울릉도 도동항 풍경.

아무래도 이런 곳에서는 멀리 도심에 두고 온 대륙의 시간과 먼지 낀 기억을 잊고 한동안 시간의 미아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도심의 시간으로부터 뚝 떨어져나와 혼미한 안개 속의 시간을 거닐면서 전혀 새로운 풍경을 거닐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울릉도에 온 이상, 울릉도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 생각 없이 울릉도라는 섬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이왕이면 손목에 찬 시간도 버리는 게 좋다. 필경 섬에서의 시간은 뭍보다 느리며, 그 느린 시간에 몸을 맡기고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 유치환, <울릉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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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도동의 오징어 말리는 풍경.


일찍이 청마 유치환은 <울릉도>라는 시에서 울릉도를 ‘국토의 막내’라고 표현했다. 그가 쓴 <울릉도>는 언제나 울릉도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시로 꼽혀 왔지만, 마치 그것은 뭍과 울릉도의 거리만큼이나 울릉도의 삶과 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는 지리적인 설명과 상상력만 있을뿐, 울릉도에 와서 느낀 감정이나 체험이 보이지 않는다. 직접 가 보지 않고 쓴 시는 감동을 전달하기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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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인근으로 떠나는 오징어잡이 어선의 집어등. 막 떠오른 해가 집어등을 비추고 있다.


최근 유치환은 <만선일보>에 발표한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친일 산문이 발견돼 문화계 안팎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여기에 그는 “황국신민(皇國臣民)된 우리는…. 오늘 혁혁(赫赫)한 일본의 지도적(指導的) 지반(地盤) 우에다 바비론 이상의 현란한 문화를 건설하여야 할 것은 오로지 예술가에게 지어진 커다란 사명”이라고 썼다. 그동안 유치환의 <울릉도>는 울릉도에서 발행하는 각종 인쇄물에도 빠짐없이 소개되었으나, 이는 안용복을 비롯한 독도의용수비대 같은 수많은 선조가 일제의 야욕으로부터 지켜낸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울릉도>라는 시보다는 차라리 “산이 막혀 물이 막혀 내 고향에 못가나/설마 설마 생전에사 고향을 찾겠지/성인봉 밑에 동백꽃이 피어 있네/에해 에해 여기에 살자꾸나”라는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온 한 편의 <망향가>가 더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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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항의 촛대바위(위)와 저동항에서 바라본 새벽의 죽도 풍경. 출항하는 어선들의 불빛 꼬리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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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를 하늘에서 보면 마치 여우의 얼굴을 쏙 빼닮았다. 그 여우의 얼굴 중심에 코처럼 불룩 솟아오른 것이 성인봉이다. 섬치고는 꽤나 높은 해발 983미터의 봉우리. 맑은 날이면 성인봉에서는 멀리 독도가 보인다고 하지만, 울릉도 사람조차 성인봉에서 독도를 봤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보기도, 가기도 어려운 곳이 독도인 것이다. 최근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이 노골화되면서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내려는 국민적 관심과 독도에 대한 생태/문화적인 학계의 고찰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근래 1~2년 사이 여러 문학단체와 시인들도 독도에 입도해 ‘독도’를 소재로 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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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상공을 활공하고 있는 괭이갈매기떼. 


          독립을 부르짖은 투사처럼

          파도소리 하나로

          우리의 정신을 깨우는 독도여

          다가올 미래 앞에 홀로 선 독도여

          터놓고 얘기할 곳 없어

          그동안 하늘만 보았느냐

          나도 하늘을 보고서야

          내 마음에도 독도 하나 있는 걸 알았다

       

          -- 천양희, <독도에 대한 생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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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도는 시인, 소설가들의 방문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시인 천양희는 독도를 통해 나태하고 무관심했던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고 있다. 어쩌면 독도가 외로운 것은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무관심했기 때문이며, 지금의 현실과 미래 앞에서도 홀로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리라. 이런 독도에 대한 생각은 젊은 시인 박정대에게는 ‘고독의 행성’으로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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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바로 앞 바다에서 조업중인 어선.

         
깊은 대낮이야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대낮에도 추억의 유성들이 날아와 폭발하며 터지는 고독의 행성이야, 솔리티드 솔라리스야, 이 아득한 행성에서 나는 단 하나의 희망처럼 기원처럼 너의 이름을 불러본다, 독도야


          -- 박정대, <독도에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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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 독립문 바위. 일명 코끼리 바위라고도 불린다.


그는 거창하게 애국심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독도의 존재성과 그 안에서 발견한 ‘단 하나의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시인 장석주 또한 이런 독도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을 선보이고 있다. “너는 바다 한가운데서 응고한 음악이다/너는 바다 한가운데 펼쳐진 책이다/너는 바다가 피운 두 송이의 꽃봉오리다/너는 바다가 낳은 알이다//너의 눈동자에서 하늘이 나오고/너의 심장에서 파도가 나오고/너의 발가락에서 괭이갈매기가 날아오른다”(장석주, <독도>)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지나친 목적성은 도리어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리게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최근의 시인들이 쓴 독도에 대한 시편들은 지나치게 ‘목적성’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예술적인 미학성을 획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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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바위 너머로 희미하게 독도를 지키는 해양경찰 경비함이 보인다.


          우리나라 섬 3188개

          내 평생 돌고 돈 섬

          천 개중

          독도가 제1호라면

          두미도는 천 번째 섬

          고독한 섬들의 문패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1번지

          우편번호 799-805

          “여보세요, 여긴 한국 독도인데, 누구시죠?”

          꽥꽥 갈매기 소리


          -- 이생진, <여보세요-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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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안시설이 있는 독도 포구 앞 바위의 거센 파도.


시인 이생진의 <여보세요-독도>에서도 굳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 대신 “여보세요, 여긴 한국 독도인데, 누구시죠?”라고 말하고 있다. 흔히 이생진 시인은 ‘섬의 시인’으로 불릴만큼 섬에 대한 시를 많이 쓴 시인이다. 그런 시인이 “내 평생 돌고 돈 섬/천 개중”에 “독도가 제1호”라고 한 것은 남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나’에게 가장 소중하지 않다면, 막연한 애국심을 아무리 강요해도 결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 법이다. 지금 독도에게 중요한 것은 매스컴의 일시적인 관심이 아니라 지속적인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인 것이다.  
 

* 구름을 유목하는 옴팔로스:: http://guru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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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에서 바라본 울릉도와 배 끝에 걸린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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