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고양이, 도망치지 그랬어
장마가 한창일 무렵. 지난 늦가을부터 올 초여름까지 철창에 갇혀 지낸 덩달이의 안부가 궁금해 녀석을 찾아갔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들렀을 때만 해도 녀석은 철창에 갇혀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나는 집주인 몰래 가져온 사료를 사식 넣듯 철창 안에 넣어주고 발길을 돌렸더랬다. 만일 녀석이 장마 내내 그렇게 갇혀 지냈다면, 그 폭우를 다 맞고 병이 났거나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퉁이를 돌아서 덩달이가 사는 마당집에 이르자 철창이 텅 비었다. 덩달이도 보이지 않았다. 녀석은 어디로 간 것일까.
발길을 돌려 나오려는데, 어디선가 냐앙, 우는 소리가 들렸다. 마당의 들마루 밑에서 덩달이가 기어나왔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비를 얼마나 맞았는지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있었고, 털은 흙탕물과 오물로 성기게 엉겨붙어서 반쯤 마른 마포걸레 같았다. 게다가 나에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니 한쪽 다리를 절름절름 절고 있었다. 그동안 철창을 빠져나오려고 부단히도 몸을 부딛혔는지 주둥이와 앞발이 상처투성이였다. 이 꼴이 되어서야 주인은 철창을 열어준 모양이다. 아마도 그대로 두면 죽을 것같아서 풀어준 듯했다.
철창에 갇힌 채 들이치는 장마철 폭우를 다 맞아서 몸이 엉망이 된 채로 녀석은 풀려났다. 풀려난 뒤 한동안 녀석은 다리까지 절뚝거렸다.
절뚝거리며 나에게 걸어오는 고양이. 내 앞에 이르자 녀석은 그래도 반갑다고, 아픈 몸으로 발라당을 하는 게 아닌가. 그 성긴 털로 내 다리에 부비부비까지 하는 게 아닌가. 한참이나 나는 말없이 녀석을 쓰다듬기만 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녀석은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추더니 냐앙, 하고 또 울었다. 밥을 달라는 거였다. 녀석을 집주인이 안보는 소나무 언덕까지 겨우 데리고 와 사료를 수북하게 부어주었다. 그런데 이 녀석 그동안 배가 고팠을 텐데도 사료를 보더니 한알한알 아끼듯 먹었다. 한 입 먹고는 돌아보고, 또 한 입 먹고 돌아보고. 아무래도 먹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덩달이는 과거 봉달이와 함께 자주 오르던 소나무 언덕에서 오랜만에 자유와 자연을 맛보았다.
겨우겨우 사료를 우물거리는 덩달이를 보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바보 고양이, 도망치지 그랬어! 어디를 가도 여기보단 낫겠지!” 그러나 녀석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어릴 때부터 자란 곳이고, 어쨌든 먹을 것을 주는 곳인데다 미우나 고우나 이제껏 키워준 가족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듯. 천천히 힘겹게 밥을 먹는 덩달이를 뒤로 하고 소나무 언덕을 내려오는데, 이 녀석 먹던 밥도 팽개치고 나를 따라나선다. 보아하니 이 녀석, 밥보다도 정에 굶주려 있었다. 내가 다시 목덜미를 만지고 성긴 털을 빗질하듯 쓸어주자 갸릉갸릉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바보 고양이, 도망치지 그랬어! 어디를 가도 여기보단 낫겠지!"
“어디 아픈 데 없냐?” 모르긴 해도 녀석은 마음이 더 아팠을 것이다. 주둥이와 앞발의 상처쯤이야 시간이 지나면 나을 테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도 않으리라. 사실 덩달이가 철창에 갇힌 뒤로 나도 녀석을 자주 찾지 않았다.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지 않으려고 애썼다. 찾아와서 갇힌 녀석을 보면 마음만 아파서 부러 모른척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녀석을 못본 지 일주일이 넘어버리면 혹시나, 하는 걱정에 나도 모르게 또 발길이 가곤 했다.
엉망이 된 몸으로도 발라당은 잊지 않았다(위). 풀려난 지 3일쯤 지나자 녀석의 몸은 조금씩 회복되었다(아래).
장마철이 되어 엄청난 폭우가 계속해서 내리고 그렇게 들이치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면서 덩달이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같다. 그제야 주인은 덩달이를 풀어준 모양이다. 어쨌든 덩달이는 장마 중간에 철창에서 풀려났다. 나에게 한참이나 몸을 맡겼던 덩달이는 다시 밥 생각이 났는지 절뚝절뚝 걸음을 옮겨 사료를 먹으러 갔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나는 덩달이를 찾아가 한참이나 녀석과 놀아주었다. 3일쯤 지나자 녀석의 털은 다시 보송보송해졌고, 성기게 엉겨붙은 털들도 고르게 정리되었다. 절름거리던 다리도 정상으로 회복됐다. 녀석도 확실히 컨디션이 좀 나아졌는지 사료 먹는 모습부터 달라졌다. 예전처럼 우걱우걱 사료를 먹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한결 몸이 가벼워진 덩달이.
이대로만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이대로만 지낸다면 굳이 도망갈 이유도 없을 텐데. 모처럼 나는 건강을 회복한 덩달이를 데리고 오래 전 봉달이와 셋이서 놀던 철길 언덕까지 올라갔다. 뒤따라온 덩달이와 철길 언덕 꼭대기에 올라 나는 한참이나 그냥 앉아 있었다. 오랜만에 하늘은 푸르고 뭉게구름이 떠다녔다. 덩달이의 눈 속에도 구름인지 그리움인지 모를 덩어리들이 뭉게뭉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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